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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엄정토(莊儼靜土)

娘生寶藏 2011. 4. 15. 14:18

장엄정토(莊嚴靜土)

 

             정토를 장엄한다.

국토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사는 지역,환경이 좋고 시설이 좋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지역에 훌륭한 사람이 없다면 그건 빈 껍데기이다.

아무리 그 지역이 잘 되어 있어도  훌륭한 사람이 없을 때, 그 장소가 빛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 지역을 빛낼 수 있는 것은 뭘까..?

금강경에서의 이야기는 그 장소에 그 지역에 훌륭한 사람이 있을때, 그 지역이 빛나서 장엄

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오셔서,이곳에 오셔서 자리를 빛내어 주십시오.

당신 같이 명성이 있고 훌륭한 분이 오시면,우리 행사가 우리들의 모임이 아주 ..

빛날것입니다.,그리하여 장엄이 된다.

그런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토,불국토(佛國土)는 보살이 장엄한 것이다.

성인(聖人)이나 현인(賢人),수행(修行)이 많이 된 사람이 있음으로서 장엄이 된다.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보살(菩薩)이나 석가모니(釋伽牟尼)는 과거 연등(燃燈)부처님께서 장엄하셨지만,그 장엄한 그런 상(相)이 있어서는 또한 그 역시 잘못된 것이다.

그런 내용으로 우리가 볼 수 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수보리야,그대는 어떻게 생각 하는가..?

여래가 옛날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법에 대해서,진리에 대해서 또는 가르침에 대해서

얻은 바가 있는가..?

과거에 연등부처님 앞에서 수행을 잘 했으므로, 연등부처님께서 석가모니불(釋伽牟尼佛).

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성불하리라는 그런 예언을 했다는 것이 다른 경전에도 많이 나와 있다.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수보리에게 물었는데,수보리가 감히 과거 연등부처님께서 수행한 문제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나선다.

'아닙니다.,세존이시여,여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법에 대해서 실로 얻은 바가

없습니다'고  하였다.

남이 얻었는지 안 얻었는지 자기가 어떻게 안다고 함부로 얻은 바가 없다고 하느냐..?

금강경의 칼날 같은 정말 비수 같은, 말하자면 사상이 바로 여기에 나타난다.

자랑 한다면 부처님이 뭐가 되겠느냐,,?

그 말이다.그것은 이미 부처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수보리가 과감하게,'아니,얻은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 연등부처님 앞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렇게 전체의 상(相)을 깡그리 쓸어버리고 부처님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연등불(燃燈佛)에 대해 좀 알아보고 넘어가자.

과거 석가모니보다 몇 년 전에 연등불이 있었는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다.

또 불교의 상식을 총동원해서 몇 겁(劫)의 다른 별 세계 이래,이런 상황들이 벌어졌는가..?

이런 생각들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알 수는 없다.

증명할 수도 없다.

물증이 전혀 없다. 역사적인 기록은 말할 것도 없다.

연등이라는 말은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우리가 초파일에 밝히는 연등(燃燈),축제라 할때,연꽃(蓮)'자를 쓰는 게 아니다,

연꽃이라는 등(燈)의 종류를 이야기 할때, 연꽃 모양을 한 등은 아주 작은 의미이고,

보통 연등(燃燈)축제, 연등 행사라고 할때는 모두 이 연(燃)자를 쓴다.

'불 밝힐 연(燃)'자 '등불(燈)불에 불을 밝히다라는 의미다.

부처님의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힘으로 해서 부처가 된다.

그 속뜻은 그런 것이다.

연들불이라는 것, 무슨 과거에 연들불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부처님께 수기(受記)하고

증명(證明)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건 좀 막말이자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이름을 열거하자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무량광(無量光)이며 한량없는

자비광명(慈悲光明)이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靜法身 毘盧자那佛),원만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 盧舍那佛),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 釋伽牟尼佛),,이렇게 삼신불(三身佛)이 있다.

법신비로자나불 이것은 광명변조(光明邊照)다.

지혜의 광명이 두루하다.

또 대일여래(大日如來) 태양처럼 빛나는 그런 지혜를 가졌다해서 비로자나불이다.

그렇게 해석한다.

또 법화경에 보면 최초의 부처님에 대해서 이만(二萬)부처님의 연대가 등장하는데, 몇 겁을

 지난후에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이 나오고 전부 빛나는 이름이다.

등불등(燈)자다.

전부 빛나거나 광명이 밝은,낱낱이 전불 후불(前佛 後佛)이 앞서거나 뒤서거나 똑같이

이름이 하나다.

그랬다.부처라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지혜의 등불을 밝혔을 때,그때 부처라고 한다.

마음이 툭 터져서 지혜가 밝아지면,바로 그것이 부처다.

전불 후불이 다 동일하고, 앞의 부처나 뒤의 부처나 모두가 내용인 즉 한 이름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아미타불이 그렇고 일광변조 비로자나불이 그렇고 연등불이 그렇다.

경전의 말 속뜻이 아주 무궁무진하게 되어 있다는 그런 의미이다.

그래서 여기에 나타난 연등불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불교를 좀 더 수준 있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그런 길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전생(前生)에 수행을 했다고 하는 데에 대한 상(相)을 추호도 낼 수 없고,

내서도 안 되고, 있을 수 도 없다.그런 뜻이다.

그래서 수보리의 수행 이야기가 되었고, 일반적인 사과(四果)수행이야기가 되었고,

부처님의 수행까지 이야기가 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생색과 상의 문제에 대해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보리야,어의운하(於意云何)오,'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이 불국토(佛國土)장엄(壯嚴)한다고 하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어떤 곳에 훌륭한 사람이 왔다.

그래서 말하자면,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뭔가 든든한 느낌을 주고 긍지와 자부심을

조금은가질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이 그곳의 분위기를 장엄했다손 치더라도, 그렇지만 그곳에는

고정된 뭔가는없다.

찾아보아도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이 뭘까.?

그 사람이 왔으면 하나의 장엄이 되기는 했으나,늘 존재하는 장엄이 아니다.

그저 편의상 그 때의 그 장소 그 사람의 장엄이지, 영원히  그 곳이 장엄되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장엄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보살은 응당히 이와 같이 텅 빈 마음,청정심(淸靜心)이라고 ;;;

하는 마음을 낼지니라.

 

 

출처 : 무불스님
글쓴이 : 길상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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