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써라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써라
시고(是故) 수보리야,보살이 응리일체상(應離一體相)하고,
응당히 일체의 상을 떠나고 깨달음을 성취해야 한다.
깨달음의 마음을 내야 한다.
요컨대 보리심(菩리心)을 발한다고 하는 것도 뭐냐,상떠나는 것이다.
응당히 일체제상을 떠나고 보리심을 발하는 것 이다.
색이나 사물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고, 응당히 색.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고,응당히 색.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 것이며, 응당히 주(住)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매여 있지 마라.
어디에도 매여 있지 마라.
응생무소주심(應生無所住心),응당히 주(住)하는 바 없이 마음을 써라.
왜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하나,
왜 꼭 그 일이어야만 하나, 절대 그렇게 매여 있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만 해야한다.
왜 꼭 그렇게만 해,저렇게도 할 수 있는 것인데,외국 여행을 하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러 가는 것이지 경치 구경이 전부는 아니다.
저 나라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거기서 소견이 한번 툭 터져야 한다.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하는 데 매여 있지 마라.
응무소주심(應無所住心),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열어라.
머무는 바가 뭐냐..?
요렇게만 살아야 한다는 고지식이다.
자신의 판단이 전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설정한 어떤 가치관, 내가 만들어 놓은 그 틀이 무엇이
그리 장하다고 거기에 자기 목을 매달고 있는지.......
응생무소주심(應生無所住心),제발 불자들은 소견이 좀 툭 트이게 시원시원하게
걸림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마음이 머무는 바가 있으면 잘못 머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좀 더 뭔가 발전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도머물지 말고 어떤 사물에도 머물지 말고 보시를 해라.
베푸는 삶을 살아라.
절을 하더라도 절 받는 사람에게 흡족하게 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하는데, 상대는 고개를 조금만 까딱 한다든지 아니면
눈만 깜빡하게 되면 그만 마음이 뒤틀어지게 된다.
상대야 어떻게 하등지 자기는 공손히 해야 한다.
상대의 모습, 어떤모습에도 머물지 말고, 인사를 잘 하는 것도 몸으로
보시하는 것이 된다.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상대가 받아주든지 안 받아주든지 공손히
인사 해야 한다.
우리는 인사를 안받아주면 섭섭하다고 속이 상한다고 다시는
인사 안 해야지그런다.
그런소리가 나오지만 그래도 인사해야 한다.
아파트의 경비하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내가 먼저 해야 한다.
경비하는 사람이 낮은 사람이라고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낮은 사람이 될 뿐이다.
경비하는 사람에게 인사를 잘해 놓으면, 그 집에 도둑이 들었다면 당장에
와서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인사 잘하면 다 공이되어 돌아온다.
공(空)을 생각해서 한다면,마음이 또 그곳에 머무른 것이지만 세상이
그렇다는 얘기다.
수보리야,보살이 이 일체 중생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베푸는 것이다.
불교는 일체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여래가 설일체제상(說一切諸相) 즉시비상(卽是非相)이라고,
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것은,상(相)이 아니라고 수없이 천번만번 이야기
하더라도 쉽게 상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다.
일체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니니 그 이름이 상이다.
우설일체중생(又說一切衆生)이 즉비중생(卽非衆生)이니 곧 중생이 아니니라.
그 이름이 중생이다.
중생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때로는 보살이고 때로는 부처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가끔 보면 아주 이쁠때가 있다.
아주 이쁜 사람도 때로는 미워 죽이고 싶을 때도 있다.
보살의 얼굴 속에 아귀가 있을수도 있다.
악의(惡意)의 마음을 가지고 보살 행색을 하고 있고, 우리 인간은 한 순간의
인간 모습 속에 삼천가지의 요소가 있다.
그래 일념 삼천이라 해서 , 다 부처 속에 중생 있고 중생속에 부처가 있고
보살이 있고 아귀도 있고 아수라도 있고 축생도 있고 다 들어 있다.
고정 지어서 중생이다라고 할 것이 아니다.
중생이라는 상이 꼭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을 하자니 중생이다.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수보리야, 여래는 시진어자(是眞語者) 실어자(實語者) 여어자(如語資)
불광어자(不狂語者)이니라.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주옥같은 가르침을 중생들이 행여 의심할까봐,'
여래는 진실한 말,참다운 말, 실다운 말만 하느니라.
사실과 똑같은 말만 하는 사람이다.
진실과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진실대로 이야기 한다.
전혀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도 안한다.
속이지도 않는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부처님을 보고 이런 의심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강조하는가..?
이 위의 말씀은 엄청난 말씀 이시다.
가슴을 짓누르고, 사람의 목도 조르고, 정말 죽고 싶을 정도의 감정의
상(相)이 있는데, 상이 없다고 하니까 정말 미칠 것 같다.
도대체 이 마음의 감정을, 사랑의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없다고 부정하느냐,.?
눈을 떠라.
조금만 눈을 달리 뜨고 보면 없다.
나는 절대 거짓말 않고,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여기서확실하게 우리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그런 말씀이다.
우리가 눈이 뜨이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납득이 안 될뿐.
그러나 부처님은사실과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신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