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식을 바르게 사랑하라(파냐난다 스님, 도안 옮김)/7. 아이들의 본능
아이들의 본능
친애하는 부모님 여러분,
지난번에
우리는 아이들의 행동성향이나 성품의 경향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말씀 드렸던 내용은 아이들이 순진무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이나 환경으로부터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시는 여러분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 수도 있을 어떠한 행동도
절대 하지 않도록 조금은 더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이들의 자연스런 경향성 몇 가지를 더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불교는 우리에게 인간 존재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
즉 루파(Rupa)와 나마(Nama) 혹은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가르칩니다.
창조자로서 한 어머니와 한 아버지를 갖게 됨으로써 그 두 가지 요소들은 결합하여 살아있는 한 인간이 됩니다.
사실상 부모는 아이를 창조하는 신입니다.
육체는 다양한 종류의 재료가 혼합된 것입니다.
또한 육체는 특정한 다른 재료도 역시 작용하게 될 때에만 정상적으로
기능합니다.
즉, 육체의 건강을 위해 우리에겐 음식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경우 음식은 신체발육을 위해 필요한데,
부모들은 온전하게 제대로 하지는 못해도 아이들이 그럭저럭 잘 자라도록 할 만큼은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담당합니다.
반면에,
아이들의 정신을
살찌우는 일은 유감스러운 점이 많으며 결함 투성입니다.
인간은 육체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정신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정신과 육체는 언제나 함께 공존해야만 합니다.
음식 역시 육체와 정신 모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정신의 음식은 아이들이 법의 원리에 따르는 건전한 정신과 아름다운
정신을 지닐 수 있게 해주는 훈련과 가르침입니다.
현실적으로 만사는 정신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정신의 문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아이들의 육체적인 활동과 태도는
그 육체 안에 깃든 정신을 반영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은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나타냅니다.
육체는 항상 감정을 표현하는 토대일 뿐 아니라 정신의 토대입니다.
한 인간을 보살피고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일이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정신의 계발과 커다란 관련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정신의 활동은 한편으론 태어났을 때의
정신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한편으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권유와 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서 나중에 획득된 정신활동으로도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구든지 가까이 있는 대상이
무엇이든지, 가까이 있는 존재처럼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침으로서 활용되는
정신작용에 대해 연구하는 일은 어느 정도 필수적이라 하겠습니다
. 첫 번째로 공부해야 할 내용은 본능, 정서, 습관, 성격입니다
. 이러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볼 수 있겠습니다.
1. 본능(Sanjatanana): 태국에서 이 단어는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대체로 심리학적 주제를 다룰 경우 사용되는 용어였습니다.
자, 잘 들어보세요.
산쟈타(Sanjata) 는 동시에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나나(Nana)는 안다는 의미죠.
두 말이 결합되면 정신이 생겨나는 탄생과 동시에 안다는 의미가 됩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도 행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법이죠.
그러한 일들은 함께 출현해서 완전히 우리한테서 제거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너무 과도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통제될
수는 있습니다.
정신의 연마가
결여되어 있는 인간은 종종 자기 본능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런 여성이나 남성은 사회 내에서 품행이 저속하게 되어 종종 야생동물 같은 짓을 저지릅니다.
반면에 좋은 훈련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있는
본능이나 성향을 무분별하게 드러내는 일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런 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랑받는 신사요, 숙녀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문명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기본적 본능을 통제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본능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 결코 너무 지나치게 방출되도록
내버려두진 마십시요.
우리도 역시 알아야만 하는 좀더 새로운 몇 가지 본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생존본능: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살아남기 위해 음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한 욕구는 출생 이후 생겨납니다.
태어난 직후의 고양이와 강아지들은 어미의 젖꼭지를 더듬어 찾으려
애쓰다가 금방 젖을 빨게 됩니다.
하지만 어미로부터 막 태어난 갓난아기는 바로 음식을 먹진 않습니다.
아기의 몸을 씻어야 하며 그런 다음 산모의 몸도 역시 씻겨야 합니다.
그런 뒤에 아기는 마음껏 엄마의 젖을 빨 수 있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음식은 섭취되어야만 합니다.
먹어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모든 종류의 음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욕구는 모든 중생의 본능입니다.
나, 재생산 본능: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있을 때, 반드시 생명의 재생산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도 재생산을 통해 살아남게 됩니다.
만일 어떠한 재생산도 없다면,
생명체는 결국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본능이 성욕 즉, 성적 충동을 낳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충동이 자제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가치는
개와 같은 보통의 동물보다 훨씬 더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개들이나 다른 동물들은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가끔씩 혹은
철따라 충족시킬 뿐입니다.
그런 시기가 지나면 그 동물들은 더 이상 그런 욕구를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철이 따로 있나요?
인간이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요.
이러한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인간이
개만도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이따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다. 자기보존 본능:
모든 중생은 생명을 사랑합니다.
중생은 억압을 두려워하죠.
법구경에서 부처님이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중생은 벌받는 일을 두려워 한다.
중생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너희들은 어떤지 스스로를 관찰해본다면, 아무도 해치지 못하리라.”
질병과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아를 보존하려는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러다 싸우거나 도망칠려는 결심이 뒤따릅니다.
쉽게 겁을 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좀 놀라게 하는 것을 보거나 좀 시끄러운 소리를 듣게 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봐서 겁을 냅니다.
세상의 보모와 유모들은 이런 사실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런 분들은 불필요하게 아이들 가슴 속에 두려움이 깃들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합니다.
라. 자존(自尊)의 본능:
이러한 자존의 본능으로 인해 항상 자기 자아는 다른 사람의 자아보다도 더 중요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이기적으로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자만심을 갖는 이유이고,
자신이 중요하다는 이유입니다.
자존의 본능은
또한 모든 측면에서 운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낳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든 항상 자기 자신을 앞에 내세웁니다.
그러한 성향은 법(dharma)의
언어에 의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거나 동등하거나 못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로 분류됩니다.
이런 모든 생각이야말로 고통의 원인입니다.
마. 사회적 본능:
인간 존재는 사회적 동물로 마을에서 살며 집단 속에,
무리들 속에 머무릅니다.
인간은 홀로 남게 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함께 무리를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활동이 벌어지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러 간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주위에 몰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집단 안에 한 사람 이상 존재할 때,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커다란 집단을 이루기 위해 모여듭니다.
이와 같이 집단을 이루는 일은 유사성에 좌우됩니다.
예컨대 같은 언어, 같은 의복, 유사한 생활수준에 좌우되죠.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함께 머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상에는 여러 나라와 다양한 언어가 존재합니다.
그러니 혼자 남게 되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 테죠.
혼자 남게 되는 아이들은 외로움과 권태를 느낍니다.
그런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활동적이지 않습니다.
만일 놀이친구가 생기면
그땐 아이들에게 갑작스럽게 기쁨이 충만됩니다.
부모들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은 집에 있다가 금새 부모들 품 안으로 뛰어듭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들이 지닌 사회적 본능의 징표를 잘 보여줍니다.
바. 재산을 모으고 싶어하는 본능:
우리는 궂은 날이 시작되기 전에 수많은 개미들이 둥지에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비축해두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무리의 벌들이 갓 태어난 어린 새끼들을 위한 달콤한 꿀을 만들기
위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꽃가루를 모으러 날라다닙니다.
먹을 걸 발견한 검은 까마귀는
우선 음식을 숨겼다가 나중에 먹으려 합니다.
그 모든 행동은 재산을 모으고 싶어하는 본능으로 인해 채택한
행동방식입니다. 특히 인간에게 재산의 축적이란 거창한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것들을 축적합니다.
이러한 본능은
잘 통제되지 않거나 억제되지 않으면 우리를 탐욕스럽게 만듭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서로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무언가 작은 것들로 시작하겠죠.
아이들은 무언가를 부여잡고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내 껀 뭐든지 건들지 마.”
자기 친구들이나 적들을 똑같이 갖가지 술책과 기만으로 이용해 먹는
정도가 아주 최악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타락을 통해 그러한 것이 자기 자식에게 줄
유산을 모우는 수단으로 됩니다.
우리는 저 모든 본능들에 대해 아주 자세히는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인간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지침 정도만 살펴본 셈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제 제대로 예절바르게 행동하도록 정신을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정신이 타락해 나중에 그 결과로 고통받을 때까지
정신을 그냥 내버려두길 원하지 않습니다.
교정되지 않았던 오해로부터 발생한 엄청난 해악이 우리 나라와 우리
사회에 그간 널리 퍼졌습니다.
저는 여러분 부모님들께서 이런 사실을 의식하셔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2. 정서:
이 말을 우리는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남자를 놓고 그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그가 침착하다는 뜻이죠.
한편, 저 여자는 아주 정서적이야, 하고 말합니다.
그 여자는 성마르고, 논쟁적이고, 항상 불평투성이라는 뜻입니다.
정서는 마음 속에 발생하는 이런 저런 느낌을 뜻하죠.
마음이
오감(五感)을 통해 무언가를 감지할 때 마음 속에 무언가가 나타납니다. 그 무언가가 정서라 불리워집니다.
그러한 정서는 항상 하나의 원인으로서의 본능을 지니고 있죠.
예컨대, 이성(異性)의 모습을 보고는 우리는 다가가고 싶어져서
그 여성에게 누구냐고, 어디서 왔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재생산 본능 때문입니다.
그 본능이 상대방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 성욕으로 표현됩니다.
정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방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정서는 참선 수행으로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3. 습관:
습관이란 잘 훈련된 운동선수처럼 거듭 반복해서 행동한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부지런한 이유는 그 사람이 그런 식으로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게으른 이유는
그 사람이 게으른 데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죠.
부모들로부터 전달되는 습관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쉽사리 받아들이므로,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습관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습관이 주입되는 경우는
정말이지 어른들이 본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버지가 부지런하다 칩시다.
그가 농장에 가느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난다면,
아들 역시 아버지처럼 농장에 일하러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습관 역시 감염됩니다.
여러분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좋든 싫든 그러한 습관이 여러분 자녀들에게도 베이게 되리라는
사실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4. 태도와 성격:
쉽게 눈에 띄거나 감지할 수 있는 말하는 버릇과 마찬가지로,
태도와 성격도 육체적입니다.
예의범절은 항상 그 사람의 습관을 나타냅니다.
이를 테면,
무례한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공손하지 못한 말을 사용합니다.
그들의 육체적 예의범절도 저속하여 결코 호감을 사지 못합니다.
그들은 서있거나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바람직한 모습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반면에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예의범절 또한 건전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양육할 때
그러한 징후를 잘 관찰하여 하나씩 하나씩 고치려 애를 쓰라고
충고해드립니다. 정말이지 다음 말을 잊지 마세요.
“본능은 정서의 기반이다.
정서는 또 습관의 기반이고,
습관은 타인들이 감지하게 될 태도와 성격의 기반이다.
” 다른 사람들의 눈에 관찰되는 버릇은 그 사람의 개성입니다.
좋은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앞서 언급한 원인들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원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좋은 습관을 붙이도록 특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내용은
여러분에게 지침을 드리고 여러분이 인간에 대해 무언가 실질적인
점을 인식하여 자녀들의 어떠한 종류의 행동이든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되었습니다.
만일 자녀들의 어떠한 정서의 표현이든 파괴적 행동의 기초가 될 수 있고 자녀들에게 나쁜 습관이 들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아를 표현하기 마련입니다.
내면의 무언가를 숨기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내면에 그러한 것을 숨기게 되면 정서적 과부하 상태가
발생하죠.
그러다가 그러한 은폐는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져서 결국 본인은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저 정서를 통제하는 일은 권장할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든지 저런 식으로든지 정서를 보상해주거나
풀어주면서도,
제대로 올바르게 보상해주고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정은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흡사합니다.
쇄도하는 힘을 되받아치기 위해서만 댐이 건설되었다면,
물길이 너무도 힘이 세져서 댐이나 둑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물길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물이 흘러갈 여러 개의
배수구를 만들어 놓는다면,
그땐 물이 우리에게 훨씬 더 쓸모가 많아질 것입니다
. 둑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댐도 손상당하지 않을 테죠.
이러한 정황은 아이들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지혜가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위한 보상을 찾아낼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진 마십시오.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만큼 충분히 현명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진정 아이들의 눈이요,
귀로서 작용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나쁜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을 배출구가 있어야만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일요일 숙제로 이 배출구에 대해 생각해보시길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서 얻은 교훈을 항상 여러분 자녀들의 육체적 버릇과
말버릇을 주시하는 데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착하게 되거나 버릇없게 되는 일은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