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명상

[스크랩] 학생

娘生寶藏 2012. 11. 28. 09:29

 

 

 

 

 

 

 

 

 

 

 

 

 

                        

 

 

 

 

 

 

 

 

 


                                  학 생

 

 

 

 

 

                                                                                                                                                       - 여강 최재효

 

 

 

 

 


  “즈아부지, 올해도 애들 둘이 지내유. 너무 서운하게 생각말어유.”
 졸수卒壽를 바라보는 미수米壽의 어머님은 50이 넘은 두 아들이 당신의 낭군에

절하는 모습을 보시고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하게 속삭이셨다. ‘사진 속 아버님

은 두 자식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늘 여행을 떠나신지 17년

이 지났으니 지금 쯤 태양계를 벗어나 은하수 가장자리 쯤 도착하셨을까?’


  나는 저승에 들어서도 이승에는 여전히 공부하는 신분으로 남아 있는 아버님 사

진을 올려다보았다. 먼 친척의 자손이 운전하는 버스에 치여 중상을 입고 인천시

소재 길병원 중환자실에서 50여일 계시다 1995년 음력 10월13일 76세의 노구老軀

로 천상天上으로 소풍을 떠나셨다.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멱곡리 해주최씨 좌랑공

파 선산先山인 청마루 남향의 양지바른 곳에 있는 아버님의 유택은 늘 햇살이 눈

시다.


 슬하膝下에 삼남사녀三男四女를 본 아버님은 나에게 엄격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막내아들에게 은근히 가문의 영광을 기대하였지만 그 아들은 타향을 떠돌며 지천

명의 나이에 끊임없이 병치레를 하고 있다. 함께 잔을 올려야할 장형長兄은 사업

실패로 무엇이 그리 급한지 7년 전 아버지 뒤를 따라 첫눈이 올 때 하늘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났다. 아버님이 먼저 천상 여행을 떠났으니 다행이다. 만일 형님과 아버

님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아버님의 여행길은 즐겁지 못했으리라.


 10년도 안되어 나는 한 집안에서 두 명의 혈육이 명부冥府의 학생學生으로 신분

바꾸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형님의 경우 초등학교 6년, 중, 고등학교 6년,

학교 4년, 인생수업 37년의 학생이다. 이승에서 지겹도록 공부를 하고도 명계

冥界에 어서도 학생이라니? 지방紙榜에 쓰인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父君

神位를 어게 해석해야 할까.


 생전에 5급 이상이 벼슬을 지낸 경우는 그의 최종 관직명官職名을 지방에 쓴다.

생전 관직이 행정직 5급이었다면 학생 대신 사무관私務官을 쓴다. 학생 신분을 면

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기를 쓰고 사무관이 되기 위하여

혼신의 심을 쏟는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본다.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자왈子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고 하였다.


 ‘자주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않느냐?’고 묻는 공자의 말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한 주먹도 안 되는 지식을 가지고 마치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는 양 행세하

는 작금昨今의 위선자僞善者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닐까. 생전에 손바닥만 한 벼

슬을 지낸 이는 그 벼슬에 안주安住하며 기고만장氣高萬丈하였겠지만 학생은 이승

에서의 배움도 모자라 황천黃泉을 건너 피안彼岸에서도 수불석권手不釋卷해야 하

니 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    


 조선시대 임금들도 경연經筵이라는 제도를 두어 수시로 공부하며 제왕의 자질을

쌓고 자기 수양修養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신하臣下 중에서 학식이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 수신修身하였는데 아침 공부는 조강朝講, 낮

공부는 주강晝講, 저녁 공부는 석강夕講이라 하였으며 밤에 신하를 불러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을 야대夜對라고 하였다. 또한 나중에 자신의 뒤를 이을 세자世子에게

도 훌륭한 스승을 두게 하여 제왕의 자격을 학습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였

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보면 세종 임금은 신하들 중에서  유능한 자를 선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명하였다. 즉, 일정한 기간을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여 국가경

영에 이바지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였다. 임금에게 선발되어 나라에서 주는

녹봉祿俸을 받고 공부하는 영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괴롭히며 부단히 공부하는 자에게 오는 가문의 명예이자 광영이었다.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생전에 500여 권이

넘는 대작大作을 남긴 자하도인紫霞道人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동부승지同副承旨,

형조참의刑曹參議 등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지만 후손들에게 선생先生으로 불

린다. 선생이란 누구인가? 학생을 가르치는 위치가 선생이다. 선생은 학생을 가르

치기 위하여 학생보다 곱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생이 학식이 부족하다거나

경박輕薄하다면 학생이 따르려하지 않는다. 결국 선생도 학생인 셈이다.


 결국 석가모니釋迦牟尼, 예수, 마호멧, 플라톤, 고대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 등

모두가 학생이다. 인위적인 벼슬은 현세에 머문 작위爵位일 뿐이다. 이렇듯 선생과

학생은 동일개념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배우고 나중에 배우는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잘 배우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유익하겠지만 반대

의 경우 인류를 지옥에 빠트린다. 이해득실利害得失의 묘수妙手를 가르치는 학문

에 우리 자식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70,80년대는 상아탑象牙塔에서 철학이나 문학이 절대 우위에 있었다. 철학도哲

學徒, 문학도文學徒는 청소년들의 우상이었으며 사회에서도 잘 대접해 주었다.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에게 철학과 문학은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 좋은 직

장, 부귀영화를 약속해 주는 경영학, 경제학, 회계학, 의학 등 황금과 직접 연관이

있는 학과가 10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청소년들은 대학에서 적당히 돈 버는

방법을 터득하여 평생 함포고복含哺鼓腹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

르고 있다.


 나 역시 두 아이들 모두 대학에서 돈 잘 버는 학과에 입학시켜 놓고 오랫동안 고

민하였다.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 벌레를 만들겠구나.’ 영문과를 졸업한 나

는 두 딸애들도 문학을 가까이 해주길 은근히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

을 졸업하면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줄 아는 아이들에게 나는 계속 공부하고 정

진하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에는 선생으로 넘쳐난다. 목사, 고승대덕高僧大德, 교수, 석학碩學, 교주敎主,

박사博士 등등. 이 광대무변의 삼천대천三千大天에는 삼천대천만큼의 학문과 진리

가 있다. 인류는 겨우 그중에 몇 개의 학식을 알고 있을 뿐이다. 소위 선생이라는

사람들은 몇 가지 단편적인 학식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창조주創造主라도 되는 양

허세虛勢를 부리고 있다. 참으로 가소롭다.


 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에서 세 번째 행성行星이며, 태양계는 지름이 10

만 광년光年인 우리 은하의 6개 팔인 오리온 팔(Orion arm), 노르마 팔(Noram arm),

방패 팔(Scutum Crux arm),  궁수(弓手)의 팔(Sagittarius arm), 페르세우스 팔

(Perseus arm), 백조의 팔(Cygnus arm) 중에 오리온 팔에 위치해 있는데 은하중심에

서 26,000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우리 은하에는 수천 억 개의 별이 있다.


 우리은하 같은 은하가 또한 이 삼천대천의 공간에 수천 억 개가 있다. 우리가 알

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가. 그렇다면 1광년은 거리는 얼마나 될까? 빛

이 1초에 300,000km 속도로 간다. 300,000km x 60초 x 60분 x 24시간 x 365일 즉,

빛이 일 년 동안 가는 거리는 인간의 수치개념으로 보면 9,453,500,000,000km 가

된다. 보통 사람 걸음걸이로 환산하면 51억년 걸리는 거리다. 우리은하의 지름이

10만 광년의 길이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이다.


 나는 어쩌면 이 무한의 거리에 있는 어느 별에서 금속성金屬性이나 무기질無機

質의 형태로 생성되어 암석덩이에 붙어서 수억만 년 동안 우주를 떠돌다 별똥별로

지구에 떨어져 아버지나 어머니가 마신 물이나 음식물을 통해 인체를 형성하게 되

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 한 세상 살다가 숨이 끊어지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간 곳이 어디일까? 바로 삼천대천의 우주 공간을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수지화풍水地火風으로 돌아간다. 고체固體의 육신이 기화氣化하

거나 액화液化하여 우주 공간으로 날아간다. 즉, 우리 인간의 고향은 삼천대천의

우주 허공인 셈이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 뼈, 살은 모두가 별에서 온 성분으

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수명壽命이 다하여 기화나 액화되어 우주로 돌아가는 것

은 당연한 이치다.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돈 몇 푼에 천국행 티켓을 사겠다고 객기

를 부리고 있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쯤 육신의 반이 육탈肉脫되어 기화 또는 액화되어 이 우주

공간 어디쯤 머물며 어떤 항성을 향해 별똥별이 되어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저승

에 들어서도 공부하는 사람 즉, 학생學生이함은 선인들이 이미 순환되는 인간의 존

재를 깨닫고 지어준 명호名號가 아니겠는가. 하찮은 벼슬로 한줌 밖에 안 되는 권

력을 쥐고 세상을 농락하려는 자들은 더 늦기 전에 부단히 공부해야 한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父君神位, 염부주閻浮洲에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

에 명계冥界에 들어서도 붙는 호사豪奢 아닌가. 학생대신에 ‘00장관’, ‘00의원’이란

의혹의 시선이 따르는 이승의 벼슬보다 훨씬 아름다운 명호가 학생이다. 딸만 둘

둔 나는 훗날 누구에게 학생 대접을 받게 될까. 예전에는 외손봉사外孫奉祀도 있었

지만 지금은 생소한 단어가 되었다. 제사를 마치고 하얀 달빛 아래 지방을 소지燒

紙하며 나는 괜히 우울해졌다. 아버님은 혹시 저 은하수 중간쯤 어느 별에서 이승

의 향수가 그리워 견우牽牛가 되어 주경야독晝耕夜讀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 창작일 : 2012.11.26. 22:00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점봉리 고향집에서


 

 

 

 

 

 [주] 졸수 - 90세, 미수 - 88세

 

 

 

 

 

 

 

 

 

 

 

 

 

 

 

 

 

 

 

 

 

 

 

 

 

 

 

 

 

 

 

  

 

출처 : 사랑방
글쓴이 : 여강 최재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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