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명상

[스크랩] 소녀부대

娘生寶藏 2012. 12. 3. 12:43

 

 

 

 

 

 

 

 

 

 

 

 

 

 

 

 

                                      

 

 

 

 

 

 

 

 

 

 

 

 

 

 

                                                    소녀부대

 

 

 

 

 

 

 

                                                                                                                                                       - 여강 최재효

 

 

 

 


 생각나니 읽어봤니 우리 마지막 편지 / 구겨버렸지 찢어버렸지 넌 그런 사람이니

까 / 손톱이 다 빠지도록 꼭꼭 눌러 싼 그 결심은 / 나의 마음속에 여기 어딘가에

여태 박혀져 있는데 / 손톱이 빠져서 나 아파 너 없는 혼자인 게 아파 / 너도 나만

큼 많이 아파 넌 그럴 리 없겠지만 제발 / 다시 돌아와 주면 안 돼 제발 / 너 없이

아무것도 안 돼 제발 손톱이 다 자라면 다시 내게 너 돌아 와주라


 나는 공연장에 입장할 때 의자에 앉아 팝콘이나 먹으며 공연을 보는 둥 마는 둥

면서 시간이나 보내려는 심산心算이었다. 가수가 등장하는 콘서트 분위기에 익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영화나 연극을 보며 자주 졸다가 시간을 보낸 전력前

歷이 많기 때문이었다. 나의 계산은 공연장에 입장하는 순간 백지화白紙化되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략 일만 명 쯤 추산推算되는 소녀부대의 위용威容에

눌려 나는 긴장하고 말았다.

 

 공연장에 들어온 관객의 대부분은 중년의 소녀들이었다. 론 젊은 연인과 금슬

이 좋아 보이는 중년부부의 모습도 보이기는 했지만 일부였다. 저녁 7시부터 시작

되는 공연에 이렇게 많은 소녀들이 집합한 것에 대해 나는 머리가 복잡해 졌다. 저

소녀들은 남편과 아이들 저녁은 어찌하고 이곳에 모인 것일까. 반찬은 신경도 쓰

지 않고 전자밥통에 쌀만 안쳐놓고 집을 뛰쳐나온 것은 아닌지. 혹은 남편과 아이

들에게 자장면을 배달시켜주고 동창회를 핑계대고 온 것은 아닐까.

 

 부부 사이가 안 좋아 남편이 저녁을 먹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이웃집 아

주머니와 콘서트에 온 것은 아닌지. 오지랖이 넓은 나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이

런저런 생각을 하며 팝콘을 씹었다. 드디어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리면

서 소녀들의 멋진 우상偶像이 등장하였다.

 

 환상적인 무대 위에 TV에서나 보던 우상이 출현하자 소녀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

르며 박수를 쳤다. 가수의 현란한 동작에 소녀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환호하였다. 가

수가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부를 때 소녀들은 일제히 일어나 오색 불빛 찬란한 봉을

좌우로 흔들어 댔다. 가수가 발라드풍의 노래를 부를 때는 함께 따라 부르며 손을

머리위로 올려 좌우로 질서정연하게 흔들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녀들은

자연스럽게 가수의 노래에 호응하였다.

 

 나는 2층에 앉아 거대한 조류潮流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소녀들

은 내 여동생, 내 딸, 내 아내, 내 누이들이었다.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오빠부대

는 많이 보아왔지만 오늘처럼 질서정연하며 응축되어 있던 열기를 뿜어내는 나이

든 소녀부대를 목격하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소녀들 틈에 끼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좌우에서 불을 뿜어내는 소녀들의

열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어야 했다. 나는 팝콘을 몇 알 먹다말고 슬그머니 의

자 아래로 내려놓고 소녀들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하여 가사도 잘 모르는 노래를 속

으로 웅얼거리며 따라하고 박수를 쳐대며 환호해야 했다. 만약 그리하지 않고 졸고

있다거나 무덤덤하게 앉아 있으면 나 혼자 망망대해에 고도孤島가 될 것 같았다.

공연이 시작되고 10분도 안 되어 나는 겨울 점퍼를 벗어야 했다.

 

 그리고 곧 나도 은발의 소년이 되어 우상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과 목소

리의 고저장단高低長短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녀들과 환호하게 되었다.  도가니

속 같은 분위기에서 잠을 청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한심한 짓인지 나는 깨

닫고 소녀들과 함께 우상을 향해 소리치고 우상이 슬픈 연가를 부를 때 눈물을

르르 흘리기도 하였다. 나는 그동안 7080 소녀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偏見

얼마나 쓸데없는 것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추억의 소녀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었다.

 

 아직도 현모양처賢母良妻와 일부종사一夫從事 또는 부창부수夫唱婦隨를 뇌리에

담아두고 있으면서 정서나 문화적 측면에서 업그레이들 거부하고 있는 미개척 된

소년들이 있다면 서둘러 딱딱하고 무거운 헤게모니(Hegemony)를 버려야 한다.

 

 고집스럽게 전통을 부르짖거나 나이를 핑계 대며 아내나 아이들의 정서와 거리

가 먼 자세를 유지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가정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

야 한다. 나는 공연 중에도 소녀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중년의 소녀들이 아들이

아닌 딸들과 함께 공연장에 온 경우가 많이 보였다.

 

 소녀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년, 소녀들을 무조건 집안에만 잡아두려는 뻣뻣한

소년, 남편 또는 가장家長임을 강조하며 아내나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자신의 의

지를 펼치려하는 전쟁에 임하는 듯한 소년. 이러한 소년들은 5년 내로 파경破鏡을

맞거나 외톨이 신세로 전락되어 독거노인獨居老人의 대열에 포함되기 쉽다. 또한

너무 소녀의 마음을 잘 알아 여러 소녀들의 환심을 사는 소년도 역시 단독세대單獨

世代가 될 확률이 크다.

 

 ‘왜 진작 이런 생생한 현장감과 감동이 출렁이는 콘서트를 자주 찾지 못했나’하

는 후회가 막급했다. 지연地緣, 학연學緣을 들먹이며 텁텁한 탁주잔을 기울여 온

그 무수한 시간이 다 어디로 흘러가 버렸는지. 나는 2시간 30분 동안 펼쳐지는 환

상적인 공연에서 우상의 손짓에 괴성怪聲을 질러가며 자신의 속내를 토해내는 소

녀들의 격정激情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만약 소녀들에게 이러한 다중집합장소의 공연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될까. 시대적

문명의 조류潮流를 외면한 채 남편의 서슬에 눌려 집안에 갇혀 솥뚜껑이나 다루고

혼자 노래방 같은 곳에 가서 남몰래 속내를 털어낸다면 아마 많은 소녀들이 우울증

이나 원인도 잘 모르는 병에 시달리고 있으리라. 소녀는 소년과 달리 일정한 주기週

期로 웃을 수 있는 시간의 공급이 필요하다.

 

 소녀들은 자그마한 일에도 잘 웃는다. 소년들은 자신의 틀과 반대의 정서적 구조

를  지닌 소녀들에게 자주 웃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조건을 선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발생되는 불이익은 고스란히 배가되어 소년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웃음을 선사할 줄 아는 소년, 얼마나 멋진 사내인가.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좀 경박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년부대, 누나부대라는 말

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오빠부대가 있으면 누나부대도 있어야 한다. 이제는 부창부

수라든가 일부종사라는 말은 듣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수십 년을 살아온 황혼의

부부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미련 없이 갈라서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의 소년소녀는

서 있다. 남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집사람’, ‘우리 마누라’라는 단어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집사람은 우리가 농경사회나 유교적 관념이 강한 시대에 흔히 사용되던 말이다.

남편이 들녘에 나가 농사일하는 동안 아내는 집안서 남편이나 일꾼들 식사와 새참

을 만들어야 했고 아이들을 양육해야 했다. 이때 집안에서 일만 하는 사람을 집사

람이라 했다. '우리 마누라'라는 말은 우리 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귀에 자칫

처다부一妻多夫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 공동 소유개념의 우리 마누라, 빨리 고쳐

야 할 호칭이다.

 

 중년의 소녀들이 인기가수 공연에 구름떼처럼 몰리는 이유는 잘생긴 가수의 얼굴

을 보려고 모여든 게 아니다. 소녀 서너 명이 유명 가수의 공연을 관람하면 재미가

없다. 그러나 노도怒濤 처럼 수천 혹은 수만 명의 소녀들이 한 장소에 모여 집단체

면에 걸린 듯 도취되어 함께 노래하고 박수치면서 집안에 있는 소년이 제공해 주지

못한 웃음을 보상받기 위한 심리적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를 보러오는 경우도 많다.

 

 심리적 보상을 받기 위하여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던 소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몇 만원에서 십만 원이 넘는 입장권을 주저 없이 구매한다. 나는 콘서트를 보면서

만약 공연장의 90%가 관객이 중년의 남성이라면 소녀들처럼 웃고 박수치며 열광

의 도가니를 연출해 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아마 시큰둥하거나 어

쩌다 자신이 아는 노래가 나오면 마지못해 박수나 치는 어색한 수준일 것 같다.

 

 유교적 사고방식이 뿌리 깊은 극동아시아권의 소년들은 이제부터라도 소녀들에

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나 가수 수준은 안 되더라도 소녀들 앞에서 자주 향수鄕愁

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를 선물해 줘야 한다. 또는 소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콘서

트 장을 찾거나 극장을 찾아도 중년의 소녀들은 무척 좋아한다.

 

 그렇지 못하고 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을 법한 부창부수나 일부종사를 외치고

있다면 저녁에 혼자 밥을 먹거나 황혼黃昏에 독거노인獨居老人으로 전락될 위험

이 크다. 서울에 거주하는 중년 인구의 상당수가 단독세대라는 현상이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가.  ‘승철’,‘승철’을 외치며 서너 번 앵콜을 외치는 소녀들을 보며 나는

경외심敬畏心과 함께 전율戰慄하며 어설프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 창작일 : 2012.12.1.  21:00


 

 

 

 

 

 

 

 

 

 

 

 

 

 

 

 

 

 

 

 

 

 

 

 

 

 

 

 

 

 

 

출처 : 사랑방
글쓴이 : 여강 최재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