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섣달과 정월의 갈림길에서
섣달과 정월의 갈림길에서
정각스님 · 원각사 주지
I. 이승의 갈림길에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
듬성듬성 길어지는 해질녘 그림자 밟고 거리의 사람들은 서둘러 집을 찾는다. 이따금씩 눈에 띄는 구세군 자선냄비며,
길모퉁이에는 연탄불 보듬고 앉아 군밤 파는 아낙네들…
그러나 그 곳 쓸쓸한 도시의 세밑 풍경에도 실같은 하나의 희망이 숨겨져 있다. 묵은 해 마무리 짓고 또 다시 태양 우뚝 설 신년 아침을 희구하는
이승의 갈림길에도…
II. 섣달 그믐의 풍경
이제 오랜 정적의 시간이 흐르면 도심 한복판,
종로 네거리 보신각에서는 제야(除夜)의 종소리 울려 퍼진다.
무수한 인간 염원을 가득 담고서,
철없는 아이들의 바램조차도 우주의 중심 수미산(須彌山) 정상을 향해 달린다. 제석천왕 다스리는 도리천( 利天)
서른 세 하늘 진동시키는 서른 세 번 종소리는
온 법계(法界) 진성(眞性)과 어울림 되어 우주를 가득 메운다.
A-U-M(옴)…
A-U-M(옴)…
섣달 그믐의 풍경,
어딘지 모를 아쉬움 속에 또 다른 희망이 있는 밤.
사람들은 어둠을 지키며 마음의 심지에 촛불을 밝힌다.
이 날,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는다.
일찍이 청소를 끝낸 집안 곳곳에 등을 밝히고
새해를 맞이할 채비를 한다.
이 날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세어진다는 할머니 말씀에
어린 손자들도 멀뚱멀뚱 뜬눈으로
오랜만에 모여든 정겨운 어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옛부터 이 날을 지새움은
경신일(庚申日: 일년에 여섯 번의 경신일이 있어,
이 날 잠들면 개개인을 따르는 수호령이
그사람의 잘잘못을 제석천왕에게 고자질해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게 한다고 한다.
반면,
이 여섯 번의 경신일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잠들지 아니하면
자신의 수호령을 조복할 수 있어 자기 임의로 부릴 수 있다고 한다)의
풍습이 이어져온 탓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빛( )을 소중히 한
우리 배달민족의 근원적 심성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날은 달리 수세(守歲)라 불리웠고,
이 날 불 밝히고 새해를 맞이함은
새해의 복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종의 종교적 염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 날 우리는 광명진언(光明眞言)을 밤새 외우며 불 밝힌 저녁을
지새우는 할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기도 하다.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카 바이로 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 바를타야 훔
III. 새해 아침에 이르러
이제 점차 새벽이 찾아오면 어디선가 멀리 닭 우는 소리 들린다.
닭 울음은 이제까지의 소리와는 전연 달라,
그 소리에 놀란 모든 사악한 기운은 자취를 감춘다.
이 때 개가 짖어서는 안 된다.
개가 짖으면 년(年) 중 도둑이 들끓게 되며,
까마귀의 울음도 풍재와 병마를 이끌어 오기에 좋지 않다.
그러나 까치는 울어도 무방하다.
송아지 음매- 울면 더더욱 좋다.
그 해에 풍년이 찾아올 것이기에…
그리고 그 새벽 도깨비불을 보았다면
1년 내내 좋은 일이 찾아들 징조라고 옛 사람들을 말하기도 하였다.
여하간 이렇듯 새벽은 찾아들고,
그것을 신호로 골목골목 누비는 복조리 장수.
한 해의 복을 한껏 담고자 사 모은 복조리는 문설주에 내어 걸린다.
그럼 아이들은 이제 설빔을 갈아입고 노래 부른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정녕 새해 아침이 밝아온 것이다.
IV. 설날 풍속도
차례[茶禮]를 필두로 새해 첫날은 시작된다.
준비한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사당에 올리는 제사,
이 차례에도 법식이 있어 언제나 종가(宗家)에서만 행해진다.
차례를 모시기 위해 멀리 있는 직계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며,
그럼에도 여기서 여자는 예외가 된다.
특히 '정초에 여자를 보면 1년 내내 재수가 없다'는
등의 금기는 차례에 있어 더욱 엄격해진다.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특권조차도 이 날만은 여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은 간결하다.
차례(茶禮),
말 그대로 차(茶) 한잔 올리는 정성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날 음식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다.
떡국이다.
옛부터 떡국은 꿩고기를 넣어 끊이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꿩을 구하기 어렵다면 닭과 함께 끊여도 좋을 일이다.
'꿩 대신 닭'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편 이 때 쓰일 술은 데우지 않음이 원칙인데,
아직 한식(寒食)은 멀었으되
이 때의 술에는 따뜻한 봄을 맞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차례를 마치면 이어 세배(歲拜)가 시작된다.
집안 어른들을 시작으로 친지 및 마을 어른들도 찾아 뵙는다.
세배가 끝나면 어른들은 말한다.
"자네가 올해 박사학위를 땃다면서?
", "금년 아픈 병이 나아졌다며?
", "금년에 부자가 되었다지?"
등등.
그러나 이것은 현재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항상 미래 가정법적 표현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기원이며,
축원의 말인 것이다.
이런 말을 덕담(德談)이라 한다.
인간의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靈的) 힘이 깃들어 있으며
(佛家에서 쓰는 '정구업진언'은
그 진언 다음의 말이 모두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새해 첫날 제일 먼저 듣게 되는 말은
곧 앞일을 예측해 주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때 아이들은 덩달아 세뱃돈까지 받게 된다.
아이들 바지의 궤츰이나 오른쪽 바지 끈에 매달린 빨간 복주머니는
점점 부풀어오른다.
아이들 마음까지 부푼다.
세배를 마친
아이들은 양지바른 곳에 모여 널뛰기며 돈치기를 한다.
바람 센 언덕에 오른 아이들은 가슴 뿌듯이 연을 날린다.
방패연이며 가오리연,
수많은 종류의 연들을 날리며 한 해의 액운(厄運)을 연에 실어 날려보낸다.
(이때의 연에는 액<厄>자가 쓰여지게 된다.)
그러다 싫증나면 집안에 돌아와 윷놀이를 하는데,
여기서 지고 이기고는 문제되지 않는다.
이긴다는 것,
진다는 것은 그저 객관적 서술일 뿐,
윷판에는 천체(天體)의 흐름만이 있기 때문이다.
윷판설. 조선조의 문인 김문표(金文豹)의 윷판설(柶圖說)에 의하면, "윷판의 바깥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가운데 있는 것은 북극성이요, 옆의 28점은 하늘 28수(宿)를 본뜬 것"이라 하는 바, 이는 우주 천체도(天體圖)를 축소시킨 것이다. 이 안에서 도(돼지)· 개(개)· 걸(양)· 윷(소)· 모(말) 및 천체의 흐름과 그 변화를 주관하는 인간이 있다. |
윷판에는 천체의 변화가 있으며,
이 변화에 순응하는 무리들인
'도(돼지)·
개(개)·
걸(양)·
윷(소)·
모(말)'와
그 변화를 주관하는 인간이 있어 그들이 어우러진 채,
그저 모두가 자연이며
자연의 한 가닥 흐름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도 어른들은 몹시 바쁘다.
새해 벽두부터 일년 내내 집안에 액운이 끼지 않게끔
채비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준비되는 것은 언제나 세화(歲畵)이다.
닭의 형상이거나 호랑이,
또한 처용의 형상을 그린 그림을 사람들은 대문에 붙이게 된다.
물론 옛날에야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직접 문에 바르거나
(구약성서 {출애굽기} 가운데서 모세는 자기 부족의 집 대문에
양의 피를 칠해 재난을 면케 하고 있다)
문 대들보에 닭 뼈나 호랑이 뼈 등을 매달기도 하였는데
(10여년 전 벌교의 동화사란 절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 곳에는 사천왕문이 없는 대신 절의 초입 대들보에
호랑이 뼈가 매달려 있음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이런 풍습들 모두가 사라지고 입춘 때 겨우
'입춘의 방'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정도를 붙여놓는 것이 일반화 된 듯하다.
]한편 가족들 중
삼재(三災)가 든 사람이 있다면
문설주에 3마리의 매를 그려 붙여 이를 소멸케도 한다.
(여기서 삼재란 수재(水災)·화재(火災)·풍재(風災)를 뜻하며,
간혹 도둑·병난·질역과 기근을 말하기도 하여
뱀·닭·소띠는 돼지·쥐·소해에 3재가 들고,
원숭이·쥐·용띠는 범·토끼·용해에,
돼지·토끼·양 띠는 뱀·말·양 해에,
범·말·개띠는 원숭이·닭·개 해에 들삼재,
누울삼재,
날삼재 순으로 삼재가 든다고 한다.)
이제 모든 준비를 갖춘 가정에서는 절[寺]을 찾아도 좋다.
그러나 절을 찾되,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각 법당에 예를 올리고서
반드시 절의 떡 조각을 하나씩 가져와야 한다는 점이다.
옛부터 절에서 만든 떡은
손님(마마)을 곱게 하는 효험이 있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요즘은 '절의 가마솥 누룽지를 먹으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퍼져 수험생 학부모들이 절의 누룽지를 찾아
아귀다툼하는 광경을 간혹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말띠 스님들께 옷을 지어 올리면 그 공덕으로
아이들 성적이 말처럼 도약한다'는 속설 덕분에
말띠 스님들은 언제나 새 옷을 차려 입게도 된다.)
한편,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이라면 행길가에 쪼그려 앉아
잠시 명종 때 토정 이지함(李之 )이 지었다는
토정비결을 한 번쯤 보는 것도 크게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본인 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것을 한 장씩 떼어
저녁이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해를 계획하며,
각기 한번쯤 서로의 것을 들춰봐도 흉이 되지 않을 것이다.
V. 황혼 녘에 이르러
한편 『동국세시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기도 하다.
"남녀가 1년 동안을 두고 빗질할 때마다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두었다가
설날 저녁 무렵에 문밖에 이것을 태워서
재앙이나 질병을 제거하는 풍속이 있다"고.
이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절에서도 크게 경계를 하고 있다.
귀신들,
특히 아귀(餓鬼)의 눈에 머리카락은 마치 뱀처럼 보이므로,
함부로 머리카락을 흘린다거나 하는 것은 주변의 귀신들을
크게 놀라게 해 불행한 일을 초래케 한다고 말이다.
여하튼 이 날이 되면 할머니들은
애써 모아둔 머리카락을 비벼 말아서 성냥을 그어 태우게 되는데,
나 역시도 어려서부터 이 광경을 몇 번씩이나 목격한 일이 있었다.
VI. 아름다운 이야기
그러는 사이,
정월 초하루의 밤은 자꾸만 깊어간다.
하루 종일 차례를 지내며,
세배를 다니며 놀이에 정신이 없던 아이들은
이제 소록소록 잠에 빠져든다.
엄마의 무릎을 베개 삼고 할머니의 정겨운 옛이야기
어렴풋 들으며…
할머니는 말한다.
"아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야광(夜光)이란 귀신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귀신은 설날 밤만 되면 마을에 내려와
집집마다 돌며 토방에 널려진 아이들 신발을 하나씩 하나씩 신어 본다지 뭐니. 그러다가 신발이 자기 발에 맞으면 얼른 그것을 신고 가버린단다.
그러면 그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곧 어디가 아파 병이 든다거나,
안 좋은 일이 찾아 온다나…?
그러니 아가,
어서 밖의 신발을 안에 들여놓고 자거라…"
그러나 깊이 잠든 아이는 깨어날 줄을 모른다.
아이는 깊은 잠 속에서 꿈을 꾼다.
꿈에는 어제 녘의 일들이 현실로 와 있다.
새 신을 사온 엄마,
그리고 그 새 신을 신고 좋아라 불렀던 노래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소록소록 잠드는 아이,
그 아이 옆에는 야광귀신(夜光鬼神) 아닌
약왕보살(藥王菩薩: 약사여래藥師如來.
옛부터 발음상의 유사점으로 인해 이 둘이 혼용되었으며,
병을 낫게 해주는 약왕보살의 기능이 반전되어 나타나고 있다)
애련히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밖에는 문풍지 요란스레 울려오나
아가의 잠을 방해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1990년 통도사 월간지 <등불>에 실었던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