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강설무비큰스님·대새선사의 행장

[스크랩] 허사리 수원(許司理 壽源)에게 보낸 답장 2-4

娘生寶藏 2013. 6. 12. 08:11

허사리 수원(許司理 壽源)에게 보낸 답장 2-4

 

此心 無有實體어늘 如何硬收攝得住 擬收攝이나 向甚處安着 旣無着處則無時無節하며 無古無今하며 無凡無聖하며 無得無失하며 無靜無亂하며 無生無死하며 亦無湛然之名하며 亦無湛然之體하며 亦無湛然之用하며 亦無恁麽說湛然者하며 亦無恁麽受湛然說者하리니 若如是見得徹去하면 徑山 亦不虛作此號 左右 亦不虛受此號하리니 如何如何

 

이 마음은 실체가 없습니다. 어떻게 억지로 수섭(收攝)하여 머물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수섭하고자 하더라도 어느 곳에 안착하겠습니까? 이미 안착할 곳이 없다면 시절도 없으며, 고금도 없으며, 범부와 성인도 없으며, 얻고 잃음도 없으며, 고요하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생사도 없습니다. 또한 담연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또한 담연이라는 본체도 없으며, 또한 담연의 작용도 없습니다. 또한 이렇게 담연을 말하는 사람도 없으며, 또한 이렇게 담연이라는 이름을 받을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보아서 사무친다면 경산(徑山,대혜)도 또한 이 도호를 헛되게 지은 것이 아니며, 그대도 또한 이 도호를 헛되게 받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설 : 사람의 마음은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면서 한편 이 우주법계에 꽉차있는 것이 또한 이 마음의 실다운 모습이다. 자취나 흔적으로서의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만, 본체나 본래인으로서의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은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다. 또한 사람 사람의 역사적 차원은 잠깐이나마 실체가 있지만 사람 사람의 궁극적 차원은 실체가 없다. 궁극적 차원으로서의 사람이야말로 모든 불교인이 다가가서 접촉하려고 하는 그 사람이다. 궁극적 차원의 사람은 차별 없는 참사람이다. 궁극적 차원의 사람은 그대로가 부처님의 무량공덕 생명이며 따라서 사람 사람의 본래적 생명이다. 이 궁극적 차원의 참사람은 수섭할 수도 없으며 일정한 곳에 안착할 수도 없는 존재다. 그래서 시절도 초월하였으며 고금도 초월하였으며, 범부와 성인도 초월하였으며 득실도 초월한 자리다. 생사와 열반마저도 초월한 자리다. 그 자리에 어떻게 담연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그 자리는 허사리도 같은 차원이며 대혜 선사도 또한 같은 차원이며 이 글을 쓰는 나도 또한 같은 차원이다. 누가 누구에게 담연이라는 도호를 주며 누가 누구에게 담연이라는 도호를 받는다는 말인가. 사람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이 궁극적 차원의 참사람에 있다. 우리 모두가 이정도의 견해를 가져야 비로소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담연이라는 도호를 주고받아도 서로가 허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無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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