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산에 홍엽(紅葉)이다/현진스님
현진스님 홍류동(紅流洞)이라 부르는 이유가 가을엔 더 분명해진다. 붉은 단풍빛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데 그 길이가 구곡(九谷)이나 된다. 역시 해인사는 가을 단풍이 일경(一景)이며 저녁 종소리가 이경(二景)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하루는 주위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서 숲 그늘에 앉아 있기도 하고 계곡에서 땀을 씻기도 하면서 산을 올랐는데 어느새 목적지가 나타났다. 정말 그 날의 산행은 힘들지도 않았으며 멀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그 날의 산행은 걸어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은 거리를 두고도, 목적을 즐기는 사람은 ‘한 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아직 한 시간이 더 있다’고 말한다. 목적이 기준이 되면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순간 순간의 존재 의미가 스스로에게 주어진다. 돈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면 돈을 버는 과정의 시간은 의미가 줄어들고 만다. 천 원을 남기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하루가 불행하지만, 천 원을 쓸 수 있는 조건에 감사하면 하루가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 삶의 한 컷 한 컷에는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이 따로 찍혀 있지만 인생의 필름에서는 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행복만 있다면 인생의 드라마는 박진감이 없다. 살아가는 현장이어야 한다. 미래에 초점을 너무 맞추면 현재의 시간은 낭비가 되기 쉽다. 수행 역시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라 수행하는 과정 자체가 깨달음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