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비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2) 우리의 삶에 왜 자비가 필요한가
누구나 괴로움을 겪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비는 중생의 괴로움을 알지 못하면 일어나지 않습니다.1)
‘모든 이들을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어야겠다’라는 것
그것이 ‘자비심’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심이 수행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수행자는
자신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즉 중생의 고통은
연기(緣起)를 모르는 무지 때문에 발생하는 것임을 알고
그 무지를 타파하게 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고통을 없애주겠다는 것’
그것이 바로 ‘보리심을 발(發)’하는 것입니다.
연기는 한 마음을 말합니다.
또 너와 나와의 관계가 자비로 이루어지므로 이를 연기라고 합니다.
따라서 자비의 실현은 곧 연기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며
연기하는 것은 독립된 개체가 없어 무아이므로
‘무아의 깨달음’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형성된 모든 것이 복합체임을 모르는 것이 무지이며
그 무지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온갖 괴로움을 없애주면
죽음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합니다.
사랑과 연민은 모두가 연기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사랑은 단절로부터 관계성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에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괴로워하며
그들을 괴로움에서 건져 주어야겠다는 좋은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비는 공성의 지혜에 의해 나타납니다.
그 자비의 실현을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과 죽음의 문제해결에 있어서
정념(正念), 즉 ‘알아차림’으로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
무상․고․무아의 삼법인을 볼 수 있고
삼법인의 지혜로 생사가 없는 열반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자비심이 필요한가?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비심이 꼭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그냥 관찰만 하는 것은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지 않지만,
자비심을 더하면 빠른 반응을 일으키므로
그 현상의 삼법인을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뇌의 소멸과 지혜의 계발이 빠르게 됩니다.
즉 알아차림이 현상을 삼법인으로 꿰뚫어 보는 것처럼
자비심에도 현상의 무아, 공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림과 자비심은 서로 상응하며,
수행의 현상도 각각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경계[한 맛]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비(慈悲)는
부정적인 생각과 자비의 반대되는 마음을 정화시킵니다.
즉, 무명과 그에 편승하여 일어나는 갖가지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줍니다.
그래서 미움, 성냄, 원한, 적대감, 두려움, 잔인한 폭력성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마음이 녹아서 사라집니다.
자비심이 일어나면 처음엔 부정적인 모든 심리가 강하게 저항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긍정적인 심리를 일으켜서 자비심을 증폭시킵니다.
이 자비심은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심리를 일으키는 원인인 5대를
긍정적인 5대로 바뀌게 하여 질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특히 몸을 통해 나타나는 과거의 기억과
갖가지 부정적인 심리와 영상 등도 없앱니다.
다시 말하자면,
번뇌가 마음에서 나와 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몸이 아픕니다.
몸은 다시 마음에 영향을 주어 번민하게 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괴로움의 연결 고리 중에는
5대(五大 흙․물․불․바람․허공의 5종의 생명 에너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괴로움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5대를 활성화시켜 번뇌를 소멸시키는 변화가 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5대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키워드는 자비심입니다.
몸이 허약해지면 영양분 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몸을 자비심으로 감싸 주면(쓰다듬어 주는 것) 자비심이라는 영양분의 힘으로
번뇌를 일으키던 5종의 에너지가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혜로 변화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비심은 5대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비심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또 자비심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므로 연기(緣起)이며
개체의 실체와 자아를 세울 수 없으므로 공이며 무아입니다.
그래서 『유마경』관중생품에서
“중생을 볼 때 물에 뜬 달같이 보고,
돌여자가 아이 낳는 것처럼 중생은 중생이 아니고 공임을 보라.
그럴 때 자비심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공성도 자비심의 속성입니다.
자비심은 배타적이고 대립적이지 않고 단절을 유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몸과 마음 상태와 융합할 수 있습니다.
자비심이
상대방의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감정과 생각을
감싸 안을 수 있기 때문에
몸의 5대 기운에 의해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은
자비심과 융합됩니다.
향의 연기나 담배 연기가 허공을 만나면 사라지듯이
번뇌를 일이키는 5대가 깨끗이 정화되면
지혜를 일이키는 5대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비손으로 몸에 자비를 주면
아만․분노․탐욕․질투․무지를 낳는 5대는
그 생명 에너지가 반응하면서 변화가 오며
몸이 사라지는 삼매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말하자면, 몸의 무상(無常)은
상(相)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어 버리게 하고,
고(苦)는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여 괴로워하는
바라는 마음을 사라지게 하며,
무아(無我)는 실체 없음[空]과 주재하는 자아가 없음을 깨닫게 하여
모든 존재가 함께하는 자비 자체임을 일깨워 줍니다.
이 삼법인의 지혜에 의해 흙의 아만은 평등으로,
물의 분노는 사랑으로,
불의 탐욕은 베풂으로,
바람의 질투는 공정한 마음으로,
허공의 무지는 지혜로 전환됩니다.
┨註釋┠─────────────────────────────────────────
1)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으며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은 알아야 할 대상입니다.
고통을 잘 확인하지 못했다면 자비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비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도와주고자하는 열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나지 않으면
깨닫고자 하는 열망(보리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리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바른 깨달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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