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발심수행

[스크랩] 간경수행

娘生寶藏 2011. 9. 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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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으로 가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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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수행 (1) _ 개요

간경수행은 가장 기초적인 수행법이므로 나름대로 여러 방편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이 방편들은 크게 열 가지로 구분되는데, 이를 일러 '십종수지'(十種受持) 또는 '십종전통'(十種傳通)이라 부르는 바, 그것은 수행자가 마땅히 행해야 할 열 가지 간경법이란 뜻이다.


대승의 법을 수행하는데 열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쓰고 베낌이요.

둘째는 공양함이요,

셋째는 베풀어서 남에게 줌이요,

넷째는 다른 이가 읽고 외면 한 마음으로 들음이요,

다섯째는 자신이 읽음이요,

여섯째는 자신이 이치대로 이름과 글귀와 맛과 뜻을 취함이요,

일곱째는 도리 그대로와 이름과 글귀와 맛을 나타내 설명함이요,

여덟째는 바른 마음으로 듣고 욈이요,

아홉째는 조용한 데서 이치대로 헤아림이요,

열째는 이미 뜻이 들인 것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닦아 익히는 것이다.<중변불변론 무상승품>



간경수행 (2) _ 간경수행의 의미

간경은 경전을 통해 불법을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으로만 부처님의 말씀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통해 그 말씀이 몸과 마음에 배도록 하는 수행인 것이다. 따라서 간경수행자는 진리를 익혀, 안으로는 끊임없이 마음을 향하고 밖으로는 끊임없이 행실을 가다듬도록 해야 한다.


이에 선가귀감에서는 "경을 보면서 마음 속을 향해 공부하지 않는다면, 만 권의 글을 모두 보아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을 보면서 마음으로 살피지 않는다면 어디 이익이 없는 데만 그치겠는가? 필경 사견과 아만을 키우고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마구니가 될 것이다.

 

육조께서는 법달이 문구 외우는데만 급급하여 헐떡거릴 뿐 번뇌와 망상의 분별심을 쉬지 못함을 보시고 참 독경이란 경의 뜻이 마음 가운데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마음을 밝히어 성품을 보는 것을 보살이라 하였다. 또한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이것이 경을 굴리는 것이지만,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못하면 이것은 경에게 굴림을 받는 것이라 하였다.


마음이 미하면 법화가 굴리고

마음을 깨달으면 법화를 굴리나니

오래 읽어도 밝히지 못하면

경 뜻과 원수 되리라.

생각이 있으면 생각이 삿되니

유무를 다 안 따지면

백우거(일불승) 길이 놀리라.


수행을 위한 간경을 특히 전경(轉經)이라고 하여 법을 굴린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고 그 뜻을 마음으로 깨달으면 경을 굴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지식을 쫓아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사구게 하나라도 마음 가운데 깊이 새기고 몸소 실천하여 깊은 뜻을 스스로 체득하여야 참다운 간경 수행이라 할 것이다.



간경수행 (3) _ 간경수행의 원리

모든 불교수행의 목적이 깨달음에 있듯이 간경수행의 목적도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성불하는데 있다. 그러나 진리란 말로써 전해질 수 없거니와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거늘 어떻게 언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경전은 일반적인 글이 아니다.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것이니 부처님은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자리를 다시 중생의 근기에 맞게 언설로 표현한 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깨달은 분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 속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 간경수행의 원리이다.

문 : 많이 듣고 널리 읽으며 배워 익히고 기억해 가지며, 또한 글뜻을 따라 궁구하는 등으로 어찌 견성할 수 있으리오.


답 : 만일 말을 따라 견해를 내고 글과 함께 알음알이를 지으며, 언전(言詮)에 집착하여 지취(旨趣)를 잊고 교(敎)를 좇아 마음을 미해 손가락과 달을 분간치 못한다면 곧 성품을 보기 어려우려니와, 그렇지 않고 말을 인하여 도를 깨닫고 교를 빌려서 종지(宗旨)를 밝히며, 지혜롭게 언전에 들어 깊이 부처님의 뜻을 탐구한다면 실로 다문(多聞)에 나아가 보장(寶藏)을 이루며 적학(積學)으로써 또한 지혜의 바다를 삼을 것이니, 범부로 좇아 성인에 듦이 모두가 현학(玄學)의 힘을 인함이요, 위태한 곳에 처하여 평안함을 얻음이 다 묘음(妙旨)의 공(功)으로 도운 것이다.


말이란 도에 드는 계단이요, 교는 사정(邪正)을 가려내는 먹줄이니, 그러므로 <화엄경>에 이르기를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머물게 하려 한다면 반드시 무장애해탈지를 떠나지 말 것이니, 이 무장애해탈지는 일체법여실각(一切法如實覺)을 떠나지 않았으며, 일체법여실각은 무행무생행혜광을 떠나지 않았고, 무행무생행혜광은 선선교결정관찰지(禪善巧決定觀察智)를 떠나지 않았으며, 선선교결정관찰지는 선교다문(善巧多聞)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해서 요지(了知)한다면 정법(正法)을 더욱 배로 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힘을 구할 것이니, 종일을 언제나 법문 듣기를, 법에 기뻐하기를, 법을 즐기기를, 법에 의지하기를, 법에 따르기를, 법을 알기를, 법에 순하기를, 법에 도달하기를, 법에 머물기를, 법을 실행하기를 발원할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부지런히 불법을 구해서 있는 바 온갖 재물을 아낌이 없고 또한 따로 귀중하고 얻기 어려운 물건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다만 오직 불법을 선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하는 것이다" 하였다.


또 <법화경>에서 "만일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명료한 사람에게라면 다문강식(多聞强識)이라도 그를 위해 설할 수 있으리라"하신 말씀을 論에 해설하기를 "지혜가 있으나 다문함이 없으면 곧 실상을 알지 못할 것이니, 비유하면 캄캄한 곳에서 눈은 있으되 볼 수 없는 것과 같고, 다문하나 지혜가 없다면 또한 실상을 알지 못하리니, 흡사 밝은 데서 다시 등불까지 있으나 눈이 없어 못보는 것과 같다. 또한 많이 듣기도 하고 겸하여 지혜도 맹리(猛利)하면 곧 가르친 바를 능히 받아 지닐 수 있으려니와, 그러나 들음도 없고 지혜도 없다면 이를 일러 사람몸이 소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원교(圓敎)의 이품(二品)엔 선관(禪觀)에 겸하여 독송하기를 권하였으니, 이것은 위(位)에 거하여 물러나지 않으면 비로소 듣는 법에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 듣는다면 관력(觀力)을 돕게 되고 바로 배우면 종지(宗旨)의 공(功)을 이루는 것인데, 일부러 소나 양 같은 눈을 지어서 방향을 가리지 못하고 또한 어리석고 고지식한 마음에 처하여 숙맥(菽麥)을 분간치 못해서야 되겠는가.<만선동귀집, 제2장>


간경수행을 통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그 핵심은 경전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경전을 지식을 쌓는 수단으로 대하느냐 부처님이 직접 나에게 설법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경전을 지식을 쌓는 수단으로 여긴다면 경전을 보는 것이 오히려 아만을 쌓고 무수한 시비분별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장애가 될 뿐이다.


그러나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한말씀 한말씀을 헛으로 듣지 않으며 언제나 마음으로 잊지 않고 생각하여 몸으로 익히는중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하고 부처님의 참뜻을이해하고자 하는 한가닥 진실한 의문을 가슴에 담고 몸과 입과 생각으로 언제나 오로지 하다보면 문득 부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깨달아 가다보면 드디어 모든 이치가 밝아지고 번뇌업장이 눈 녹듯 사라지고 밝은 지혜가 솟아날 것이다. 따라서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통달하여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알아지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일시에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간경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하는 원리이다.

 

 

간경수행 (4) _ 간경수행의 필요성

이와 같이 간경수행을 통해 본성을 찾는 길이 분명하니 간경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선가에서 불립문자라 하여 교를 배우는 것을 꺼리고 경전마저 멀리하니 그것은 눈뜬 장님을 만드는 결과로써 눈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가는 것처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불립문자란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즉 문자에 갖히지 말라는 것이지 문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현재 부처님과 만나서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니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어찌 허물이 되겠는가. 허물이 있다면 보는 자가 지혜로써 궁구하지 아니하고 생각으로 분별하고 지식을 쌓는 데만 급급한 것이니,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젖을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것과 같다. 모든 이치가 그러하겠거니와 더구나 경전은 부처님의 현신일진데 어찌 그 길을 통하지 않고 도에 이를 수 있겠는가.


간경의 필요성과 바른 태도를 간명하게 밝히신 죽창수필의 내용을 인용해 보겠다. 이 글은 계율의 부흥과 선정일치를 강조하신 명대의 주굉스님(1535~1615)이 말년에 후학들을 위해 저술한 것으로 공부하는 자에게 아주 요긴한 말씀들이다.


나도 소시에는 선비들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을 보고, 선입견과 경솔한 판단으로 깨닫지 못했었다. 그 후 우연히 계단(戒壇)과 강당(講堂)에서 몇 권의 경을 구하여 읽어 보고는 비로소 크게 놀라며, '이같은 책을 읽어보지 못했던들 거의 인생을 허송할 뻔하였다'하고 생각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장성하고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한 번도눈에 스쳐본 적이 없는 자들이 무수하다. 실로 보배산을 눈앞에 두고도 찾아 나서지 않는 자들이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비록 읽기는 하지만 말만을 따라 이야깃거리로 삼거나, 자신의 문장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데 불과하며, 어려서부터 장성하고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잠시도 그 이치를 궁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 보배산을 찾아 나서기는 했으나, 그 보배를 찾아 취하지 않는 자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비록 토론하고 강연하기는 하지만, 또한 글자나 풀이하고 문장을 해석하면서 서로 아만을 내세우는데 불과하여, 어려서부터 장성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잠깐도 진실하게 수행하고 실천하지 않는다. 보배를 취하여 손에 가지고 놀거나 감상하며, 혹은 품 속에 넣고 옷 소매 속에 간직했다 도로 내버리는 자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식전(識田)에 물들면 마침내 道種을 이루게 될 것이니, 그러므로 불경을 불가불 읽어야 한다.


또 다른 한 편의 글에서는


어떤 참선에 대하여 자부하는 자가

"달마는 문자를 세우지 않았다. 견성하기만 하면 그만이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염불을 자부하는 자도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분을 만나는 것이다. 어찌 반드시 경전이 필요하랴" 하였다. 이 두 사람이 진정으로 얻은 것이 있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면 굳이 더 논할 일이 아니거니와, 실제 얻은 것이 없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런 일들은 대개 자신의 교리에 통달하지 못한 허물을 숨기려 하는 자들일 것이다.


나도 평소 염불을 숭상해 왔으나, 애써 사람들에게 경전을 읽기를 권하고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염불의 가르침이 어찌 저절로 온 것이겠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경전 속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중생들이 어떻게 10만억 찰 밖에 아미타불이 계신 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참선하는 이들은 교 밖에 따로 전한 것이라고 핑계하고 있으나, 교를 여의고 참구하는 것은 삿된 因이요, 교를 버리고 깨닫는 것은 삿된 견해임을 알지 못하였다. 비록 그대가 참구하여 깨달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경교로써 인증해야 할 것이요, 교와 더불어 합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모두 邪見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유교를 배우는 자는 반드시 육경과 사서로써 표준을 삼아야 하고, 불교를 배우는 자는 반드시 삼장 십이부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경전이 아니라면 어떻게 불법을 만날 수 있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는가. 경전을 멀리하는 것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부모 곁을 떠나 멀리 가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낱 미망을 벗어버리지 못한 범부중생으로써 부처님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늘 경전을 보고 마음에서 잊지 않아야 몸과 마음에 허물이 생기지 않고 불법을 향해 올곧게 나아갈 수 있다.



간경수행 (5) _ 간경수행의 대상_ 경전과 그 의미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을 비롯하여 수행자들이 지켜야할 계율을 담은 율장과 경과 율에 대한 해석이나 교리에 대한 연구 성과를 모은 논장의 삼장으로 나눌 수 있다.


경율론 삼장을 통털어 일컫는 말로 일체경, 또는 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부처님의 말씀은 처음에는 암송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함께 모여 합송함으로써 경전을 결집하였다. 4차에 걸친 결집이 있었으며, 3차 결집 때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었다.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로 결집된 이후에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팔리어 경전과 한역 경전이다. 특히 한역 경전은 아함경 및 그에 대한 주석서를 비롯하여 대승경론을 망라하고 있으므로 그 중요성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고려 때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국란극복의 의지를 대장경 편찬사업으로 발휘하여 오늘날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구려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게 되었다. 고구려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로 선정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화재로써가 아닌 살아있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곁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전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는가.


경전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당시의 중생들과 그 뒤의 중생들을 깨침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베풀어놓으신 은혜로움인 바, 우리가 보게 되는 경전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불보살님의 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경전은 부처님께서 자신의 삶을 또 다른 모습으로 남기신 것을 말하는 바, 곧 부처님께서 영원한 모습으로 살아 계시는 또 하나의 여래세계인 것이다.



간경수행 (6) _ 간경수행의 대상_ 경전의 구분

부처님의 말씀은 정해져 있는 바가 없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진리로 가는 길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방편도 다양하다. 따라서 경전에도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는데 이에 따라 12부로 구분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12부경인 수다라, 기야, 수기경, 가타, 우타나, 인연경, 아파타나, 여시어경, 본생경, 광경, 미증유경, 논의경을 듣고 또 모든 성문들이 들었거나 듣지 않은 것을 듣고자 하며, 그를 모두 다 외고 받아 지니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대지도론 33권>, 이하 인용함)


①수다라(Sutra)

계경(契經) 또는 법본(法本)이라 하며 경전 가운데 법의를 직설한 장행문(長行文)이다. 계경은 이치에 계합하고 근기에 계합한 경전을 말한다.

모든 경 가운데 사실 그대로 직설하는 것을 수다라라 하나니, 이른바 4아함과 모든 마하연경과 2백5십계경이다. 삼장에서 나오는 그 외에도 역시 모든 경이 있나니 모두를 수다라(修多羅)라 한다.


②기야(Geya)

응송(應頌) 또는 중송(重頌)이라 하며 앞의 장행문에 응하여 거듭 그 뜻을 운문으로 편 것, 곧 송을 말한다.


모든 경전 안에서의 게송을 기야라 한다.


③화가라(Vyakarana)

수기라 하며 보살에게 주는 성불한다는 기록의 경문으로 경에 말한 것을문답으로 해석하고 또 제자의 다음 세상에 태어날 곳을 예언한 것이다.


"이 사람은 그만큼의 아승지 겁을 지나면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수기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법에서 중생에게 수기를 하시려면 먼저 모두 빙그레 웃으시면서 한량없는 광명을 네개의 어금니에서 내시나니, 이른바 청색, 황색, 적색, 백색, 옥색, 자색, 등이다.


④가타(Gatha)

풍송(諷誦) 고기송(孤起頌)이라 하며 장행문에 의하지 않고 곧 게송의 구를 짓는 것이다. 법구경이 이런 경우다.


여섯 글귀, 세 글귀, 다섯 글귀 등 그 글귀의 많고 적음은 정해 있지 않는데도 역시 기야라 하며 또한 가타라고도 한다.


⑤우다나(udana)

자설이라고 하며, 묻는 사람이 없이 부처님이 스스로 설한 경으로 아미타경 등이다.


우타나(優陀那)라 함은 법이 있다는 것인데, 부처님은 반드시 말씀을 하셔야 되는데도 질문한 이가 없으면, 부처님은 대략 질문의 실마리를 열어 주신다.

 

⑥니다나(Nidana)

연기 또는 인연으로, 경 가운데서 견불문법(見佛聞法)의 인연과 부처님의 설법교화의 인연을 설한 것이다. 제경의 서품으로 인연경과 같다.


니타나(尼陀那)라 함은 모든 부처님 법이 본래 일어난 인연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 때문에 이런 일을 말씀하셨다"거나, 수다라중에서는 "어떤 사람이 물었기 때문이 그를 위하여 이 일을 말씀하셨다."거나, 비니(毘尼) 중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범하였기 때문에이 계율을 정하셨다"고 하는 것 등이니, 온갖 부처님의 말씀이 일어난 인연의 일을 모두 니타나 라고 한다.


⑦아바다나(Avadana)

비유라고 하며 경 중에 비유하여 설한 것이다.


아파타나(阿波陀那)라 함은 세간의 모양과 비슷한 일의 부드럽고 얕은 말이다. 마치 중아함 중의 장아파타나경과 장아함 중의 대아파타나와 비니 중의 이십억아파타나 등이다.


⑧이제목다가(Itivrtaka)

본사(本事)라 하며 부처님이 제자의 과거세의 인연을 설한 경문으로 법화경 가운데 약왕보살본사품 같은 것을 말한다.


여시어경(如是語經)이라 함은 두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끝맺는 구절이어서 "내가 먼저 말하기로 한 것을 이제 다 말하여 마쳤다"고 말하는것이요. 둘째 삼장과 마하연 이외에 다시 경이 있어 이를 일목다가(一目多迦)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목다가 라고도 한다. 마치 부처님께서 "이 사자는 비바시불 때에는 바라문의 스승이었는데 부처님을 설법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로 왔는데 그때 대중들은 법을 듣느라 함께 말하는 이가 없자 욕설을 퍼부었다. 이 구업 때문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91겁동안을 축생안에 떨러져 있었다. 이제는 나의 처소에 와서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해탈하게 될 것이다"고 하셨다. 이와 같은 등의 것을 인연이라 한다.

 

⑨자타카(Jataka)

본생이라고 하며 부처님이 자신의 과거세의 인연을 설한 경문이다.


본생경이라 함은, 옛날 보살이 일찍이 사자였을 때 숲 속에 있으면서 한 마리의 원숭이와 함께 친하게 지냈다. 원숭이는 두 마리의 새끼를 그 사자에게 맡기고 있었는데 마침 독수리가 배가 고파서 먹이를 찾고 다니다가 사자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원숭이 새끼를 채 가지고 나무위에 가 앉아 있었다. 사자가 잠에서 깨어 독수리가 새끼를 채어간 것을 보고 돌려달라고 했으나 돌려주지 않자, 자기의 날까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겨드랑이 살을 뜯어 내어 그 원숭이의 새끼들과 바꾸었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본생에는 구제한 일들이 많이 있나니 이것을 본생경이라 한다.


⑩비불략(Vaipulya)

방광(方廣)이라 하며 광정(光正) 광대한 진리를 설한 경문이다.


광경(廣經)이라 함은 마하연을 이름 하니 이른바 반야바라밀경과 육바라밀경과 운경과 법운경과 대운경 등 이러한 한량없는 아승지의 모든 경전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하여 말씀하신 경이다.


⑪아부타달마(Adbhutadharma)

희유법, 미증유법이라 하며 부처님의 여러 가지 신력을 나타낸 부사의사를 기록한 경문을 말한다.


마치 부처님께서 갖가지의 신력을 나타내면 중생들이 보고 전에 없던 일(未曾有)이고 괴상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른바 부처님께서 탄생할 때 몸으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의 세계와 어두운 곳을 비추신 것이다....땅은 크게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으며 나무는 음성을 내고 하늘의 음악이 울렸으니, 이러한 등등의 한량없는 희유한 일들을 말씀하신 것을 바로 미증유경이라 한다.


⑫우바제사(Upadesa)

논의라 하며 법리의 논의와 문답의 경문을 말한다.


논의경이라 함은 모든 질문한 이에게 대답하면서 그 까닭을 해석하는 것이다. 또 다시 모든 이치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니, 마치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말씀하실 때와 같다......이와 같은 문답에서 그 뜻을 널리 해석하는 것을 바로 우바제사라 한다.


<대지도론>에서는 이와 같이 경문을 구분하면서 이러한 모든 경전들을 수지독송하기 위해서는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 말은 12부경의 핵심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이다.


반야란 지혜를 말하고 바라밀이란 도피안(度彼岸)을 말한다. 즉, 반야바라밀이란 지혜로써 이 언덕을 건너 저 언덕에 이른다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을 직시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바른 행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바라밀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이다. 즉, 모든 것은 실체가 없으므로, 일체의 존재나 현상들 속에서 고정되고 편협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한 본질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지혜이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시다 오온이 공함을 보시고 일체의 고액을 벗어났다고 하였으니, 모든 존재의 본질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그리하여 현실과 본질이 둘이 아닌 세계의 실상을 깨달은 것이다.


또한 <금강경>에서는 "무릇 형상 있는 것들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볼 수 있으면 곧 부처를 본다"하였다. 따라서 진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현실 가운데 있으나 현실 속에 묻혀 버린 사람(상에 갇혀 버린 사람)은 진실을 볼 수 없다. 일체의 상을 벗어버려야 진실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조차도 방편임을 분명히 알아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뗏목에 비유하셨다. 뗏목은 강물을 건너는 데는 요긴한 것이다. 그러나 저 언덕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버려야 한다. 범부 중생은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여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방편인줄 모르고 그것을 절대화시키고 또 하나의 상을 만들어 움켜쥐고 있는 한 참다운 진리는 요원한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불법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손가락 끝을 따라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간경 수행자는 경을 읽을 때 이 점을 명심하여 그 요체를 파악하는 데 힘 쓸 것이지 문자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일체 경을 수지독송 할 때에 반야바라밀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간경수행 (7) _ 간경수행의 대상 _ 경전의 선택 방법

경전의 바다는 넓고도 깊다. 너무나도 많은 경전이 있어서 수행자가 그것을 모두 읽고 익히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수행자는 먼저 경전 가운데 기둥이 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게 마련이다. 이를 '중심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경전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적당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만하게 두루 익히기 위해서는 이런 방편적 개념을 어느 정도 따르는 일도 필요하다. 더구나 공부를 처음 하는 이에게 이 방법은 매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중국에서는 일찍이 교상판석론으로 대두되어 각 종파별로 자신의 종파의 으뜸경전을 소위경전으로 삼아 이것을 바탕으로 전체 경전을 배치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엄의 5교 10종판과 천태의 5시 8교판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경전의 실제적인 편찬 순서와는 맞지 않고 각자 자기 종파의 경전을 중심으로 세운 체계이기 때문에 현실에 맞게 다시금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경을 읽는 목적에 따라 나누어 보았다.

 

①입문자의 필독서

순서 갈래 서명

1 입문 불교입문(불교학개론), 부처님의 생애

2 경전 법구경

3 보살행 자타가

4 수행자세 유교경, 초발심자경문, 보왕삼매론, 부모은중경


일단 경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현대 서적 들 중에서 불교에 대한 기초적인 관점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도서를 읽고, 수행자의 마음가짐과 생활자세를 일깨워 줄 경문을 읽는 것이 좋다.


②교리 공부를 위해

순서 갈래 경명

1 원시 - 아함경

2 부파- 구사론, 대비바사론

3 반야- 반야경, 중론, 대지도론, 유마경

4 유식- 해심밀경, 유식삼십송, 유가사지론, 성유식론.

5 여래장(불성)- 승만경, 열반경, 여래장경, 보성론

6 유식. 여래장- 종합 능가경, 대승기신론

7 화엄-화엄경, 화엄경 탐현기

8 천태. 법화- 법화경, 법화경종요, 마하지관, 소지관


너무나 방대한 경전들이기 때문에 우선은 아함경을 먼저 읽고, 반야경 중에서 반야심경을 읽는다. 가능하면 대품반야를 쭉 읽는 것도 좋다. 그리고 유마경, 해심밀경 정도를 읽고 열반경을 읽는다. 그리고 능가경과대승기신론을 읽고 화엄경과 법화경을 읽는다. 이 중에서 법화경은 사경이나 독경용으로 많이 선택되는 경이므로 이 때에는 이 순서에 상관없이 한다. 또 화엄경은 양이 방대하므로 품별로 나누어 먼저 읽어나가도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함경을 가장 먼저 보는 것인데, 아함경도 양이 많으므로 주제별로 추려놓은 현대서적을 이용하여 읽어 나가면 공부를 쉽고 재미있게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계율이나 참선수행에 있어서도 아함경에 기초적인 내용들이 나오므로 계율과 수행법 부분을 따로 모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③계율수행을 위해

순서 갈래 경명

1 5계 우바새경, 우바새오계상경,

2 8재계 지재경(재경), 사천왕경,

3 10선계 십선경, 십선업도경, 십지경론, 십주비바사론

4 보살계 범망경, 우바새계경, 보살내계경, 보살선계경, 보살지지경, 유가사지론, 보살영락본업경,


우바새경, 재경, 사천왕경, 십선경 등이 모두 아함경에 들어있으니 5계, 8재계, 십선은 아함경을 보면 기본적인 지침을 얻을 수 있으며 보다 상세한 내용은 우바새5계상경이나 우바새계경을 보면 되고, 특히 십주비바사론에서는 대승적 관점에서 각종 계에 대한 구체적인 관점들이 잘 나타나 있다.


끝으로 보살계는 5계, 8재계, 십선계가 충분히 몸에 익은 사람이 받는 계이니 이와 관련된 경을 보는 자도 마땅히 앞의 계가 충분히 익은 후 라야 할 것이다. 다른 모든 경전을 읽을 때 그래야 하지만 특히 보살계는 심지계이니 범망경을 비롯하여 보살계를 설한 경론을 읽을 때에는 계의 근본 정신을 깨우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참고로 불살생계는 모든 계율의 근본이며 이에 대한 적극적 실천법으로 방생이 있다. 방생에 대해서는 중국 주굉스님의 <계살방생문>을 보면 좋다.


④참선수행을 위해

순서 갈래 경명

1 소승선 대념처경, 안반수의경, 청정도론

2 대승선 능엄경, 금강삼매경, 원각경, 금강경

3 조사선 선가귀감, 선문촬요, 육조단경, 신심명, 증도가

대념처경은 아함경 속에 있고, 안반수의경은 독립경이기는 하나 문장이 난해하므로 아함경 속의 입출식념경 등을 통해 익히는 것이 더 좋다. 그러므로 아함경 가운데 사념처관과 호흡관 부정관 및 37조도품에 관한 경문을 모아 읽는다. 그리고 나서 능엄경, 원각경, 금강경을 읽고 대승선의 경지를 한번 가늠해 본다. 그리고 선가귀감 선문촬요를 읽는다.


선가귀감, 선문촬요의 내용이 수행자의 배울 바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으므로 먼저 이것을 보고 나중에 경을 읽는 것도 좋다. 그리고 육조단경과 신심명을 비롯한 조사어록은 어느 정도 공부가 익은 후에 보는 것이 좋다. 이들 대승경전이나 조사어록은 수행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며, 혹 이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수행을 통해 나름대로 체득한 이후에 다시 읽어보면 처음에 읽은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가 와 닿을 것이다. 또한 수행 중에 자신의 경험한 바를 점검하거나 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지침서 역할도 한다.


이렇게 갈래를 나눈 것은 편의상 이름 붙여 놓은 것이지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어느 것이나 하나만이라도 재대로 익혀 깨달음에 이를 수 있으면 나중에는 저절로 다 통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⑤염불, 기도, 독경, 진언수행을 위해

순서 갈래 경명

1 참회 천수경, 정찰선악업보경

2 염불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반주삼매경

3 기도 지장경, 관음경, 약사경

4 보살행 보현행원품


위의 경전은 순서에 관계없이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읽되 한 경을 지속적으로(천독, 만독) 읽는 것이 좋다. 앞에서 보았던 경전 중에 금강경과법화경도 수지독송하기 좋은 경이다. 그 이유는 어느 경보다 수지독송의 공덕을 강조한 경이기도 하고, 금강경의 경우 선종의 정수를 잘 표현한 경이기 때문에 옛부터 조사스님들께서도 거기에 의지하여 불법의 이치를 설파하곤 하셨다. 또한 조계종의 소위경전이기도 하며 분량도 적어 외워서 암송하기도 좋다.

지금까지 소개한 경론과 어록은 모두 한글번역본이 있는 것들로 고른 것이다. 경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여 쉬운 개론서들만 읽을 것이 아니라, 직접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와 닿는대로 참구하고 실천해나가면 공부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간경수행 (8) _ 간경수행의 갈래와 방법

서사 / 공양 / 시타 / 제청 / 피독 / 수지 / 개연 / 풍송 / 사유 / 수습

서사(書寫)

서사는 부처님이 설하신 경율론를 옮겨씀으로써 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이어가면서 내면적으로는 자신을 살펴보는 공부법이다. 경전을 옮겨 쓸 때에는 가장 깨끗한 바탕에 가장 깨끗한 도구로 써야 하며, 옮겨쓰는글씨의 모양이나 속도도 한결같아야 한다. 경을 쓰면서 그 글자를 마음 속에 같이 쓰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고 경전을 옮겨 쓰기 시작하거나 끝낼 때나 갈무리할 때 개경게나 개법장진언 등을 염송하는 것이 좋다. 옮겨 쓴 경전은 아무렇게 방치하지 말아야 하며, 깨끗하게 싸서 잘 갈무리해야 한다. 경전을 옮겨 쓰는 것은 부처님의 상을 조성하여 널리 받들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므로, 옮겨 쓴 경전도 이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이에게만 전해줄 수 있다. 다만 경전을 옮겨 쓸 때 반드시 한 경전을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다 옮겨 쓴 다음에 다른 경전을 옮겨 쓰도록 한다.


간경 수행의 대표적인 한 방법으로 사경은 널리 행해지고 있어, 사경법회를 정기적으로 하거나 사경을 주된 수행법으로 하는 사찰도 있다. 또한 사경은 계층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실천되고 있으며,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호응이 좋은 수행법이다. 요즘은 사경 교재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므로 그런 것을 이용하면 더 쉽게 할 수 있다.

 

공양(恭養)

공양은 부처님의 경전이 있는 곳을 불사리가 있는 곳처럼 공경하고 존중히 공양하는 것이다. 경전이 곧 부처님이므로 공부하는 이는 거기에 실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부처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바, 그것이야말로 간경수행의 기초가 될 것이다. 다른 글을 보듯이 쉽게 경전을 읽으려 드는 것은 부처님을 스승으로 받드는 예법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경전이 곧 부처님임을 믿으며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맹세하는 공부법이다.


시타(施他)

시타는 경전을 자기 개인의 전유물로 삼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어 이익을 주는 실천공부이다. 경전에서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비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수행법으로 보시가 있다. 따라서 그러한 말씀이 담겨있는 경전을 보고 오히려 그것을 아끼는 마음에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어찌 바르게 읽었다 하겠는가.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주어 읽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법보시라는 이름 하에 경전이나 불서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특히 천도재나 49재를 지내는 경우 후손들은 망자를 위해 많은 양의 경전류를 사찰이나 동참대중에게 보시하기도 한다.


제청(諦聽)

제청은 다른 이가 읽고 해설하는 일체 경법을 듣고 깊이 애락(愛樂)하며 진심을 다하여 살피고 자세히 듣는 공부법이다. 옛적에 보살님이 몸을 나투셨으나 자기의 상에 빠져 뵙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언제 어느 모습으로도 오실지 모른다. 자신의 상에 빠지지 말고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이 들리는 곳이면 모두 부처님의 또 다른 현신으로 여기는 마음을 내야 하는 것이다.


경전에 실린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더라도 때로 부처님의 말씀과 같은 말을 들으면, 그를 선지식으로 여기고 고맙게 여기는 것도 물론 제청에 해당한다. 수행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부처님이 여러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음을 알게 되는 바, 자신이 가진 상으로 말미암아 타인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한다면 올바른 간경행자라 할 수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법을 청하며 법을 연설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즐겨 들어야 한다.


피독(披讀)

피독(披讀)은 경전을 언제나 펴서 보고 읽어 손에서 놓지 않는 공부법이다. 한번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거든 잊지 말고 기억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인바 이를 위해 손에서 놓지 않고 경문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옛날 어떤 사람은 스승께 한 마디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다 들어 깨우치기 전에 또 다른 말씀을 들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 번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반드시 그 말씀을 올곧게 깨우쳐야 할 것이며, 그 말씀이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바, 이를 위해서는 늘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피독의 수행법이다.


수지(受持)

수지(受持)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바 교법을 스승으로 좇아 이를 본받고잘 갈무리하여 잊지 않도록 하는 공부법이다. 앞의 피독이 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는 것이라면 수지는 다시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 속에서도 잊지 않고 받아 지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피독과 수지는 간경 수행자의 필수적인 행법이라 하겠다.


개연(開演)

개연(開演)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때때로 언제나 연설하고 열어 보여 사람들에게 믿어 알도록 하는 공부법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름대로 깨침이 있었을지라도 그 깨침이 자기만의 쓰임일 수 없으니,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이 무엇인지 기회 있을 때마다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수지를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으로 갈무리했다면, 개연을 통그것을 바로 비추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어느 한 쪽에만 매달리면 원만한 공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는 바, 이 두 가지를 늘 아울러야 한다.


풍송(諷誦)

풍송(諷誦)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바 일체의 도법을 널리 범음으로 소리내어 맑게 읊어 선양함으로써 널리 사람들로 하여금 듣기에 즐겁게 하는 공부법이다. 풍송을 할 때는 가장 깊고 맑은 소리를 내야 하는바, 잡념과 삿됨을 버리고 마음을 고요히 하며 호흡을 잘 가다듬어 발음을 정확하게 하고, 중간에 경전의 말씀을 한 소리라도 빼지 않도록 한다.

 

풍송을 할 때 목탁 등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풍송하기 편리하게 하고, 또한 주변을 장엄하게 하여 마음에 깊이 새기려는 것이다.


사유(思惟)

사유(思惟)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깊이 헤아려 이치를 터득하는 공부법이다. 즉, 불법의 이치를 터득하는 비결은 사유를 통해 유를 깨고 뛰어 넘는 데 있다. 따라서 아름알이식의 생각이 아닌 깊고 깊은 의문으로 한마음이 될 때 문득 이치가 환하게 알아질 것이다.


수습

피독과 수지는 경문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으며 마음에 새기고 받아 지녀 명심하는 공부법임에 비해 사유와 수습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제로 이치를 터득하고 그것을 몸에 익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대로 엄밀하게 닦아 그 열매를 맺는 공부법이다.


사유를 통해 이치를 알았다면 다시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이 되도록 수습하는 단계를 거쳐 깨달음을 완성한다. 선종에서도 화두참구 후에 보림을 하는 것도 다 그 이유이다.



간경수행 (9) _ 간경수행의 공덕 _ 금강경에서

간경수행의 공덕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누누히 말씀하셨다. 그 가운데 먼저 금강경에서 밝히신 몇 구절을 들어보겠다.


"수보리야, 이 경이나 아니면 그 가운데 4구게 만이라도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가 다 마땅히 공양하기를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하는데, 어찌 하물며 사람이 있어 능히 다 받아 지니며 읽고 외움이랴.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가장 높은 제일가는 희유한 법을 성취하리라.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곧 부처님과 존중하신 제자가 계심이 되느니라."


"수보리야, 장차 오는 세상에서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곧 여래가 불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며 이 사람을 다 보나니 모두가 헤아릴 수 없고 가 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되리라."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써 보시하고, 낮에 다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며, 다시 저녁 때에도 또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무량백천만억겁 동안을 몸으로써 보시하더라도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 복이 저보다 수승하리니 어찌 하물며 이 경을 베끼고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하여 해설해줌이랴."


간경수행 (10) _ 간경수행의 공덕 _ 법화경에서

법화경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 못지않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경 가운데 하나가 법화경이다. 법화경은 사상적인 탁월함뿐만 아니라 경문이 비유가 많고 평이하게 쓰여 있어 사람들에게 쉽게 감응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불보살님의 위신력과 다양한 진언과 행법들, 그리고 어느 경전보다 법화경 수지독송의 공덕을 강조하여 법화경을 하나의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숙왕화야, 이 '법화경'은 능히 일체 중생을 구원하며, 이 경은 능히 일체중생의 모든 고뇌를 여의게 하고, 이 경은 능히 일체 중생을 크게 이익케 하여 일체 중생의 소원을 충만케 하나니, 맑고 시원한 못이 일체의 목마른 사람들을 채워 주는 것과 같으며, 추워 떨던 사람이 불을얻은 것과 같고, 벗은 이가 옷을 얻은 것과 같으며, 상인이 물건의 주인을 얻은 것과 같고, 아들이 어머니를 만난 것과 같으며, 나루에서 배를 얻은 것과 같고, 병든 이가 의사를 만난 것과 같으며, 어둔 밤에 등불을 만난 것과 같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으며, 국민들이 현명한 지도자를 만난 것과 같고, 행상이 바다를 얻은 것과 같으며, 밝은 횃불이 어둠을 제거하여 주는 것과 같느니라.


이와 같이 '법화경'은 중생들의 일체 고통과 일체 질병을 여의게 하여 능히 일체 생사 속박에서 해탈케 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이 '법화경'을 듣고 스스로 쓰거나 만일 다른 사람을 시켜 쓰면, 그 얻는공덕은 부처님의 지혜로 그 많고 적음을 헤아리어도 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혹은 이 '법화경'을 써서 꽃. 향. 영락. 소향. 말향. 도향과 번개. 의복과 가지 가지의 등인 소등. 유등. 향유등. 첨포유등. 수만나유등. 바라라유등. 바리사가유등. 나바마리유등으로 공양하더라도 그 얻는 공덕은 또한 한량 없느니라.


숙왕화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약왕보살의 본사품을 들으면 또한 한량없고 가이 없는 공덕을 얻을 것이며, 혹은 어떤 여인이 이 약왕보살의 본사품을 듣고 받아 지니면, 그가 여인의 몸을 마친 뒤에는 다시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지 않으리라.


만일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 오백년에 이르러 어떤 여인이 이 경전을 듣고 그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면, 그 목숨을 다 마친 뒤에 극락세계의아미타불을 큰 보살 대중들이 둘러 있는 곳에 가서 연꽃 가운데의 보배 자리에 태어나리라.


그리하여 다시는 탐욕하려는 번뇌가 없고, 성내고 어리석은 번뇌도 없으며, 또한 교만하고 질투하는 여러 가지의 더러운 번뇌가 없으리라. 그리고는 보살의 신통과 무생법인을 얻어서 눈이 청정해지며, 이 청정한 눈으로 칠백만 2천억 나유타 항하의 모래 같은 열 부처님 여래를 보게 되나니, 이때 여러 부처님들이 멀리서 칭찬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능히 석가모니불의 법 가운데서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며 사유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설해 주면, 그 얻는 바의 복덕은 한량없고 가없어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도 능히 빠뜨릴 수 없느니라.


이러한 공덕은 1천 부처님들이 다함께 설한다 할지라도 능히 다 할 수 없으며, 너희들이 이제 여러 마군을 파하여 생사를 벗어나니, 여러 가지 다른 원수는 자연히 멸하느니라.



간경수행 (11) _ 간경수행의 공덕 _ 기타

관자재보살은 약차 나찰을 위하여 법을 설했다.


너희들은 잘 들으라. 대승의 경이 있는데 이름이 대승장엄보왕이다. 만약 몇 구절을 듣고 잘 받아서 가지고 독송하여 그 뜻을 해설하고 마음에 항상 생각하면 그 복덕은 한량이 없을 것이니라.

 

선남자야, 모든 티끌수는 내가 능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있으나 만약 대승장엄보왕경에 일사구게를 능히 받아 지닌다면, 그 거두는 복덕은 내가 능히 그 수량을 헤아리지 못하며, 만약에 큰 바다에 모든 물은 내가 능히 그 물방울 수를 헤아릴 수 있으나 만약 이 경에서 능히 일사구게를 받아 가지는 그 복덕은 내 능히 그 수량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가사 십이긍가하의 모래수와 같은 여래응정등각을 십이겁 동안함께 한 곳에 모시고 항상 의복, 음식, 와구, 탕약과 다른 모든 자구로써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께 보시하고 공양하여 얻는 복덕은 그 수량을 다 말할 수 없다. 오직 나뿐 아니라, 흑암처에서도 다 설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남자야, 또 만약 사대주의 사람이 각각 자기 사는 집으로써 정사를 만들어서 그 안에 천금보로써 천개의 불탑을 하루에 다 만들고, 여러 가지로 공양하여 얻은 복덕이 이 경 가운데 일사구게를 잘 수지하여 얻은 복덕만 같지 못할 것이다. 선남자야, 오대하가 큰 바다에 들어가듯 이와 같이 흘러들어 가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과 같이, 만약 이 대승경전의 사구게를 지니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 얻는 복덕의 흘러 들어 가는 것도 또한 다함이 없느니라.


이같은 유정들이 마음으로 오직 이 경의 이름만 생각해도 이러한 이익과 안락을 얻는데 만약 이 사람이 이 경을 듣거나, 능히 서사하여 수지독송하거나 공양하고 공경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항상 안락을 얻을 것이다. 혹은 이 사람이 이 경 중에서 한 글자만 서사하여도 이 사람은 당래에 윤회의 고를 받지 않고 영원히 도아와 괴회 등 이러한 하천한 집에는 태어나지 않고, 태어난 몸은 영원히 곱사와 앉은뱅이와 언청이와 문둥병 등의 기뻐하지 않는 형상을 받지 않고, 신상이 원만함을 얻으며 제근(諸根)이 구족하여 큰 세력이 있는데, 하물며 구족하게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서사하며 공양하고 공경하는 사람의 얻는 공덕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대승장엄보왕경>


선남자여, 이 경을 받들어 지니는 이는 그 마음을 얻고 잃는 것이 없이 항상 범행을 닦으리라. <금강삼매경 총지품>

 

경을 듣는 일, 귀를 거치는 게 인연일 것이니 그 결과 기쁜 복이 있으리라. 환상 같은 몸뚱이야 사라지더라도 참다운 행실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선가귀감>


이상의 인용들은 모두가 곧 금구(金口)의 정성스럽고 진실하신 말씀들이요, 중생의 허망심으로 맹랑하게 이른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극한 마음으로 독송하는 사람은 영험이 헛되지 않은지라 언제나 부처님께서 가만히 드리워 호념해 주심을 받을 것이니 혹은 '선재로다'하고 칭찬도 하시고 손으로 이마도 쓸어 주시며 함께 여래의 옷을 덮어 섭수하고 부촉하여 위신력의 가피로 따라 기뻐하심은 물론 또한 신왕이 보호하고하늘의 선인들이 모시며 금강신이 옹호해 따르고 제석신이 꽃비로 찬탄할 것이다.


복덕이 되는 인유(因由)를 성취함이 법계 허공의 크기와 같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뛰어나서 나아가서는 항하의 모래와 같은 칠보로 인연을 베풀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또한 신체가 영통하여 무너지지 않으며 연꽃과 같은 혓바닥에 입에는 자단의 향내가 날 것이니 한 구절만 들어도 반드시 보리심에 나아가고 반 게송만을 외워도 공덕이 부처님과 같아지리라.


이와 같아서 만일 경전을 써서 펴낸다면 욕계천상의 과보를 받고, 지니고 읽고 외우며 수행하는 사람을 공양하면 복덕됨이 부처님보다 더욱 지나리니 이를 일러서 법위덕력('法威德力)의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 가지 상서와 천 가지 영험이 이로 인하여 감통하며 또한 삼현(三賢)과 십성(十聖)도 이로부터 나는지라 끝없는 옛적부터 오늘날에 이르도록 아울러 범부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삼업으로 공양하고 십종으로 받아가져 참된 말씀을 받들어 전해 오면서 면면히 끊이지 않거늘 어찌 비방하는 마음만 일으켜서 올바른 법륜을 단절케 하겠는가. <만선동귀집>

 

 

간경수행 (12) _ 간경수행의 주의사항 _ 경전을 읽을 때

잡념을 떨치고 / 경전은 곧 부처님 / 지식으로 견주지 말고 / 널리 읽어라 / 깊이 읽어라 / 실천하라

①잡념을 떨치고

다른 수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간경수행을 할 경우에도 수행자는 잡념을 떨쳐버려야 한다.

경을 읽을 때 잡념이 얼마나 무서운 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으니, 이를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총융인 척공은 평소 <금강경>을 지송해 오던 분이었는데, 그가 월 땅에 있는 삼강이란 곳을 지킬 때의 일이다. 어떤 죽은 군사가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저의 아내를 그대에게 보낼 테니,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경전 한 권을 독송하여 저의 저승길을 도와주소서"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한 부인네가 슬피 울며 그를 뵙고자 한다기에 그 까닭을 물으니, 과연 꿈에서 들은 말과 같았다.


그가 그 부탁을 허락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끊이지 않고 경을 독송했으나, 꿈에 그 군사가 나타나 하는 말이 "그대의 큰 은혜를 입었나이다. 그러나 그대는 겨우 반 권만을 끊이지 않고 독송했을 뿐입니다. 그 가운데 경전에 없는 불용(不用)이라는 두 글자가 섞여 있었나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이가 그렇게 말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경을 지송하는 도중에 부하가 아랫사람을 시켜 찻병을 들여올 때, 그가 멀리서 보고 손을 들어 물리친 적이 있었다. 즉 입으로는 비록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불용(필요없다)'이라는 두 글자를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은 일찍부터 아예 문을 닫아걸고 앉아 경을 지송했더니, 이날 밤 꿈에 그 죽은 군사가 사례하며, "이미 저승을 벗어나 저의 갈 길을 가나이다" 하였다. (죽창수필).

 

②경전은 곧 부처님

경전은 부처님의 또다른 현신이다. 그러므로 경전을 익히는 이의 마음가짐도 응당 살아계신 부처님을 뵙는 것과 같아야 한다. 간경수행을 할 때 경전을 펼치면서 독송하는 '개경게'(開經揭)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을 확인할 수 있다.


더없이 깊고 높아라 헤아릴 수 없는 진리여

백겁 천겁 만겁을 다시 나더라도 만나기 어렵건만

나 이제 듣고 보아 간직하게 되었으니

원컨대 여래의 참된 뜻을 알게 하소서.


그렇다. 백천만 겁을 다시 나더라도 만나뵙기 어려운 것이 불법이니, 그 만남을 어찌 다른 귀중한 것들과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전이 곧 부처님인 줄 모른다면, 다만 이치를 밝힌 글인 줄만 알면서 다른 책을 읽듯이 경전을 읽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간경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수행법으로써의 본래의 의미를 잃고 마는 것이다.


부처님을 만난다면 어찌하겠는가? 당연히 그분께 기대고 매달려 나의 고통을 모두 소멸하고 해탈의 기쁨을 맛보려 하지 않겠는가? 경전을 익히는 마음가짐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 그밖에 어떤 것들도 이보다 중요하지 않다. 간경행자는 늘 경전이 부처님의 현신이라 여기고 믿어 그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기려 들어야 한다.


③지식으로 견주지 말고

타고난 성품을 향해 깊이 들어가는 가운데서 넓은 지혜를 얻지 않고 바깥의 지식을 가지고 경전의 내용을 판단분별하려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넓은 지혜를 가지면 나와 남이 따로 없어 다툴 일이 없지만, 좁은 지식을 가지고 아는 척하는 사람은 시비를 다투는 일만 잦아진다.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마음이 시비분별하는 곳에 머문다면 그 경전은 이미 '마전'(魔典)이 되어버린 것이며, 경전이 아닌 것을 공부하면서도 마음을 다스려 성품을 밝혀낸다면 그것은 이미 달을 가리키는 여래의 가장 진실한 손가락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대하던 먼저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 하고 분별하고 여기에 따라 끊임없이 추측. 판단한다. 이런 습관에 익숙해진 나머지 경전을 볼 때조차도 판단분별을 쉬지 않는다. 천지 세상의 밝은 광명이 경전에 있건만 자신의 좁은 데롱을 통해서만 보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래의 지혜를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분별하고 있으니 개미가 인간의 세계를 헤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디 경전을 볼 때는 짧은 식견으로 견주지 말고 세속적 가치로 분별하지 말며, 알음알이로 헤아리지 말고, 오직 부처님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만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④널리 읽어라

간경은 반드시 폭이 넓어야만 비로소 융관하여 偏執에 빠지지 않게 된다.


대개 경은 이 곳에서 건립하면 저 곳에서는 소탕하고, 이 곳에서 소탕하면 저 곳에서는 건립하여 어떤 상황과 수준을 따랐을 뿐, 일정한 법이없기 때문이다. 가령 <능엄경>에서 대세지보살이 圓通에 들지 못한 것을 보인 것만을 읽고, 널리 정토를 찬탄한 다른 경전을 읽지 못했으면, 염불법문은 숭상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할 것이요, 달마가 양무제의 물음에 대하여, 공덕은 복을 짓는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만을 보고, 널리 육도만행을 가르친 경전을 읽지 않았으면, 유위복덕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정토만을 고집하고 선종을 비방하거나, 유위만을 고집하고 무위를 비방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경의 한 뜻에만집착하는 자는 혜명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육조단경>은 지혜가 없는 자에게는 읽게 해서는 안된다'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이것만을 고집하여 다른 것은 버릴까 염려해서였다.

<죽창수필 1집>



⑤깊이 읽어라

또한 널리 읽는 것만 중시하여 주마간산 격으로 경전을 읽지 않아야 한다.


경전은 지식 쌓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경수행은 널리 읽는 일과 깊이 읽는 일을 잘 아울러서 공부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경전을 읽을 때는 논리를 넘어 마음으로 읽으면 거기에 담긴 진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마음을 비추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경전은 살아있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경전을 수천번 읽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깊이 읽고 듣지 않는다면 경전의 참뜻이 풀리지 않을 것인 바, 간경수행자는 모름지기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마음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간경수행자는 생각으로 짓는 알음알이가 아닌, 사유를 넘는 사유로 읽어야 한다.


⑥실천하라

경전을 보는 것은 불법수행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계속 강조했듯이 실천이 중요하다. 실천하지 않고 경만 보는 자는 이미 간경수행자가 아니다. 간경수행자가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사항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간경수행 (12) _ 간경수행의 주의사항 _ 일반적인 독서의 원칙

글 읽는 방법 / 글 읽는 규칙을 따르는 법

①글 읽는 방법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단정한 자세로 손을 마주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책을 대하여 마음과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몸으로 실천할 생각을 가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은 글 대로이고 나는 나대로가 되어 무슨 도움이 있을 것인가.

 

공부한 사람이 너무 많이만 보려 들면 익숙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알려고 하면 정밀하지 못하여 빨리 하려는 것이 도리어 더디게 되는데 그게 바로 공부하는 사람의 큰 병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분량을 적게 하여 익히 읽고 정하게 생각하면 오랜 후에는 자연히 바른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에는 부지런히 익혀 읽고 또 부지런히 이치를 탐구해야만 이치가 마음속에 젖어들어 막혀서 통하기 어려운 폐단이 없는 것이다. 한 책을 읽을 때는 다른 책은 치워두고 다 알고 나서 마음을 바꾼 다음 다른 책을 보기 시작해야 한다. 만약 그 책을 숙독하기 전에 또 다른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를 보았다는 소득은 있을지 모르지만 학문이 정밀하지 못하니 공부하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인 것이다.


②글 읽는 규칙을 따르는 법

이단 등 바르지 못한 잡동사니 서적들은 잠시라도 열람해서는 안되고, 속되고 음란한 사곡이거나 그 밖의 수호지, 금병매 따위는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킬 뿐만 아니라 풍속까지 해칠 염려가 있으므로 애당초 눈에 대지 말고 보면 본 대로 없애버려야 한다.


글을 읽는 사람이면 우선 병통을 예방하는 방법부터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데 되도록 낮은 목소리로 많이 읽을 것이고 소리를 높여 괴로울 정도로 읽어서는 안된다. 기운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오래 견디지 못한다. 책 읽는 방법은 너무 느릿하여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둘러도 안 된다.


독서는 모름지기 오경(새멱 4시부터 6시까지)쯤 청신할 때 해야 하는데, 그 효과가 진시나 사시보다 몇 배나 유익하다. 등불 아래서 독서하는 것이 정진의 효과는 크지만 세 시간 남짓 읽고는 그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읽고 나면 정신이 소모되어 다음날 피로를 더 느끼게 된다. 오경에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읽고 먼동이 틀 무렵 잠시 눈을 붙였다가해가 뜰 즈음하여 다시 일어나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글을 읽으면 정신이 더욱 맑아진다.

 

독서를 많이 하여 피곤을 느낄 때면 책을 놓고 천천히 거닐면서 얼마 동안 산책을 함으로써 정신과 심목을 길러야 기민성이 있게 된다. 만약 멍청하게 괴로운 공부를 계속하면 총명한 천성을 잃을 뿐 아니라 몸이 약한 사람은 질병이 생기게 된다.


책을 읽다가 몸이 나른해질 때는 두 어깨를 힘을 써가며 앞 뒤 또는 위아래로 몇십 번 움직이면 전신에 피가 돌고 정신도 상쾌하여 모든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수양가들이 말하는 녹로쌍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배불리 먹은 후에는 어느 정도 소화가 된 다음에 책 읽기를 시작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체증이 한번 발생하게 되면 그때는 책 읽기를 폐지해야 할 뿐 아니라 더러는 고질병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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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자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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