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묘향스님

[스크랩] 임제록/34- 거부할 수 없는 것

娘生寶藏 2011. 10. 23. 14:33

거부할 수 없는 것


그대들은 또, “부처는 육신통(六神通)을 갖추고 있어서 불가사의
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천신(天神), 신선(神仙),
아수라, 대력귀(大力鬼)도 신통을 부리니 마땅히 부처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도 배우는 이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예컨데 아수라가 제석천과
싸워서 지면 8만 4천의 권속을 거느리고 연(蓮) 뿌리에 있는 실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고 하니 어찌 성스럽다 할 수 있겠느냐?
이러한 신통(神通)은 모두가 업 짓는 신통이요 무엇에 의지한
신통이다.

부처의 6신통이란 그렇지가 않아서, 색깔에 접해서는 색에 속지
않고, 소리에 접해서는 소리에 속지 않고, 냄새에 접해서는 냄새에
속지 않고, 맛에 접해서는 맛에 속지 않고, 촉감에 접해서는
촉감에 속지 않고, 법(法)에 접해서는 법에 속지 않는 것이다.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6가지 경계가
모두 헛된 모습임을 아는 까닭에, 이 의지함 없는 도인(道人)은
얽어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오온(五蘊)으로 된 부실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땅 위를 걷는 신통을 나타낸다.

마음은 본래 신령스럽게 통하는 것으로서 어디에도 막히거나
머물지 않는다.

막히고 머무는 것은 오온이라는 모양과 이름에 막히고 머무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름과 모양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모든 이름과
모양이 빠짐 없이 한결같은 마음이어서, 생각이나 말에 장애받지
않는다.

이제 이름과 모양, 생각과 말에 장애받지 않는 길을 시험삼아
함께 가보자.

그것은 모든 헛된 거품을 제거한 진실한 나 자신을 찾는 길이다.
이 길은 바로 지금 ‘나’로서 활동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이것만을 남기고, 생겨났다 사라지거나
나타났다 없어지는 모든 가변적(可變的)인 요소들을 제외시켜
가는 방법을 통하여 탐구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지금 손을 내밀어 찻잔을 잡고 차를 한 잔 마신다고 하자.
이제 차를 마시고 있는 나를 찾아 보자. 우선 차와 찻잔이 먼저
제외될 것이다.

다음은 찻잔을 잡은 손과 손을 움직이는 팔과 차를 마시는 입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나’의 육체라고 불리는 것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손과 팔과 입은 ‘나’가 사용하는 도구와 같은 것으로서,
그것들이 떨어져 분리된다고 하여 ‘나’가 떨어져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손과 팔과 입과 같은 가변적인 육체는 제외되어야 한다.


느낌과 욕망과 생각과 의식은 어떤가?
차의 향기가 코에 느껴지고 찻잔의 촉감이 손에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느낌들은 조금 전에는 없었고 조금 뒤에 차를 다
마시고 나면 없어질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는 욕망과, 녹차를 한 잔 마셔야겠다고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가변적이다.

‘나는 지금 차를 마시고 있다’고 하는 의식 역시 한 순가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며 변화하고 있으므로 제외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도대체
무엇이 남아서 ‘나’라는 노릇을 하고 있는가?
손, 팔, 입은 제외하더라도 손, 팔, 입과 함께 제외될 수
없는 무엇을 찾아야 하고, 느낌과 욕망과 생각과 의식은
가변적이지만 이들과 함께 하면서도 가변적이지 않은
무엇을 찾아야 한다.

그 무엇은 바로 지금 여기에 의심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이 나타나 있다.


- 임제 의현(臨濟 義玄) -

출처 : 붓다의 향기 뜨락
글쓴이 : 묘향(妙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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