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
Q:
불자로서 생활하면서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경계를
깨달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참회하고 순간순간 놓아지지 않는 아상 속에서 '참 나'를 찾으려 해 보지만
무엇인지 모르게 갈증에 시달리곤 합니다.
방법이 틀린 것인지 업장이 많은 탓인지 왜 이렇게 답답함이 남아 있는것인지요?
마음공부가 부족한 탓이려니 하고 생각하지만 과연 이렇게 수행해서 깨침을 얻을 수 있을런지요?
A:빨리 깨쳐서 무엇 하시려고요.
조바심 나는 마음, 갈증 나는 마음, 우선 그 마음을 먼저 차분히 놓아 보면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릴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깨치려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병통이 되고 탐심이 되어 갈 길을 막아서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세세생생 닦는다는 마음이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중생이다' '나는 못 깨쳤다' '빨리 깨쳐서 행복해지고 싶다' 하는 마음이
너무 큰 듯하니 그 마음을 조금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나는 이대로 부처님이다' '나는 밝게 깨친 주인공으로 산다' '억겁동안 닦아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본래 부처라고 합니다.
마치 정상에 올라 정상을 끊임없이 찾는 것처럼 한 생각 돌이키면 스스로가 부처인데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 열정만큼이나 걸어가는 순간순간의 과정에서 치열한 깨어있음의
공부심을 일으켜 보셨는지요?
우리가 가야할 길은 미래에 언젠가 있게 될 '깨달음'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작은 '깨어있음' 입니다.
깨달음은 미래의 일이지만 깨어있음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일입니다.
수행은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마음이 저 언덕(피안彼岸)에 가 있으면 조급해집니다.
오히려 병통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깨달음을 위한 노력은 하지만 순간순간 올라오는 경계가 힘겹다고 하셨죠?
바로 그 점에 모순이 있음을 알고 계시는지요?
온전히 깨닫고 나면 크고 작은 경계가 둘이 아닙니다.
진실로 둘이 아닙니다.
수행에 상相을 짓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확철대오 확연한 깨침을 위해서 무슨 대단한 수행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그 생각을 놓으십시오.
수행방법은 다 설해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고 수많은 선사님이며 경전에서도 방법은 다 일러 놓았습니다.
숱한 방편과 함께 말입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먼저 답답한 마음, 수행방법이 틀렸나 하는 의심, 업장이 많아 그런가 하는 마음,
깨침에 대한 갈증, 왜 안 깨쳐지나 하는 마음, 빨리 깨쳐야지 하는 마음,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 등 그 마음들을 놓는 것이 먼저입니다.
턱하고 놓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수행법에 대한 분별심은 버리고 실천하는 것만이 남아 있습니다.
닦고 나서 오는 깨침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리라는 철저한 깨어있음의
정진심精進心이 중요합니다.
관하고, 염불하고, 독경하고, 복 짓고, 과거나 미래로 끄달리는 마음을 지켜보면서
나를 놓아버리고, 그러고도 남아있는 '이놈'이 누구인가 참구해 가는 것, 그 모두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의 생생한 실천의 문제이며 깨어있음의 문제이지 미래에 있을 성불成佛을
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 이상 무엇을 기다리는가요?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요?
이미 알고 있는 수행이라고 이미 닦아 놓은 수행은 아닙니다.
문제는 '깨쳐야 함' 이 아니고 '닦아야 함' 입니다.
갈증이 나면 물 마신 뒤의 시원함을 찾지 말고, 앞에 놓여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지요.
물 컵을 잡고 물을 뜨고 입에 가져가서 목구멍으로 넘기고 그렇게 하다보면 이윽고 옴이 없이
오겠지요. 깨침이 올 것입니다.
깨침은 수행자의 목적이기보다는 정진 가운데 당연히 저절로 따라오는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깨달음병에 걸리면 안 됩니다.
오직 닦고 닦을 뿐입니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경계, 그 가장 기본적인 경계를 잡고 마치 전쟁터의 장수처럼 무섭게
달려들어야 합니다.
그놈을 놓칠 틈을 주지 않는 마음으로 24시간 깨어 있으려는 바로 그 '닦는 마음''깨어있음'과
함께 무섭게 나아가야지요.
깨달음과 깨어있음은 결코 둘이 아닙니다.
무언가 세상이 확 바뀌고 내 눈 앞에 벽이 허물어지면서 벽 뒤의 세계까지 환히 보이는
그런 신비 속의 깨달음이나 견성見性, 해탈解脫을 추구하고 있다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있음이 그대로 깨달음이지 깨어있음과 다른 특별한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있는 마음, 관하는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고 열반涅槃)반의 지견知見입니다.
우리가 닦아가야 할 것은 수행을 통해 미래의 어느 순간 얻게 될 깨달음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깨어있음, 그것 자체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목적이지 미래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중생이라고 생각하는 '이놈' 바로 '이놈'인데 아직도 찾고 계신가요?
닦는 그 순간에도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부처는 애써 잡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없어지는 그 자리, 허공처럼 공공한 그 자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탁 하고 잡을 수 있는, 하늘이 활짝 열리고 내 몸에 광채가 나고
전생前生이 보이고 하는 그 어떤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순간순간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 마음 연습하는 바로 그 순간이 부처님입니다.
닦는 그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요, 베푸는 그 자비로움이 부처님 마음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깨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처님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싫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있을 성불이나 견성이라는 환상만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온전히 부처님 되고 싶은가요?
그럼 그 순간의 부처님 마음을 24시간 내내 어느 한 찰나도 놓치지 말고 닦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닦으며 그게 바로 부처님이고 깨침입니다.
'깨달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깨어있음'을 문제 삼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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