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랑
- 여강 최재효
불같은 사랑을 하였네
하늘 맑고 땅은 따뜻하여 밤낮을 잊은 채
죽음도 감히 넘보지 못할
지상에서 가장 숭고한 사랑을 하였네
사랑이 너무 깊어 실연을 맞보았네
하늘이 시기하고
땅도 질투하니 인연의 경계 흐려지고
생사生死만 모호하게 되고 말았네
아, 천지간에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
둥근달만 예전 같아서 기대려 했건만
오늘은 검은 구름에 가려 있어
인적 없는 벌판에서 홀로 서서 취하네
한동안 눈먼 사랑을 하였네
하늘 어두운 동토凍土에서 세월을 허비하며
헛되이 들개 흘레하듯
천하에서 제일 치졸한 사랑을 하였네
운 좋아 다시 태어난다면 눈멀고 귀먹어
우연偶然의 징검다리 피하여
공연히 실타래 흔적 남기지 않고
꽃잎이 물결에 흘러가도록 모르쇠하리
깨진 거울 조각 이리저리 맞춰보고
달빛 물든 난간에 기대어 휘파람 부는데
밤안개 기러기 울음소리 들으니
한여름 소낙비 같은 사랑 아니함만 못하네
- 창작일 : 2013.02.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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