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노트 (1-1 경의

[스크랩] 화엄경 노트 (1-3 세주묘엄품제1의1/ 세존의 불가사의한 덕, 중해운집)

娘生寶藏 2013. 5. 11. 12:43

 

[경문]

三 世尊의 不可思議한 德

1, 德의 根本


爾時 世尊處于此座하사 於一切法成最正覺하시니

그때 세존께서 이 자리에 계시사 일체법에서 최정각을 이루시었다.


*

세 번째 큰 제목이 ‘세존의 불가사의한 덕’이다.

앞서 여러 가지 장엄으로써 이미 세존의 불가사의한 덕을 상징적으로 그려놓았지만 지금부터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

우리가 마음속에 느끼고 생각한 바를 아무리 말을 잘 한다고 해도 다 표현할 수 없듯이 부처님 역시 인간의 마음을 저 밑바닥까지 철저히 깨달아서 밝혀냈지만 그 세계를 다 설하지 못하고 다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화엄경이다.

*

덕(德)의 근본(根本); 덕의 근본은 어디서 왔는가. 물론 뿌리에는 다 덕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데는 깨달음에 근거한다. 덕의 근본은 깨달음에 기인한다.

*

이시(爾時)에; 그 때에

세존(世尊)처우차좌(處于此座); 세존이 이 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는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그 자리, 정각하신 그 자리다.

어일체법(於一切法); 일체 법에 있어서, 모든 존재에 있어서

일체법(一切法); 이 때 법(法)은 모든 존재, 사물, 모든 사건을 말한다.

해가 지고 뜨고  꽃이 피고 시드는 일체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와 그 존재가 변멸해가고 있는 모든 현상들을 다 포함하여 법이라 한다. 물론 법이란 좁은 뜻으로서는 가르침을 뜻하기도 한다.

성최정각(成最正覺);가장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앞서 나왔던 시성정각을 여기에서 한 번 더 표현한 것이다. 정각중에서도 가장 바른 정각, 이렇게 한 번 더 수식하면서 정각을 힘주어 설명한다. 정각의 내용을 말할 수 있는 데 까지 언급하려는 것이다.

 


[경문]

 2, 三業遍滿

    (1) 意業


智入三世하야 悉皆平等하시며

지혜는 삼세에 들어가서 모두 평등하여지고


*

삼업변만(三業滿);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두루두루 가득하다.

*

처음에 의업(意業)이 나온다.

지입삼세(智入三世) 하야 실개평등( 悉皆平等)이라

이런 구절에 대해서 옛날의 주석가들은 상당히 길게 설명한다. 우리는 일단 본경전에서 표현하고 있는 글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면에 있는 상징을 이해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

지입삼세(智入三世); 부처님의 깨달음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지혜이다. 그런데 그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에 다 뻗쳤다. 현재만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과거도 미래도 잘 안다.

실개평등( 悉皆平等);똑같이 잘 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 수식하여 가장 바른 깨달음의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 어디 한 곳 부족하거나 막힘이 없이 평등하게 환하게 꿰뚫고 있다.

 

[경문]

    (2) 身業


其身 充滿一切世間하시며

그 몸은 일체 세간에 충만하시며


*

신업(身業)이다.

기신(其身) 충만일체세간(充滿一切世間); 그 몸은 일체 세간에 충만하시다.

그 몸은 육신이 아니다. 물론 육신을 포함하여 법신이다.

*

자주보는 주련에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切同)이라는 글귀가 있다.

부처의 몸, 법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온시방에 꽉 차있다는 뜻이다.


옛날에 우리 어릴 때 들은 내용인데 어느 큰 스님이 기차간에서 목사하고 말싸움이 붙었다. 목사가 하나님은 무소부재라고 하였다. 스님은 짓궂게 화장실의 똥도 무소부재하니까 하나님도 거기 계시겠네? 라고 물었다. 목사가 하나님을 어디 거기다 비교를 하느냐고 발끈했다. 스님이 ‘똥이 바로 부처님이다’ 하면서 깨우쳐 줬다는 이야기다.

모든 존재는 그대로 바른 이치가 있다. 진리가 있다. 참되고 바른 이치가 있어서 그것을  불신(佛身) 법신(法身)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는 모두 보변시방중(普遍十方中)이고 충만일체세간(充滿一切世間)이다. 일체 세간이 충만해 있으면 화장실 똥통 속인들 비어있을 리가 없다. 바로 그 자체다.

똥은 똥의 입장에서 보면 똥 같이 소중한 것이 없다.

세상의 주인은 처음에 설명했듯이 개개가 다 주인이다.

개개가 다 가장 소중하다. 개개가 다 그 입장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러한 내용이 기신(其身)이 충만(充滿)하여 일체세간(一切世間)이다. 라는 구절에 나와 있다.


[경문]

    (3) 語業


其音普順十方國土하사

그 음성은 시방국토에 다 들리시었다.


*

우리는 지금 이런 말을 하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만 알아듣고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만 알아듣는다. 그런데 부처님의 깨달음의 입장에서 나오는 진리의 소리는 시방 국토에 널리 다 순한다. 따르고 있다. 곤충소리도 다 따르고 동물소리에도 다 따르고 금속이나 광물소리에도 다 따르고 일체에 다 따른다. 바로 그 자체다.


[경문]

    (4) 譬喩


譬如虛空具含衆像호대 於諸境界無所分別하고 又如虛空一切호대 於諸國土 平等隨入하시니라

 

이는 마치 허공이 온갖 물상을 다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모든 경계에 분별이 없는 것과 같았다. 또 허공이 일체 것에 두루하여 모든 국토에 평등하게 따라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

부처님의 삼업에 대해서 비유하고 있다.

*

비여허공(譬如虛空) 구함중상(具含衆像); 허공이 온갖 모습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 우리도 이 허공 속에 있고, 마이크도 허공 속에 있고, 책도 허공 속에 있으며 책상도 허공 속에 있다. 온갖 형상들을 전부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구함중상이다.

어제경계(於諸境界) 무소분별(無所分別); 모든 경계에 분별하는 바가 없다. 허공은 여기 책과 책상만 필요하지 꽃은 필요없다고 분별하지 않는다. 분별하는 바가 없다. 똥을 갖다 놔도 똥이 잘 그 자리에 잘 존재한다. 아름다운 꽃을 갖다놓아도 꽃이 잘 존재한다. 흙을 갖다놔도 흙은 그대로 다 이 허공 속에 잘 존재한다. 이 비유를 우리가 잘 이해해야 부처님 삼업의 됨됨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진리 자체, 법신 그 자체의 부처님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부처님은 허공처럼 분별하는 바가 없다.

분별한다고 하는 것은 가려내고 차별하는 것이다.

우여허공(又如虛空) 보변일체(普遍一切); 또 허공이 일체에 두루두루 가득하다.

어제국토(於諸國土) 평등수입(平等隨入); 모든 국토에 평등하게 따라들어가 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북극이나 남극 할 것 없이 허공이 없는 곳이 없다. 그래서 허공은 모든 국토에 평등하게 따라들어가 있다. 그와 같이 진리의 몸, 진리를 깨달으신 당체는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 존재 그 자체다.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

이런 것을 자꾸 공부하면 ‘그럼 그대로 다 옳은 것이고 그대로가 좋은 것이고 다시 더 이상 바로 잡을 것도 없고 고칠 것도 없겠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화엄경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맞다.

화엄경은 완전개방이다. 완전히 자유고 완전히 해탈이다.

아무런 조건이 없다.

*

화엄경은 진리 그 자체의 순수성을 남김없이 표현하였다. 그리고 화엄경의 이러한 개방성은 각각등보체를 좋아하는 한국사람의 성정과도 닮았다.

중국사람은 능엄경이나 원각경을 좋아한다. 가려지고 컴컴하고 비밀한 것이 많다.

일본사람들은 종합적이다. 그래서 법화경을 좋아한다.

진리는 순수하기도 하고 종합적이기도 하다.

일본사람들은 단체가 잘 되는데 한국 사람은 개개인이 잘된다. 개개인으로 상대하면 누구도 못이길 만큼 뛰어나지만 단체로서는 깨지기가 쉽다.

외국에서도 한 거리에 한국 상점 한 개가 들어오면 ‘죽었다’라고 생각하고, 상점 한 개가 더 들어오면 ‘아이고 살았다’고 하며 상점 하나가 더 들어와서 한국 상점이 세 개가 되면 ‘이제 눈감고 있어도 장사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한국사람 성격의 특수성인데 이러한 성격과 화엄경의 성격이 상당히 닮았다.

신라 때 화엄경이 들어와서 지금까지도 화엄경이 우리 불교속에서 번창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은 화엄경이 우리의 정서와 잘 맞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들과 연관시켜서 화엄경을 공부하면 경전 공부가 생명력을 갖는다.

 

 

[경문]

3, 威勢


身恒徧坐一切道場하사 菩薩衆中威光赫奕如日輪出하야 照明世界하시니라

 

항상 일체 도량에 앉아계신 세존의 몸은 보살들 가운데서 그 빛나신 위엄이 혁혁하여 마치 해가 떠올라서 온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과 같았다.


*

위세나 복덕을 위세신, 복덕신이라고도 한다.


*

부처님의 위세는 어떤 것인가.

신항변좌(身恒徧坐) 일체도량(一切道場); 몸은 항상 일체 도량에 두루두루 다 앉아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에서 앉아 있다.

보살중중(菩薩衆中); 보살의 대중가운데서

위광혁혁(威光赫奕); 그 위광이 아주 빛나고 빛난다.

아무리 훌륭한 보살이 앉아 있다고 해도 거기에 부처님 한 분이 앉아 계시면 많고 많은 별 가운데 환하게 밝은 보름달과 같다. 부처님의 덕을 표현한 내용이다.

여일륜출 (如日輪出) 조명세계(照明世界); 마치 태양이 솟아오르면 세계를 환하게 비추는 것과 같다.

*

이 대목에서 옛날 주석가들이 화엄경은 선조고산이며 법화경은 후조고산이라고 표현하였다.

화엄경은 태양이 뜰 때 가장 높은 봉우리를 비추는 것과 같다고 해서 선조고산(先照高山)이다.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곧바로 그 깨달음의 내용을 설했으며, 깨달음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지를 설했기 때문이다.

법화경은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마지막에 설하신 것인데 해가 질 때도 가장 높은 봉우리를 비추고 넘어가기 때문에 후조고산(後照高山)이라고 하였다.


[경문]

4, 福德


三世所行衆福大海悉已淸淨하시며

삼세에 행하신 온갖 복덕의 바다는 다 청정하였다.


*

복덕신의 입장에서 부처님이다.

*

삼세소행중복대해가(三世所行衆福大海); 과거현재미래 삼세에 행하신 바 온갖 복의 대해가

실이청정(悉已淸淨);모두모두 뛰어나다. 청정이란 단순히 청소해서 깨끗하다는 뜻이 아니다.  아주 훌륭하다 뛰어나다 멋지다 근사하다는 뜻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

우리는 하루 공부하고 한 달 내내 놀고 하루 한 시간 공부하고 스물세시간 놀기도 한다.

부처님은 그렇지 않다. 삼세에 행하신 여러 가지 복이 너무 많아서 큰바다와 같이 넘실거린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닦았으니 그 복덕의 바다가 모두모두 뛰어나다.


 [경문]

5, 受生


而恒示生諸佛國土하시며

 

모든 불국토에 항상 태어남을 보이셨다.


*

수생(受生); (부처님이) 생을 받는 것은 어떠한가.

이항시생제불국토(而恒示生諸佛國土);제불국토에 태어나는 것을 보인다.

*

우리들은 업에 끌려서 태어나고[業生] 어떤 이들은 원력에 의해서 태어난다[願生] 또는 인연에 따라 태어난다[緣生]

그러나 부처님의 입장이 되면 시생(示生)이다.

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처님은 능동적으로, ‘내가 우정 가서’ 출현하는 것이지 끌려가서 태어남이 아니다.


[경문]

6, 相好圓滿


無邊色相圓滿光明遍周法界하사대 等無差別하시니라

끝없는 색상과 원만한 광명이 온 법계에 두루하여 차별없이 평등하시니라.


*

상호원만(相好圓滿); (부처님은) 상호가 원만하다

무변색상(無邊色相); 끝없이 비춰지는 모습

원만광명(圓滿光明);원만한 광명, 어디에도 부족함이 없는 광명이

변주법계(遍周法界);법계에 두루두루 가득찬다

등무차별(等無差別); 어디에도 결손이 없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경문]

7, 說法


演一切法하사대 如布大雲하시며

모든 법을 연설하시되 마치 큰 구름을 일으키는 듯하며,


*

연일체법(演一切法) 여포대운(如布大雲); 일체법을 연설하는데 마치 큰 구름이 밀려와서 온 세상을 가득 덮어버리는 것과 같더라.


*

인도의 우기에 평원으로부터 구름이 몰려오는 광경은 가관이다. 나는 오래전에 달라이 라마를 한국에 초청하는 문제로 인도의 다람살라에 갔었다. 마침 7월이라 한창 무더웠다.

뉴델리에서는 하룻밤만 자고 바로 다람살라로 갔기에 겨우 살았지 안 그러면 그만 녹아버렸을 정도로 더웠다.

더구나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다람살라의 호텔에서 잠을 자는데 밤새도록 번개가 쳤다. 그 번갯불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밤새도록 번갯불이 쉼 없이 쳤다.

다음날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길이 다 끊어졌다. 비행기도 뜨지 않았다.

법화경의 약초유품에는 비가 쏟아지는 이야기가 근사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도에 가보면 특히 우기에 가보면 그 광경을 이해할 수 있다. 거침없이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와, 비 오기 전의 구름은 한 번도 그러한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

부처님이 일체법을 연설하는데 마치 큰 구름이 밀려와서 온 세상을 가득 덮어버리는 것과 같더라.

부처님 설법을 멋지게, 아름답게 표현했다.

화엄경은 글로서도 대단히 아름답다.


[경문]

8, 衆生敎化

 

一一毛端 悉能容受一切世界하사대 而無障碍하야 各現無量神通之力하사 敎化調伏一切衆生하시니라


낱낱 털끝에 일체 세계를 다 수용하되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각각 한량없는 신통력을 나타내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시며,


*

중생교화(衆生敎化); 부처님의 중생을 교화하는 몸이 자재하다

일일모단 (一一毛端); 낱낱 터럭 끝에

실능용수(悉能容受)일체세계(一切世界); 일체 세계를 전부 수용한다.

터럭 끝이 얼마나 많은가. 많고 많다. 그 속에 전부 낱낱이 일체 세계를 다 수용한다. 이것이야말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깨달은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존재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 한 것이지 상상하듯 그려낸 것이 아니다.

이무장애(而無障碍);아무 장애가 없다.

한 터럭 끝에 일체세계를 다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비좁거나 부딪치거나 하는 장애가 없다.

각현무량신통지력(各現無量神通之力);각각 한량없는 신통의 힘을 표현하여

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한다.

*

화엄경의 제일 큰 화두는 사사무애(事事無碍)다. 사물과 사물이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낱낱 터럭 끝에 일체세계를 전부 수용하는 데도 비좁지도 않고 서로 걸리적거리지도 않고 부딪치지도 않는다.

깨달음의 안목에서 보면 모든 존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내 속에는 이미 여러분들이 다 들어와 있고, 여러분들 속에는 전부 내가 다 들어가 있다.

여러분들이 토해놓은 그 호흡으로 내가 지금 호흡하고 이 순간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내가 토해놓은 그 호흡으로 여러분들이 호흡하고 있다. 그것이 증거이다.

만약 서로의 호흡을 들이마시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을 잃는다. 너가 아니면 나는 이미 죽었고 내가 아니면 너는 이미 죽었다. 옆에 있는 누구라도 그렇다.


*

연기 이야기를 할 때 부처님은 손에 물건을 들고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고 하셨다. 손에 든 사물을 딱 빼버린 채 그 말을 이해하려면 어렵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는 ‘이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물을 두 손에 들고 이야기 하면 이해하기 쉽다.


*

이치로 볼 때 이 역시 사사무애의 이치다.

서로의 호흡을 마시지 않았다면 여러분도 나도 이미 죽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꽃이 토해놓은 것, 이 마루가 토해놓은 것, 책상이 토해놓은 것, 이 바람이 토해놓은 것, 이 우주가, 이 공간이, 저 흔들리는 나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서 우리 한순간의 삶을 영위한다.

마찬가지로 저 이름 없는 나무 한 그루도 내가 토해놓은 호흡을 마시고 저렇게 청청히 살아있다.

*

네 호흡을 마셨지만 무슨 장애 있는가,

내 호흡 네가 마셨지만 무슨 장애가 있는가.
마셔야 살게 되어있다. 나무가 토해 놓은 것을 내가 마셔야 산다. 내가 토해놓은 것을 나무가 마셔야 산다.

모든 존재는 이렇게 되어 있다.


*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러한 사실이 눈에 싹 들어온다. 그러나 우리처럼 부처님이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 한다면 편협한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치우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원만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모호하지만

‘한 터럭 끝에 일체세계를 다 수용해도 아무 장애가 없다’고 하는 설명이 제대로 된 설명이다.

그러므로 주석과 해석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가까운 인연들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천지(天地)는 여아일체(與我一體)다. 나와 전부 한 몸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것을 깨달아야 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자연보호’ 같은 일도 법계 연기의 차원, 화엄의 이치에서 그 이론을 정립한다.


[경문]

9, 法身彌綸

  

身遍十方하사대 而無來往하시며

그 몸이 시방에 두루하면서도 아무런 왕래가 없다.


*

법신미륜(法身彌綸); 법신이 두루하다.

*

신변시방(身遍十方);법신이 가득하다. 무엇이 있어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법신이 시방에 두루하는 것이다.

이무래왕(而無來往); 왕래도 없다.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어떻게 생겼든지 현재 생긴 모습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다. 

*

쌀이 좋다고 겨가 전부 쌀이 되려고 한다면, 벼뿌리가 쌀이 되려고 하고 뿌리는 안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겨는 겨대로 현재 위치에서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다. 모두는 그대로 그 값을 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화엄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화엄경은 공부하면 할수록 근사한 경전이다. 부처님과 인연 맺고, 불교와 인연 맺어서 화엄경 한 번 제대로 공부 못한다면 아까운 일이다.


[경문]

10, 智慧


智入諸相하사 了法空寂하시며

 

그 지혜는 모든 형상 속에 다 들어가서 법이 공적함을 요달하시며,

 

*

지혜라. 

*

지입제상(智入諸相) 요법공적(了法空寂);지혜가 모든 현상에 들어가서 법의 공적함을 안다. 모든 존재가 공적함을 안다.

차별되게 드러난 현상은 우리도 안다.

그런데 깨달음의 안목에서 안다는 것은 공적한 이치를 아는 것이다. 평등한 이치를 아는 것이고 공한 이치를 아는 것이다. 현상대로 공한 것을 봐버리는 것이므로 즉공(卽空)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분석해서 공으로 안다든지,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연기니까 결국은 공이라고 아는 것이 아니다.

분석공은 성문의 이해고 연기공은 연각의 이해다.

보살 이상이 되면 즉공으로 이해를 해야 된다.

화엄경은 현상 그대로 공이라고 이해를 하는 차원이다.

*

공도 차원이 그렇게 다르다. 이것을 설명하면서 예를 들어서 마이크가 여러 가지 부속으로 이루어져서 하나의 마이크가 되었다든지 이만 여 개의 부속품이 자동차를 형성하고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분석해서 공을 설명하면 성문의 차원이다.

인연에 의해서 잠깐 이렇게 존재한다고 하는 식으로 설명하면 연각의 차원이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密時)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그것은 분석공도 아니고 연기공도 아니다. 바로 공이다. 사물그대로 공이다.

그런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교학을 제대로 공부 안 해 놓으면 두루뭉실 설명한다. 틀린 말이다.


  [경문]

11, 諸佛神變


三世諸佛所有神變於光明中靡不咸覩하사 一切佛土不思議劫所有莊嚴悉令顯現케하시니라

 

삼세제불의 신통변화를 광명 가운데서 모두 다 보시며, 모든 부처님 국토의 부사의한 겁에 있는 장엄들을 모두 다 나타나게 하셨다.


*

제불신변(諸佛神變);모든 부처님의 신통변화

삼세제불(三世諸佛) 소유신변(所有神變) 어광명중(於光明中); 모든 광명 가운데 부처님은 삼세제불의 신통변화를

미불함도(靡不咸覩); 다 보지 아니함이 없다.

일체불토부사의겁(一切佛土不思議劫); 모든 세계와 불가사의한 모든 시간의

소유장엄(所有莊嚴);있는 바 모든 장엄을

실영현현(悉令顯現);모두가 나타나게 한다.

일체불토는 공간이고 부사의겁은 시간이다. 시간도 공간도 거침없이 걸림없이 공존하고 있다. 사사무애다.

과거 없이 현재가 없고 미래 없이 현재가 없다.

우리들의 지금 이 순간은 무한한 과거가 축적이 되어서 존재한다. 과거 없이 현재의 우리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다.


*

일체불토,부사의 겁, 이 모든 장엄을 전부 다 순식간에 나타낸다. 그러니까 한 사물을 보고 그대로 이러한 현상을 보는 것이다 안목이라는 것이 그렇게 차이가 있다.

우리는 단순하게 그냥 꽃만 보지만 그 단순한 꽃 속에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온 우주가 흔들림을 보았노라’

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경문]

四, 衆海雲集


1, 十信衆


有十佛世界微塵數菩薩摩訶薩 所共圍遶하니 其名曰普賢菩薩摩訶薩 普德最勝燈光照菩薩摩訶薩普光師子幢菩薩摩訶薩 普寶焰妙光菩薩摩訶薩 普音功德海幢菩薩摩訶薩 普智光照如來境菩薩摩訶薩普寶髻華幢菩薩摩訶薩普覺悅意聲菩薩摩訶薩普淸淨無盡福光菩薩摩訶薩普光明相菩薩摩訶薩

 

그 때 세존께서는 열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같은 보살마하살들에게 둘러싸여 계셨다. 그들의 이름은 보현(普賢)보살마하살과 보덕최승등광조(普德最勝燈光照)보살마하살과 보광사자당(普光師子幢)보살마하살과 보보염묘광(普寶焰妙光)보살마하살과 보음공덕해당(普音功德海幢)보살마하살과 보지광조여래경(普智光照如來境)보살마하살과 보보계화당(普寶髻華幢)보살마하살과 보각열의성(普覺悅意聲)보살마하살과 보청정무진복광(普淸淨無盡福光)보살마하살과 보광명상(普光明相)보살마하살들이었다.   


*

중해운집(衆海雲集); 화엄경은 대단한 경전이다. 이제사 법회에 함께 한 청중이 나온다. 지금까지 소개한 부처님의 깨달음을 통한 장엄과 불가사의한 덕은 대강의 제목정도를 소개한 것이다.

우리도 화엄경 산림법회에 모처럼 청중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 초심을 잃지 마시고 오늘 마음 그대로 10년까지 갔으면 좋겠다.

*

십신중(十信衆);10명의 동명(同名)보살이 모였다. 전부 이름에 넓을 보(普)자가 들어 있는 보살들이다. 10동명보살이라고도 한다.

불자들 이름을 무슨무슨 화나 성이나 심처럼 같은 글자가 들어가게 이름을 많이 짓는다. 이런 것은 모두 화엄경에 근거한 다.

이렇게 많이 모인 대중은 모두 상징하는 바가 있다.

*

유십불세계미진수보살마하살(有十佛世界微塵數菩薩摩訶薩);십불세계의 미진수보살

소공위요(所共圍遶);다 함께 에워싸고 있는 바가 되었다.

미진수란 이 지구 열 개를 부숴서 작은 먼지를 만들었을 때 그 먼지의 숫자와 같이 많은 숫자를 말한다. 미진수보살마하살은 그 먼지 숫자같이 많은 보살마하살이다.

그렇게나 많은 보살들이 전부 부처님을 에워싸고 있다.

화엄경의 법회청중으로서 그 중에 대표자들의 이름만 소개하는데 220여 명의 명단이 나와 있다.

*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 첫 인물로서 보현보살이 등장하였다. 다른 경전에는 대부분 처음에는 문수보살이 등장한다. 그런데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이 첫번 째로 등장한 것은 그가 실천을 상징하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대로 완전 무결한 존재다.

지금 그대로 용기있게 씩씩하게 활발발하게 살아라.

활발발하게 보살행 하고 살아라.”

실천을 상징하는 보살인 보현보살을 맨 앞에 내놓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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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普賢)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우리의 실체가 두루두루 어디 안 미치는 데가 없다. 그래서 넓을 보자를 쓴다.

한 사람 한 사람 누구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다 제도한다. 그래서 넓을 보자다.

불과(佛果)에 이르는데 있어서 다하지 아니함이 없다. 그래서 넓을 보자다.

하나가 곧 일체다 그러니까 넓을 보자다.

일체가즉일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명한 일이기 때문에 어질다. 그래서 어질 현자를 쓴다. 이런 식으로 보현보살에 대한 설명이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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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가 넓다, 덕이 넓다, 지혜가 넓다, 행이 넓다, 그 소리가 넓다, 지(智)가 넓다, 마음이 넓다, 깨달음이 넓다, 복이 넓다, 그 모습이 넓다. 이렇게 10가지로 넓은 것으로써 넓을 보(普)자를 설명하는 옛 설명도 있다. 이쯤에서 생략하고 이름에 첫글자로 보자가 들어있는 보살들을 모두 같이 가만히 읽어보겠다.


[경문]

2, 十信滿心과 十住의 第一 發心住衆


海月光大明菩薩摩訶薩雲音海光無垢藏菩薩摩訶薩功德寶髻智生菩薩摩訶薩功德自在王大光菩薩摩訶薩善勇猛蓮華髻菩薩摩訶薩普智雲日幢菩薩摩訶薩大精進金剛臍菩薩摩訶薩香焰光幢菩薩摩訶薩大明德深美音菩薩摩訶薩大福光智生菩薩摩訶薩이라 如是等而爲上首하사 有十佛世界微塵數하니라

 

또한 해월광대명(海月光大明)보살마하살과 운음해광무구장(雲音海光無垢藏)보살마하살과 공덕보계지생(功德寶髻智生)보살마하살과 공덕자재왕대광(功德自在王大光)보살마하살과 선용맹연화계(善勇猛蓮華髻菩)보살마하살과 보지운일당(普智雲日幢)보살마하살과 대정진금강제(大精進金剛臍)보살마하살과 향염광당(香焰光幢)보살마하살과 대명덕심미음(大明德深美音)보살마하살과 대복광지생(大福光智生)보살마하살들이다. 이러한 이들이 상수(上首)가 되어 열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와 같은 보살대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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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명(十異名)보살이라고 해서 십신대중(十信大衆)이다.

모두 상징하는 바가 있다. 화엄경은 그 짜임이 치밀하다.

십신만심(十信滿心)은 곧 초발심주(初發心住)가 된다. 그런 것을 상징하는 대중이다.

이 열 명의 보살들은 상수보살들인 대표자이고, 십불세계의 미진수보살마하살이 있었다. 입이 벌어져서 뭐라고 말을 못할 정도로 많고 많은 보살들이다.

 


[경문]

3, 勝德讚歎

 (1) 自利行


此諸菩薩 往昔 皆與毘盧遮那如來 共集善根하야 修菩薩行하시니 皆從如來善根海生이라 諸波羅蜜悉已圓滿하며 慧眼明徹하야 等觀三世하며 於諸三昧具足淸淨하시니라

 

이 모든 보살들은 지나간 옛적에 다 비로자나 여래와 같이 선근(善根)을 모아서 보살행을 닦았으므로 모두가 여래의 선근바다에서 출생한 이들이다. 모든 바라밀(波羅蜜)이 이미 다 원만하고 지혜의 눈이 명철(明徹)해서 삼세를 평등히 관찰하며 모든 삼매를 구족하고 청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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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덕찬탄(勝德讚歎); 보살대중의 덕을 찬탄하다.

대개 내빈을 소개할 때 간단하게 그 사람의 양력과 직책을 소개하듯이 보살대중의 덕을 찬탄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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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가지 우리 불교 의식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다. 어느 경전이든지 법회 청중을 먼저 소개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 불교계 행사하는 것을 보면 내빈 소개를 맨 나중으로 미뤄서 축사를 하고 격려사를 다 한 다음 다시 소개하는 일이 있다. 이런 것은 모양이 아니다.

어떤 행사에서든지 내빈으로 온 사람들을 미리 소개하는 것이 좋다.

모임이나 의식에서는 참여한 사람을 알면 그 격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일반 청중들도 이러한 분이 모였으니 이 법회, 아니면 이 행사의 격은 어떻구나 하고 미리 알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이 이미 다 경전에 나와 있다.

경전은 깨달은 사람들이 그 좋은 머리, 그 깊은 지혜로 수십 수백 차례 거르고 다듬어서 나온 것이다. 소설가가 소설 쓰듯이 생각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런 데에 기준해서 불교의 행사도 진행하면 모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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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행(自利行); 보살대중은 자기가 이로운 행이 원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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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보살(此諸菩薩) 왕석(往昔); 이 모든 보살들은 옛날에 

개여비로자나여래(皆與毘盧遮那如來) 공집선근(共集善根); 비로자나 여래로 더불어서 선근을 같이 모았다.

수보살행(修菩薩行); 보살행을 닦으시니

개종여래선근해생(皆從如來善根海生); 다 여래 선근해로부터 생긴 사람들이다.

이 법회의 청중인 보살들은 모두 부처님과 선근을 같이 닦았다. 여래선근으로부터 생긴 훌륭한 보살들이다. 

제바라밀(諸波羅蜜)실이원만(悉已圓滿); 모두모두 바라밀이 전부 원만하다.

화엄경에서는 6바라밀이 아니라 10바라밀이다. 보살들은 그 모든 바라밀이 원만하다.

혜안명철(慧眼明徹); 지혜의 눈이 명철하다.

등관삼세(等觀三世); 과거 현재 미래를 평등하게 관찰한다.

지혜의 눈이 명철하므로 과거를 못 봤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고 미래가 안 왔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도 결손이 없이 다 안다.

어제삼매(於諸三昧)구족청정(具足淸淨); 모든 삼매에 있어서 구족히 청정하다. 아주 뛰어나다.


[경문]

    (2) 利他行


辯才如海하야 廣大無盡하며 具佛功德하야 尊嚴可敬하며 知衆生根하야 如應化伏하며

 

변재(辯才)가 바다와 같아서 넓고 크기가 끝이 없으며, 부처님의 공덕을 갖추어서 존엄하며 공경할 만하며,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알맞게 교화 조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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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행(利他行); 남을 이롭게 하는데

변재여해(辯才如海);변재가 출렁이는 바다와 같다.

광대무진(廣大無盡)이다. 

구불공덕(具佛功德); 보살들은 부처님의 공덕을 똑같이 갖췄다.

존엄가경(尊嚴可敬); 높아서 가히 공경할만하다. 

지중생근(知衆生根); 중생들의 근기를 속속들이 안다.

여응화복(如應化伏); 그 근기에 딱 맞춰서 교화하고 조복한다.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에도 엉뚱하게 동상이몽이다. 한 집에 살아도 전혀 생각이 다르다. 

법회에서 신도들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자기도 모르는 고준한 선도리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안 맞다.

여기를 보라,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똑같이 맞추어 교화하고 조복한다.


 [경문]

   (3) 地位


入法界藏하야 智無差別하며 證佛解脫 甚深廣大하며 能隨方便하야 入於一地하야 而以一切호대 願海所持恒與智俱하야 盡未來際하시니라

 

법계장(法界藏)에 들어가서 지혜가 차별이 없으며, 부처님의 깊고 광대한 해탈을 증득하여 능히 방편을 따라서 어느 한 지위에 들어가서 일체를 다 쓰되 서원의 힘으로 항상 지혜와 함께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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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地位); 보살이 도를 이룬 지위가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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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계장(入法界藏);법계의 세계에 들어가서

지무차별(智無差別);지혜가 하나도 차별이 없다.

보살의 지혜는 온 우주 법계 그 자체다.

증불해탈(證佛解脫);부처님이 터득하신 해탈은 심심광대(甚深廣大)한데 이 보살들은 그것을 전부 증득하고 있다.

능수방편(能隨方便);능히 방편을 따라서

입어일지(入於一地);한 지위에 들어가서

이이일체(而以一切); 일체로써

원해소지(願海所持); 원력을 닦아 가진 것으로써

항여지구(恒與智俱); 항상 지혜로 더불어 함께 한다.

진미래제(盡未來際);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원과 지혜를 그대로 갖추고 한다.


한 지위에 들어가면 일체지가 구족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 便正覺)과 통한다. 발심이 제일지(第一地)며, 정각을 이룬 그 지위까지 다 간다.

그래서 원력을 닦아가진 것으로써 항상 지혜와 더불어 함께 한다. 원력만 있어서는 안 된다. 꼭 지혜가 따라야 된다. 마찬가지로 지혜만 있어서는 안 된다. 원력이 있어야 그 지혜가 살아 숨쉬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 우리가 원력과 지혜를 동시에 갖추어야 제대로 보살행을 할 수 있다. 중요한 말이다.


[경문]

  (4) 勝進果行


了達諸佛希有廣大秘密之境하며 善知一切佛平等法하며 已踐如來普光明地하며 入於無量三昧海門하며 於一切處皆隨現身하야 世法所行悉同其事하고 總持廣大하야 集衆法海하고 辯才善巧轉不退輪하시니라

 

또한 모든 부처님의 희유하고 광대한 비밀경계를 요달하였으며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법을 잘 알며 여래의 넓고 광대한 경지를 이미 밟았으며, 한량없는 삼매바다에 문에 들어갔다. 일체처에서 다 몸을 나타내어 세상에서 행하는 일을 다 함께하며 총지(總持)가 광대해서 온갖 법을 다 지니며 변재가 훌륭하여 물러가지 않는 법륜을 굴리었다.


*

승진과행(勝進果行); 과행에 나아간다. 결과의 행 말하자면 불행(佛行)을 말한다. 부처의 행을 과행(果行)이라고 한다. 우리의 최고 결과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

요달제불(了達諸佛); 제불을 요달한다.

희유광대비밀지경(希有廣大秘密之境);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희유하고 광대하고 비밀한 경계이다. 부처님의 경계는 다 아는 사람에게는 비밀이 아니지만 모르는 이에게는 비밀이다.

이렇게 희유하고 광대하고 비밀한 경계를 이 보살들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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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일체불(善知一切佛) 평등법(平等法);모든 부처님의 평등법

부처님은 그 가진 법이 천불만불이라도 다 평등하다. 똑 같다.

이천여래의(已踐如來);여래가 밟은

보광명지(普光明地);넓고 빛나고 밝은 지위

이 보살들은 부처님의 지위를 다 밟았다. 그러니까 시명보살(是名菩薩)이다. 보살은 이름이 보살일 뿐 부처가 밟은 그 땅, 그 지위를 다 밟아 올라간 사람이다.

입어무량삼매해문(入於無量三昧海門); 무량의 삼매의 문에 들어간다.

어일체처(於一切處) 개수현신(皆隨現身);다 따라서 몸을 나타낸다. 필요한 대로 다 나타낸다.

관세음보살이 32응신을 나타내고 하는 것들이 여기서는 식은 죽 먹듯이 입만 벌렸다 하면 일체처에 개수현신이다.

세법소행(世法所行); 세상법이 행하는 바에

실동기사(悉同其事);그 일을 함께 한다.

세상법이라고 해서 결코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유치원생이나 그렇게 한다.

우리 어릴 때는 같이 중노릇하다가 나는 선방에 가는데 그 사람은 선방에도 안 가면 참 불쌍하게 봤다. 생각해보면 어리석었다. 세상일에 특별한 일은 없다. 보살은 세상법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일을 같이 한다.

*

총지광대(總持廣大); 기억해서 가지는 것이 넓고 크다.

집중법해(集衆法海); 온갖 법의 바다를 다 모은다. 법해는 가르침의 바다이고 진리의 바다이다.

변재선교(辯才善巧); 변재가 아주 뛰어나 능숙하다. 선교(善巧)는 아주 뛰어난, 능숙한, 이런 뜻이다.

전불퇴륜(轉不退輪);한 번 들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화엄경이 좋다하면 결코 안 빠지고 계속 오는 것이다. 그런 법문을 하는 것이 전불퇴륜이다. 한 번 듣고 다시 안 오면 퇴륜하는 법을 굴리는 것이다.

보살은 늘 한 번 들으면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법륜을 굴린다.


  [경문]

  (5) 二行無碍


一切如來功德大海 咸入其身하고 一切諸佛所在國土皆隨願往하고  已曾供養一切諸佛하야 無邊際劫歡喜無倦하고 一切如來 得菩提處 常在其中하야 親近不捨하고 恒以所得普賢願海令一切衆生으로 智身具足케하야 成就如是無量功德하시니라

 

그 몸이 일체 여래의 공덕바다에 다 들어가고 일체 제불의 국토에 다 바라는 대로 가서 이미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여 끝없는 겁(劫)토록 환희하며 게으르지 않았다. 일체 여래의 보리를 얻은 곳에는 항상 그 가운데 있어서 친근해서 버리지 않고 항상 보현의 원력으로써 모든 중생들에게 지혜의 몸이 구족하도록 하는 등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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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무애(二行無碍); 자리행과 이타행이 걸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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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들은 일체여래(一切如來) 공덕대해(功德大海)에

함입기신(咸入其身);다 들어와 있다.

일체제불(一切諸佛)의 소재국토(所在國土)에 모든 부처님에게

개수원왕(皆隨願往); 원력으로써 마음대로 간다.

이증공양일체제불(已曾供養一切諸佛); 일찍이 일체제불을 다 공양 올려서 이바지 했다.

무변제겁(無邊際劫);끝없는 세월속에서

환희무권(歡喜無倦);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 늘 환희해서 한 번도 게으르거나 싫증낸 적이 없다.

일체여래(一切如來) 득보리처(得菩提處); 여래의 보리를 얻은 그 곳에

상재기중(常在其中); 항상 그 가운데 있더라.

*

보살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어. 그래 나도 거기 가야지’라고 생각한다. 몸이 꼭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밑에 간다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그 정신세계에서 항상 노닌다는 뜻이다.

여래가 보리를 얻은 곳은 부단히 열심히 정진하는 바로 그 정신 그 자리다.

 

*

친근불사(親近不捨);늘 공부하고 가까이 해서 결코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항이소득(恒以所得);항상 얻은 바

보현원해(普賢願海);아무리 불교의 원력이 뛰어나고 장해도 그 대표주자는 보현보살이다.

내가 화엄경 4권 째 제일 마지막에 보현행원품을 붙인 이유다. 화엄경에 보현보살이 맨 처음 나온 이유다.

활발발하게 씩씩하게 당당하게 이대로 내 인생 긍정하고 용감하게 살자는 것이다. 용감하게 보살행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보현보살이 나왔다. 보살들은 전부 보현원해를 얻었다. 그것으로써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지신구족(智身具足);지혜의 몸을 구족케 한다.

지신구족이라는 말도 중요한 말이다. 일단 지혜의 안목이 있어야 보살행을 하든지 봉사를 할 수 있다. 지혜가 없이 자기 생각대로 자기 정이 가는 대로 하면 정에 떨어지고 집착에 떨어진다. 잘못하면 동타지옥에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지혜가 중요하다. 지혜의 몸을 구족케 해서

성취여시무량공덕(成就如是無量功德);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케 한다.

 


<정리>

화엄경 서론격인 내용

화엄경의 지도 구성표를 통해서 전체를 조망하는 내용 

제1권 시성정각-정각을 통해서 비로소 불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

법회청중 중에서도 제일 훌륭한 보살 소개

그들의 덕을 소개하는 내용

오늘 화엄경 첫시간 이렇게 공부하였다.

(박수소리)

“다음시간에는 한 분이 한 분씩 더 모시고 오십시오.”


하강례


환희 바다


법회가 끝났다.

‘화엄의 바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그 속에 녹아 있고, 평생 불교가 녹아 있고, 그것입니다. 내 나이 육십팔, 78세가 될 때까지 못할 거 없지.’

불교지 기자와 대담하시면서

‘사실은 나만 아는 일인데 내 마음속에 화엄산림 10년 공부를 해야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말 안했어.’ 하셨던 비밀이 오늘 다 밝혀져 버렸다.

“스님 너무 환희로와요. 내가 입재해 놓았으니까 다음부터 꼭 함께 해요.”

어디론가 전화선을 타고 비구니 스님의 맑은 기쁨이 전해지는 소리를 들었다.

전국에서 모이신 스님들, 고속도로가 화엄의 바다로 향하는 기쁜 마음들로 가득했으리라.

“내가 공부한 것, 수행자로 살아온 시간들을 반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환희로왔어요.”

역까지 차를 태워주신 또 한 분의 비구니스님은 대답해 주실까, 조심스럽게 물은 법회소감을 밝게 들려주셨다.

꿈에서까지 화엄경을 강의하셨다던 큰스님, 여느 때보다 빛나는 목소리가 오후 6시가 넘어서까지 쩌렁쩌렁 하셨다.

문수선원이 출항하는 배처럼 출렁였다. 비가 그쳤다.


빗방울도 환희로운 오늘

화엄바다의 하루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慧明華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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