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명상

[스크랩] [해인총림 방장 법전스님] 산 만나면 길 닦고 다리 만나면 물 건너라

娘生寶藏 2015. 1. 3. 06:00

 

화두를 산길 삼아 정진의 길 걷도록

 

踏破草鞵雙脚赤

日日相逢不相識

 

헤진 짚신으로 인하여 양쪽 모두 맨발인데

/ 매일같이 만나도 서로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구나.

 

설정복유(雪庭福裕)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봉산개로(逢山開路)하고 과수안교시(過水安橋時)에 여하(如何)오.

산을 만나면 길을 닦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을 때는 어떠합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의 49년 수행은 공연히 힘만 낭비한 기간이었고

조사들의 천칠백 공안은 헛된 공(功)을 베푼 것에 불과하다.”

갑오년 동안거 결제일 입니다.

 부처님 당시엔 하안거는 있었지만 동안거는 없었습니다.

풍혈연소(風穴延沼)선사 회상은 동안거는 있었지만 하안거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땅은 장맛비로 인하여 하안거가 공부하기 좋은 시절이고,

중국선림은 얼음과 눈으로 인하여 동안거가 공부하기 좋은 시절인 까닭입니다.

해동의 총림 역시 매서운 북풍으로 인하여 얼음 때문에 길이 끊기게 되고,

추위로 인하여 오가는 인적마저 드물게 됩니다.

그리고 흰눈으로 인하여 천지가 하얗게 덮여

 모든 분별심을 저절로 사라지게 만듭니다.

 따라서 삼동결제 기간은 참으로 정진하기 좋은 시절인 것입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언제나 분별심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49년 고행을 헛되게 만들고,

선사들의 천칠백공안을 도로(徒勞)로 만들 뿐입니다.

제대로 안거하는 결제납자라면 구순(九旬) 십이시중(十二時中)에

 항상 분별심이 일어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해야만 합니다.

말의 분별은 불조(佛祖)를 넘어서지만 실행의 분별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언어이건 행동이건 움직이기만 하면 헛것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또 약간의 지각(知覺)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얼음처럼 그 생각이 굳어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지도 않고 지각하지도 않게 된다면

나무토막이 썪은 물에 가라앉는 꼴이 될 것입니다.

 위로도 더 잡고 올라갈 여지가 없어야 하며,

아래로도 자신의 몸뚱아리 마저 안착할 곳이 없어야 합니다.

어쨌거나 칼날도 상하지 않으면서 손도 베이지 않는

그런 경지가 공부의 묘(妙)라고 할 것입니다.

그저 90일동안 ‘말을 잘한다’ 혹은 ‘수행을 열심히 한다’는

 등의 갖가지 분별의식 조차 절대로 일으키지 말고

오직 화두를 드는 것으로만 살림살이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 외에 것은 어떤 것이라고 할지라도

부처님의 49년 수행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며,

조사들의 천칠백 공안을 헛되게 만드는 것일 뿐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복유(福裕)선사에게 다시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초연한 경지를 얻어

홀로 현상에서 빼어난 존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봉산개로(逢山開路)하고 과교도수(過橋渡水)하라.

산을 만나면 길을 닦고 다리를 만나면 물을 건너라.”

수행이란 산을 만나면 묵묵히 길을 내는 일이며,

 물을 만나면 말없이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혹 옆길이 있다면 돌아서 갈 일이고,

물에 돌다리가 있다면 건너가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90일 동안 그저 화두를 산길로 삼고

 화두를 물길로 삼아서 열심히 정진의 길만 걷도록 합시다. 

 

三汲浪高魚化龍

痴人猶戽夜塘水

세 단계의 물을 거슬러 올라간 물고기는 용이 되었는데

/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도 밤새워 연못물을 퍼내는구나.

 

 

 

 

 

//
[화보-1]도림당 법전 대종사 종단장 영결·다비식
2014년 12월 27일 (토) 15:56:00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출처 : 붓다의 향기 뜨락
글쓴이 : 연정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