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명상

[스크랩] 지금 나는 어디 만큼 가고 있는가

娘生寶藏 2018. 11. 29. 08:55

                               

매사와법진


【 지금 나는 어디 만큼 가고 있는가 】
 

예불이나 법회를 시작할 때

우리는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하면서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예를 올립니다.
양족존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자비나 지혜와 같은 모든 덕성을 완전히 구비한 부처님이란 뜻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일일히 다 이야기하자면

 자비나 지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자비와 지혜의 두 속성을 들어서

 부처님의 공덕을 표현합니다.
그럼 부처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 불자들은 이런 질문을 항시 하게 됩니다.
부처님께 귀의해서 일년된 분이나 십년된 분이나

 몇십년이 되였다 하더라도 이런 질문을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 성불하여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부처님은 대체 어떤 분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질문에 바르게 해답할 수 있어야

수행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말이나 문자로는 부처님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

또는 인과율을 초월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현상적인 형상만 보고 상대적인 문제만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부처님이 현상적인 문제를 떠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상과 그 본래 모습인 실상(實相) 모두를 하나로 보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은 안목이 짧아서 실상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참다운 세계,

본래 진면목의 세계가 우리 중생이 볼 수 있는

 현상의 세계와 둘이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하나 현상은 모두가 다 실상이 형상화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바다에 대한 파도의 관계와 같습니다.
바닷물 자체가 실상, 곧 체에 해당한다면,

 여기서 일어나는 온갖 거품이나 파도는 현상인 용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바닷물을 떠난 파도와 거품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현상을 떠나서 참다운 실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주만유의 본성품을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제 아무리 분별 시비하는 학식이 많다 할지라도

 실향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는 참다운 본성을 찾는,

참다운 고향을 찾는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참다운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지금 나는 어디만큼 가고 있는가?'

 이렇게 자기를 성찰해 보고 자기를 반추를 해 봐야 합니다. 



 

   


출처 : 붓다의 향기 뜨락
글쓴이 : 연정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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