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부터는 덕숭산 수덕사 조실(祖室)로 억지로 추대받고 머무르고 계시면서
눈밝은 납자들을 제접하여 선풍을 떨쳤다.
그 후 서울 정릉 팔정사(주지 蓮湖스님)와 선학원, 공주 마곡사의 조실로도 추대되었으며
재가 수행단체인 달마회등 선학자들을 지도하셨다.
사(師)께서는 승속을 가리지 않고 선방(禪房)에서는 화두법문을,
산천에서는 시를 읊으시며 오직 중생 제도에 전력을 다하셨다.
몸벗는 그 날까지 공들여 나아간 힘으로 지옥의 고통을 면할지언정
다소의 자부심으로 생사의 바다에 뛰어들지 말 일이다.
스승없는 공부는 죽음과 같으며,
탁마없는 공부는 발광(發狂)해 미친 짓이며,
공들이지 않는 공부는 병든 것이다.
"선지식을 여의고 산다는 것은 부모가 없는 것보다도 무서운 일이다"
사(師)의 말씀이다
한때 시자가 여쭈었다.
"깨달음이 없는 제자는 무슨 인연으로 佛祖의 혜명을 잇는 것입니까?"
노사께서 말씀하시었다.
"견성이다 견성이 아니다 하는 것은 한가닥 功行을 이른 것이니,
간절 切字로 믿음의 내용을 삼으면 견성이 그것이요,
信이 없으면 마음에 공행이 끊어져 결국 생사의 바다에 떨어지게 되니
이를 일러 '性稟을 못 보았다'하느니라."
밤이 깊으면 새벽은 가깝고 마음이 깊으면 말이 적은 법이다.
공행이 깊으면 깨달음이 크다.
진정한 학인은 극소수요, 불교 종단은 세속명리를 탐하여 타락해 가고있도다.
스승을 자처하는 도적은 많고 수좌를 자처하나 선량은 없도다.
승려 대신 백의[흰 옷의 속인]가 공부하는 세상이요,
비구는 잠자고 비구니가 공부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하시며,
"학인이 스승을 찾아다니는 세상이 아니라
도리어 스승이 학인을 찾아 나서는 세태가 되었도다."
저들은 악인입니까?
"법을 믿지 않는 까닭이니라."
지옥고를 받게 됩니까?
"선지식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어째서 그러합니까?
"저들이 스스로 마음에 고통을 일으키게 되니라."
100년의 인생을 師께서는 한마디로 "功行"이라고 부르신다.
"공들이는 가운데 불조의 本參公案이 열리기 때문이다.
혹 견성한 사람도 공들이지 않아 다시 쓸모없이 될수도 있다"고 하셨다.
참선공부에 세 가지가 구비되어야 하니 바로 큰 信心과, 큰憤心과 큰 疑心이라.
견성을 한 사람에게
공들이는 그것이 대신심이 아니고 무어냐?
견성을 한 사람에게
공들이는 그것이 대분심 없이 되던가?
견성을 한 사람에게
공들이매 스스로 큰 의심덩이 역력하지 않는가?
믿기 때문에 공들이는 것이요
분하기에 공들일 밖에 없을 것이요
의심덩이 뚜렷함으로 공들이는 것이요
공들인 果는 오도가 아닌가.
저들을 욕하여 제 몸만 상하고
비난하여 스스로 마구니 권속되니
피가 터지도록 떠들어 봐야 쓸모없나니
차라리 입다물고 남은 여생이나 보내리라.
"성품을 보고 깨닫는 일은 무슨 이유로든 미루어 둘 수 없는 일이니라.
이 일은 세상에온 一大事라. 불경을 가르치고 ,
禪을 내세워 사람을 모아 주먹쥐고, 할하고, 게송이나 지으며
결국 검고 흰 것도 구별 못하면서도 이것이 禪 생활이니,
이것이 선의 기도니, 이것이 선적 염불이라 떠드는 자칭 선지식은 있어도,
직접 불조의 화제를 통해서 견성해 들어 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선지식은 드물도다.
저 혼자 견성했다 떠들며 무리를 끌어 모으니, 굶주린 학인은 먹을 것이 없도다.
여우 새끼되어 재주부리며 佛祖의 흉내나 내며 말재주나 부리다가
염왕이 심판할 제 무엇을 이를겐가?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모르니.
제자를 가르치지 못하면 그들의 병만 尤甚하게 되리니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마왕의 자손이되니라.
한때 문경 봉암사에 가셨다가 낙상하셨는데 골절된 부위가 연로하셔서 접골이 되지 않아
열반하시기 전까지 혼자 걷지 못하신 채 주위의 부축을 받으시며 기동하셨으나,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시는 것을 곁에서 보지못하니, 오직 납자를 제접하는 일과
보임(保任)에만 전념하셨다.
어느 사암(寺庵)에 계시든, 어느 집 어느 길가에 계시든 그곳이 총림(叢林)이어서,
참선과 법담으로 항시 주위 학인들은 깨어 있어야 했다.
사(師)께서는 불편하신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자주 동아병원 청운선실에 머무르시면서
환자, 의사, 간호사 등 많은 불자들에게 열반직전까지 法雨의 자비를 베푸셨다.
사(師)께서는 영겁속에 자리할 미래세(未來世)를 살피시고
조용히 선정삼매를 낙으로 삼고 지내면서도
불법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마치 밤길의 등불처럼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정성을 기울이셨다.
혜암선사(惠菴玄門 禪師) 행장기(行狀記) 에서
http://cafe.daum.net/buddhajukbi?t__nil_cafemy=item
<경허-만공-혜암현문 대선사(7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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