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소심하지 않고 용감하게 키우기 위해
친애하는 부모님들,
어린이 날에
불교협회회관에는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과 함께 온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자기들끼리만 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비슷한 또래였습니다.
아이들은 기분좋게 함께 모였죠.
모두가 평범한 어린이들처럼 즐거운 표정을 짓고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앉아서 즐겁게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우리를 대신해 일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아이들이 오늘 선량하다면 미래에 선량한
어른들로 되겠지요.
아이가 좋게 될지 나쁘게 될지는 부모와 교사의 주목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아이를 이끌어야할 직접적인 책임을 지닌 사람이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이의 미래는 불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기르는 방법을 잘 알아 최선의 실천을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입니다.
어린이날을 축하하는 목적 중의 하나는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여 아이들의 육체와 정신이 앞으로 계속해서 건강하게
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나라의 선량한 사람들로 성장하게 될 테니까요.
잠시 들었던 그런 생각을 혼자서 즐기고 있자니,
무대 위로 용감하게 걸어올라가는 세 살 쯤 먹은 귀여운 어린 소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있는 제게로 곧장 향했습니다.
아이가 다가와 제 무릎 위에 엎드렸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모습을 보자니 즐거운 생각이 들어 녀석과 대화를
시작했죠. 녀석은 말을 아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제 질문에 대답을 썩 잘 했죠. 그 아이가 저한테 그렇게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우리는 잘 어울리는 듯했죠.
우리는 오래 동안 말을 나눴습니다.
저는 자애스럽게 아이를 안아서 이것 저것 볼 수 있도록 해주었죠.
그는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아이가 장난감에 흥미를 느껴 달라고 해서 장난감 몇 개를 주었습니다. 녀석은 자기처럼 무대 위로 올라오도록 어린
동생을 부르며 애써 손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올라오지 않으려 했는데,
그 아이에게선 두려운 기색마저 보였습니다.
전 같이 있던 그 세 살 먹은 아이에게 아주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모든 태국 아이가 정의의 편에 서서 용감하고,
의사표현을 큰 소리로 또렷하게 하는 모습을 보길 원합니다.
그러나 전 그런 장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위엔 여전히 너무도 소심한 애들이 많습니다.
누가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다름 아닌 부모들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절로 오는 모습을 참 자주 많이 봤습니다.
자식들이 장난끼가 많으면, 엄마는 대개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저 분은 스님이셔! 딴 짓 그만해.
안 그러면 스님이 네 볼기짝을 때리실 거다.”
이따금 엄마는 커다란 부처님 상을 손가락으로 가르치면서,
“그만 둬, 안 그러면 내가 그만두게 하거나 저 부처님이 그렇게 할 거야.” 아이가 그와 같은 불상을 두려워할 때 그런 말은 아이를 겁쟁이로 만듭니다. 커다란 공간에 있는 불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스님들이 부르면 그런 아이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런 까닭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겁주려고 스님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결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소심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큰 실책입니다.
치앙 마이의 ‘수안 붓다담마’(Suan Buddhadhamma)에는 완전한 사람뼈가 있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거기에 손을 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유령을 두려워했던 것이죠.
하지만 순진한 아이들은 다가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채 손을 대어
뼈를 만지고 느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그게 무언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뼈는 전혀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가슴 속에 두려움을 갖게 되는 까닭은 우리 어른들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을 아이들 머리 속에 심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항상 용감할 것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을 두렵게 만들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태국 아이들과 백인 아이들 간에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태국 아이들은 수줍어하고 낯선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낯선 사람이 무언가 물으러오면,
아이들은 대답하는 일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겁이 나서 도망가버릴 것입니다.
백인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은 다른 피부의 사람들이 다가와 질문을 하면 최선을 다해
대답할 것입니다. 왜 그렇듯 큰 차이가 날까요?
우리가 아이들을 그렇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예절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여 아이들이 너무 소심한 듯합니다.
아이들의 세상과 어른들의 세상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세계가 따로입니다.
각 세계는 서로의 경계선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아이들은 결코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어른들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려고 애쓰는 아이들은 누구나 너무
소란스럽거나 조숙한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꾸지람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아이들은 자기네 영역을 떠나볼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 채, 그 안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아이들을 대하는 바른 방식일까요?
옛날에 자신들도 그런 식으로 키워졌으므로 그렇게 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현대적 접근을 활용하면,
옛날 방식은 바르지 않다는 점이 드러날 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우리 방식은 완전히 잘못되었고 오직 백인들 방식만이
바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측면에서 백인들의 체계에도 꽤 좋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아빠와 10대 소녀애가 앞뜰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죠.
딸은 아빠의 목과 머리 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그런 행동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제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습은 높은 위치나 낮은 위치나 개의치 않습니다.
몸의 모든 기관들은 그 지위가 똑같습니다.
그러나 태국은 다르죠. 우리는 높고 낮은 신체부위를 아주 의식합니다. 그런 식으로 장난치는 일은 적절하지 못한 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점을 매우 주의깊게 숙고해야만 하며 오직 아이들을 훈련해야할 유용한 방법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정도면 족할 것입니다.
우리가 애를 써야 할 일은 너무도 작고 제한적인 세상에 아이들이
붙박혀 있지 않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아이들이 자기들 세계에서 나와 어른들 세계로
들어오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집단 속에 있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일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그런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기들끼리만 있어야 하고 결코 어른들
세계에 접근해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들어오면,
건방지게 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란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어른들은 아이를 항상 통제하에 둡니다.
어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 아이들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좀 더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일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마침내 자기 의사를 말로 표현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항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지니지 못하겠죠.
“내가 옳을까, 아 뭘까?”
아이들은 소심하게 행동하게 되어어른들과 자신감 있게 말하는 일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여러 달 전에 한 소년이 두 번째 계율을 어겨 혼이 나고 있었습니다.
물건 소유주는 아주 쉽게 화를 내는 그 아이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사실에 대해 제대로 확인도 않은 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애 아버지는 화가 나서 커다란 몽둥이를 찾았죠.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아이에게 금방 무서운 호랑이처럼
돌변했습니다.
아이는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아이는 지나치게 말을 더듬다가 아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와 더불어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커녕 아버지는 아들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는 실제 일어났던 일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와 같은 처사는 너무도 가혹한 벌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너무도 긴장해서 항상 말을 더듬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른들의 과오였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의 사고의 흐름을 차단하려 애써서는 안됩니다.
만일 아이들이 말하고자 하거나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우리는 아이들이 제멋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만
애를 써야 합니다.
만일 아이들이 무언가 바른 일을 하고 있다면 참견하려고 괜히
성가시게 굴지 마세요.
부모들은경우에
따라 평정심을 유지하거나 아이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실 지나치게 간섭하는 일은 좋지 않으며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일도 역시 좋지 않습니다.
딱 알맞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딱 알맞게 하는 것인가?
딱 알맞게 하는 일은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달려 있다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일이 옳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내버려두세요.
만일 그 당시 그 곳에서 그 일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여려분은 아이를 물러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딱 알맞게 행하는 것입니다.
천성적으로 아주 용감하지 않거나 어릴 적부터 수줍어하고
부끄러움을 타는 아이들이 있죠.
그런 애들이 말하는 데는 여러 날 걸리며 말을 해도 수줍게 합니다.
어떤 의견이든지 말하길 어려워하죠.
그게 그런 아이들의 습관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교정될 수 있으니 부모님들은 너무 지나치게 염려하시진 마세요. 어렸을 때 마하트마 간디는 수줍음을 아주 많이 탔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끄러움을 탔죠.
신임 변호사로 법정에서 고객을 변호할 때 그는 긴장이 되어 말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런 그도 나중에는 청중한테 자기의 의사를 아주 잘 전하는 위대한 연설가가 되었죠.
저로 말하면 어렸을 때 아주 소심해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해야만 할 때 저는 수줍어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제가 말을 얼마나 잘 합니까.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변화무쌍합니다.
개선될 수도 있고 악화될 수도 있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말할 때 소심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자신들보다 나이가 더 든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더욱 많도록 신경쓰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칭찬을 해주어 말을 근사하게 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집에 손님들이 있을 때마다,
특히 대화의 주제가 아이들의 정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비밀스러운 내용이 아니라면 아이들을 대화에 참여시키세요.
만일 대화의 어떤 대목에서든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말도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아이들을 꾸짖거나 당황스럽게 만들지 마세요.
오래지 않아 소심한 아이들이 수다스러워질 겁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개성과 맞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발전할 기회를 주시도록 애쓰길 부탁드려
마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한 가지 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머감각의 측면에서 고려가 부족한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또렷하지 않게 말하거나 적절치 않은 단어를 사용할 때 어른들은
종종 마음껏 아이들을 조롱합니다.
웃는 사람들은 재밌겠지만 비웃음을 사는 아이들은 결코 재밌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엄청나게 잘못을 저질렀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른들이 아이들을 비웃는 이유죠.
그런 뒤엔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길 두려워할 것입니다.
어른들이 웃는 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그런 많은 상처를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아주 조심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무언가 잘못된 말을 할 때 아이들이 조롱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할 어떤 내색도 하지 마세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꾸짖거나 말하는 도중에 그만두라고 하지 말고,
아이들이 계속 말하도록 그저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사고과정은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아이들의 집중력을 해칠 것입니다.
한편 어른들은
아이들이 저지른 실수를 기억하려 애쓰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 가족들끼리만 남게 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즉 이렇게 말하세요.
“넌 이걸 기억해야 된단다.
그 단어 저 단어는 바르지 않았어.
적절치 않으니까 그럴 때엔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말거라.
” 아이들은 꼭 그와 같이 기억할 것이며 다음 번에는 자신들의
숙련도를 향상시킬 또 다른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쉬운 규칙을 기억하세요.
“모든 아이는 칭찬받길 좋아하고 다정한 말을 좋아한다.
” 우리는 믿음직한 무언가를 아이들에게서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칭찬할 필요가 있습니다.
칭찬을 받으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무엇이든지
그것을명심할 것이며,
아이들은 대체로 우리한테 반박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할 때 아이들을 주시하면,
아이들은 종종 여러분을 바라봅니다.
만일 여러분 표정이 반대를 나타낸다고 관찰된다면,
아이들은 즉시 행동을 멈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분명하게 말한다면,
아이들은 절대 여러분 말에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한 가지 규칙입니다.
일반적으로 만일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알맞은 방식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면,
확실하게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어른들은 여러분 자녀들을 자주 훈련시킬 기회를 마련해야만 합니다.
집에 손님이 있을 때마다 여러분은 아이들이 손님과 친분을 맺고
환대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손님과 주인의 예의범절과 말씨를 관찰할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사회에서 사교적이 되는 일과 관련된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쉽게 어울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용감해야 할 상황에서 용감할 것이며,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때,
아이들이
바보같은 짓을 할까 염려하거나 수치감을 느끼진 않으실 겁니다.
이 일은 여러분이 노력해야만 할 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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