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方 廣 佛 華 嚴 經
卷第三十四
二十六, 十地品 1
강 의 내 용
오늘 14 페이지 할 차례입니다.
꽃이 작년보다 조금 향기가 진한 거 같아요. 겨울이 추워서 그런지. 경전이든지 사람이든지 꽃이든지 온갖 사물이든지 크고 작은 것이 있게 마련이고, 길고 짧은 것이 있게 마련이고, 모나고 둥근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게 늘.
무겁고 가벼운 사람도 있고, 무겁고 가벼운 마음도 있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본심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부처님의 마음의 입장에 있어서는 옳고 그른 시비가 끊어지고 선과 악,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이라 하는 육조(六祖=혜능스님)의 유명한 법문처럼 불심(佛心), 본성(本性) 그 자체에서는 생각을 벗어난 자리에서는 이념(離念)의 자리, 무념(無念)의 자리에서는 무상(無相)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선도 악도 사라지고, 오염되거나 청정한 것이 다 사라진다 해서 반야심경 같은 데도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이렇게 이제 우리의 본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본심을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또 배우고자 하는 대목들이 십지품 속에서 부처님의 근본 심지(心地) 법문으로써 낱낱이 이렇게 자세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해가 안 되고, 그러한 것은 이제까지 살아온 숙세(宿世)의 습기(習氣=묵은 번뇌) 때문에, 마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와 같은 자기의 생각의 그런 집착 때문에, 업을 따라서 천차만별로 좌충우돌 하면서 자기 멋대로 제멋대로 날뛰는 그런 습성 때문에 자꾸 중생이고자 하는 그런 업력 때문에, 우리는 쉽게 이러한 십지법문이라든지 모든 경전을 대할 때 잘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도 아무리 제자를 아끼고 하더라도 법문을 절대 밥숟가락을 입에 떠가지고 넣어주는 법은 없죠. 말을 물가까지 데리고 가더라도 물은 스스로 먹도록 그렇게 가르쳐줄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고, 그러한 이치들을 참 힘든 이치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한 도리에 대해서 깨친 사람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또 아~주 세밀하게 남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남이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맡고,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남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치에 훤히 밝아서 생멸법에도 잘 살아냅니다.
예를 들자면 베이식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전혀 글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문자화 할 수 없는 그런 와일드 문자를, 그러니까 인공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그러한 문자들을 가지고 문자의 조합으로 베이식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보이지 않는 데서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볼 수 없는 것, 일반 사람들은 집착 때문에 볼 수 없는 세계를 그 사람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나씩 만들어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됩니다.
또 스티브 잡스 같은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없는 텍스트 인터페이스 같은 경우를 자기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넘어가서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세계를 이 안이비설신의 확장 영역을 만들어서 자기의 세계를 생멸에서 아주 부(富)를 축적하면서, 자기가 한 사람이 부자가 됨으로써 여러 사람을 이끌어 주면서 그렇게 또 살아갑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왔던 워렌 버핏 같은 경우도 주식이 딱 뭐 어디 정해진 것도 아니고,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예측해 내면서 그 사람은 뭐 경험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그런 집착해 있는 세계를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놓고 삽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얘기도 들어보면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즐긴다’ 하고, 워렌 버핏도 ‘지나 온 과거가 언제가 좋았습니까?’ ‘지금이 제일 좋다.’ 어제 아래 그래 얘기합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현재라는 이 맛을 제대로 알고 산다는 거죠.
그래 우리는 과거에 너무 많이 매이고 미래에 대한 너무 허황된 것이 헛발질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해서 낱낱이 살펴보면 올해 왜 매화 향기가 더 진한지 자세히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전제로 깔고 오늘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어차피 살다보면 사람은 엎어지고, 자빠지고,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을 살아내야 됩니다. 이 작은 몸뚱이로 이 작은 소견머리로. 근데 그 길을 어느 누구 하고 감히 앉아도 지위가 높다든지, 재산이 많다든지, 인물이 잘 났다든지, 학벌이 좋다든지, 족벌이 좋다든지, 말을 잘 한다든지, 그 누구하고도 만나가지고 같이 늙어가는 입장에서 어떤 어느 상황에서 만나더라도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십지 법문 잘 공부하십시오. 결코 인생이 외롭지 않습니다.
덕불고(德不孤)라고 하는 말씀처럼 자기의 자비가 완전히 충만되고 지혜롭게만 된다라면 홀로 가는 길이 도 연명처럼 혼자 살더라도 결코 혼자일 수 없고, 천 년의 후학들 하고도 같이 교섭하면서 사는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있습니다.
이 정도까지 하고, 업력을 따르는 생각들을 지우는 의미에서 한 번 읽어보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서설이 너무 거창했나요? 죄송합니다. ㅎㅎㅎ ( 좋았습니다. ) 그럼 박수쳐야죠. (ㅎㅎㅎ 박수...)
② 不說의 第一理由
법이 깊고 어려우므로 설하지 아니 한다.
爾時이시에 大智無所畏金剛藏菩薩대지무소외금강장보살이 聞說是已문설시이하고 欲令衆會욕령중회로 心歡喜故심환희고로 爲諸佛子위제불자하야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그때 큰 지혜 있고 두려움이 없는 금강장보살이 이 말을 듣고 모인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불자들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26)
菩薩行地事보살행지사가 보살들이 행하는 십지(十地)의 일은
最上諸佛本최상제불본이니 가장 높은 부처님의 근본이시매
顯示分別說현시분별설이 드러내고 분별하여 설명하기란
第一希有難제일희유난이로다 으뜸가고 희유하고 매우 어렵고 (27)
微細難可見미세난가견이며 미묘하고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離念超心地이념초심지며 생각을 여의었고 마음을 초월하며
出生佛境界출생불경계니 부처님의 경계를 내는 것이매
聞者悉迷惑문자실미혹이로다 듣는 이 아득하여 의혹하리라 (28)
持心如金剛지심여금강하야 들으려는 마음이 금강과 같고
深信佛勝智심신불승지하며 부처님의 수승한 지혜 깊이 믿으며
知心地無我지심지무아하야사 심지(心地)가 무아(無我)(29)임을 알아야
能聞此勝法능문차승법이로다 이렇게 수승한 법 능히 듣나니 (30)
如空中彩畵여공중채화하며 허공에 그려 놓은 그림과 같고
如空中風相여공중풍상하니 공중에 부는 바람 모양과 같아
牟尼智如是모니지여시하야 부처님의 지혜가 이와 같으매
分別甚難見분별심난견이로다 분별커나 보기가 매우 어려워 (31)
我念佛智慧아념불지혜가 부처님의 지혜가 가장 거룩해
最勝難思議최승난사의라 헤아릴 수 없음을 내가 아나니
世間無能受세간무능수일새 세상 사람 이치 알 이 없기에
黙然而不說묵연이불설이로라 잠잠하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32)
이 십지법문, 불교의 근본 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구나 해탈의 길로 갈 수 있는 해탈의 목숨을 보장하는 길이 여기 있다는 거죠. 근데 이것은 사람들이 그 업을 따르는 생각이 파도와 그림자인 줄 모르고 그것이 자기의 실체인 줄 알고, 텔레비전에 그거 냉장고 선전하는 냉장고 속에 싱싱한 고등어를 넣어 놓으면 텔레비전에 달려드는 고양이처럼 그림자인 줄 모르고.
그렇게 이제 자꾸 헛 것에 매달리니까 공부가 제대로 안 된다는 거죠. 사람이 정직한 사람은 정법 속에 사는 사람은 삿된 법을 설하더라도 화토 얘기를 하든지 무슨 똥 얘기를 하더라도 이것은 부처님의 정법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만 사람 자체가 수행력이 삿된 사람들은 부처님의 정법을 가지고도 장사를 해먹고 산다는 거죠.
그러니까 정법(正法)인 사람이 사법(邪法)을 설하면 사법(邪法)도 정법(正法)이 되고, 사법(邪法)인 삿된 사람이 정법(正法)을 설하더라도 정법은 오히려 삿되게 된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제가 심심해 가지고 범어사에서 이렇게 내려오다가 엿 파는 엿장수 아저씨, 엿 같은 아저씨한테 물어봅니다. 솜사탕 빨간 것 파란 것 파시는데, 핑크 빛하고 하늘 색 파시는데,
“솜사탕 핑크 빛이 맛있습니까? 하늘빛이 맛있습니까?”
엿장수 아저씨 뭐라고 하셨겠어요?
“ 맛 똑같다.”
“아! 맛이 똑같은 거 보니까, 필시 맛은 색깔이 아니네요.”
이해 안 가시죠? 12월 달이 되면 다 이해가 갑니다.
(색깔이 다르지만 색깔을 보는 것은 하나이며, 맛은 다르지만 맛을 보는 것은 하나이다.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할 것인가? 수레를 때려야 할 것인가?)
그때 큰 지혜 있고 두려움이 없는 금강장보살이 이 말을 듣고 모인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불자들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살들이 행하는 십지(十地)의 일은 가장 높은 부처님의 근본이시매 드러내고 분별하여 설명하기란
으뜸가고 희유하고 매우 어렵다. 미묘하고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생각을 벗어나 있다. 아!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그 마음마저도 초월해 있다.
이런 얘기들은 금강경 얘기를 빌리면 자세하게 다 설명이 되어 있죠. 부처님께서 실컷 설법을 하시고 난 뒤에는, 내 설법은 비설법(非說法)이요 시명설법(是名說法)이다, 설법이 아니라 그 이름이 설법일 뿐이다. 수보리야 내가 연등불(燃燈佛) 처소에서 수기(授記)를 받은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부처님.
내가 모든 중생을 또 수보리가 어떻게 응운하주(應云何住)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이릿고, 이러면 부처님이 이제 대승정종(大乘正宗)이라는 부분, 대승의 정종, 대승의 가장 바른 근본적인 가르침이 그 마음을 항복 받아라. 그런데 그 마음이 없다, 이런 대목을 이렇게 설해 놓죠. 응여시항복기심(應如是降伏其心)하라. 응당히 이와 같이 마땅히 그 마음을 항복 받아라. 그 마음을 항복 받지 못한 사람은 이 구절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 생각과 일반적으로 마음이라고 하는 이 생각을 항복 받는다는 것은 딱 쉬운 말로 일체 중생을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체 중생을 내 족벌이 누군데, 내가 학벌이 어느 정도 되는데, 내가 인물이 어느 정도인데, 내 재력이 어느 정도인데, 하면서 남을 업신여기는 아상(我相)에 즉시 떨어져서 남을 공경하지 못 하니까 그 마음이 조복(調伏)되고 항복(降伏)될 리가 없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렇게 얘기하죠.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응멸도(我應滅度), 내가 응당히 멸도 일체 중생호리라. 그죠? 아개영입무여열반(我皆令入無餘涅槃)하리라. 내가 저들로 하여금 다 어디에? 무여열반에 들어가게 하리라. 이렇게 해 놓고 뒤에 와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저 모든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 했는데 실무도자(實無度者)니라. 한 중생도 진실로 제도한 바가 없다, 왜 그러냐? 중생 본래 없고, 부처 본래 없고, 이 마음 본래 없고, 법을 설할 자리 본래 없다.
미묘하고 심오하여 보기 어렵다. 부처님의 경계를 내는 것이매 듣는 이 아득하여 의혹하리라. 이러한 대목을 의상(義湘)스님께서는 이렇게 화엄에서 말씀하십니다. 법성게(法性偈)에서 증지소지(證智所知)요 비여경(非餘境)이다. 깨달은 자만이 소지(所知)라. 알 바이고, 나머지 사람은 모른다. 어쨌든지 간에 지금 이제 각자의 안목을 여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두 다리가 튼튼하고, 두 손에 솜씨가 좋고,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좁쌀만한 안목이라도 없으면 한 발짝도 위험한지, 뜨거운지, 차가운지 분간이 안 갑니다. 눈을 뜨십시오. 제발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경계를 내는 것이매 듣는 이가 아득하여 의혹하리라. 알 수가 없다, 들으려는 마음이 금강과 같고 부처님의 수승한 지혜를 깊이 믿으며 심지(心地)가 마음의 경지가 무아(無我)인 줄 알아야, 우리는 무아인 줄 모르거든. 안에서 항상 아만(我慢)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취(我取)가 도사리고, 아견(我見)이 도사리고 아애(我愛)가 항상 이렇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친 사람은 아는 사람은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아!~ 니 하고 내하고 마음이 똑같다!' 이렇게 하지만 깨치지 못한 우리 중생들이 볼 때는 ' 니 마음하고 내 마음은 다르다! 나는 항상 옳고 니는 항상, 항상은 아니지만 내만큼은 옳지는 못하다.' 이래서 온갖 시비분별이 일어난다는 거죠.
저 사람이 깨달은 소견이 있느냐 없느냐를 딱 바라볼 때 저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느냐, 위에 사람은 고사하고라도 밑에 사람은 어떻게 대하는지, 또 힘없는 사람은 어떻게 대하는지 바라볼 때, 깨달은 사람과 못 깨달은 사람의 소견은 금방 드러납니다. 왜냐? 중처편추(重處偏墜)라, 업(業)은 무거운 쪽으로 쏠리게 돼 있거든.
그런데 이 심지(心地)가 무아(無我)임을 알아야 이렇게 수승한 법을 듣는다.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그리고 혹시 들리는데 귀가 쩡쩡 울리든지 마음에 양심에 가책이 되는 분들은 솜을 가지고 다음 시간부터는 귀를 막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지금 하는 법문들은 포탄 소리 같아가지고 귀가 멀어 버리는 수가 있어요. 솜 가지고 조금 막아가면서 들어요. 미소 거사! 다음 시간부터는 솜 좀 가지고 와요. 조금 막고.
왜 전쟁할 때 포탄 팡~! 쏘면 옆에 있으면 어떻게 돼요? 고막이 터져 버리는 거라. 이거 잘못 들으면 머리가 뇌가 용량이 지나서 파열돼 버립니다. 그래서 사자후(獅子吼)를 들으면 백수(百獸)가 온갖 짐승들이 잡수(雜獸)들은 머리가 찢어져 버리거든. 조심해서 들으세요.
듣고 싶으면 귀 좀 막고 들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이렇게 꼭 막고, 이거는 정말 우레와 같고 사자후 같은 소리들이 지금 나옵니다. 계속. 그러니깐 귀를 조금 가리고, 눈 게슴츠레 하고 뜨고 눈 멉니다. 조심해서 들으세요.
자~! 이 법이 어떠냐?
허공에 그려 놓은 그림과 같고 공중에 부는 바람 모양과 같아서, 그 흔적을 더듬으려 해도 더듬으려 아무리 큰 눈을 뜨고 봐도, 천 개 만 개 눈이 있다 하더라도 볼 수가 없다. 허공 그림을 어떻게 누가 보겠느냐? 공중에 부는 바람이 동쪽으로 가는지 서쪽으로 가는지 누가 볼 수 있겠느냐?
부처님의 지혜가 이와 같으매, 여러분들의 본심의 본래면목의 자리가 그와 같으니까 우리는 그것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不生不滅불생불멸이니 不垢不淨불구부정이니 不增不減부증불감이니 以無所得故이무소득고니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니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이니 또 無眼界乃至無意識界무안계내지무의식계, 이런 말을 아무리 들어봤자 도로아미타불이다!
내하고는 관계없고 의식하는 것이니까 한 번씩 해보자. 이러지만 그것이 바로 반야심경이 뭐냐? 여러분들의 진면목이자 본래 그 자리이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친절하게 남겨놓으신 열반의 자리, 究竟涅槃구경열반의 자리, 너와 내가 손 맞잡고 가야 될 자리, 너무나도 맑고 향기로운 그 자리다, 이런 말씀입니다.
뭐만 벗어나면? 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만 하게 되면, 그 원리전도몽상이 이제까지 쌓아온 업을 따라, 업을 따라 끌려 다니는 이 몸뚱이가 황소가 끌면 질~질 업에 끌려가듯이. 꼭 지각하는 사람 봤죠? 지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자기 업이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이제 한 번 자세~히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牟尼智如是모니지여시하야, 그 모니라고 부처님의 지혜가 이와 같다, 모니라고 말하는 것은 석가모니 무슨 모니 이렇게 구나함모니 많이 하죠?
모니라는 말은 성인이라는 말씀이고 부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법경 거사님이 이제 성불하시면 법경모니불! 이렇게 얘기하거든. 법경모니불.
분별커나 보기가 매우 어려워, 부처님의 지혜가 가장 거룩해 헤아릴 수 없음을 내가 아나니, 부처님의 지혜가 가장 거룩해 헤아릴 수 없음을 내가 안다, 그러니 最勝최승하야 難思議난사의라.
어려울 難난자 생각 思사자 의논할 議의자, 難思議난사의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不思議부사의다 또 不可思議불가사의다, 思사라고 하는 것은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마음이 가는 길, 心行處심행처. 마음이 가는 곳. 議의라고 하는 것은 言語道,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길. 말이나 생각이 미칠 수 없는 그 자리, 그것이 이제 부처님의 지혜다, 이런 말이죠.
범어사에 가면 일주문에 가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神光신광이 不昧불매하여 이 마음의 빛이 어둡지 아니 해서,
萬古만고에 徽猷휘유라. 만고에 아름다운 법칙이 여기 있다.
入此門來입차문래하여는 莫存知解막존지해라.
제발 이 문에 들어오면 이제까지 배웠던 업 투성이 잡지식을 던져버려라. 잘못하면 정각이 되지 못하고 잡각이 될지니라. 이렇게 이제 써놨어. 入此門來입차문래면 범어사 안에 들어오면 莫存知解막존지해하라, 그런 유명한 일화가 있죠.
平田和尙曰평전화상왈, 이러는데 그 양반이 이름이 누구야? 신(고령 신찬 선사古靈 神贊 禪師) 뭐야? 생각 안 나는 것은 별로 안 중요하니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여하튼 법경스님이라고 하지 뭐. 법경스님이 은사스님을 모시고 있다가 百丈백장스님한테 공부하러 갔다가 이렇게 왔는데, 다시 돌아와가지고 은사스님이 책이나 화엄경 십지품이나 열심히 보고 자기 정진은 안 하고 계속 들여다보고 이러니까, 마침 그때 창문 봉창이 하나 있는데 거기다가 벌 한 마리가 톡톡 봉창에 갖다가 부딪치니까, 스님이 이제 은사스님 보고 한 말씀 합니다.
넌지시 빗대놓고는
‘확~ 열어놓은 큰 문으로는 나가지도 않고, 꽉 막힌 봉창을 자꾸 뚫어봐라. 조그마한 봉창이 뭣이 옛날 종이 아무리 뚫어봐야 뚫히나!’
자식 내보고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ㅎㅎ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살~짜기 삐쳐서 있다가, 어느 날 또 며칠 있다가
‘야~야~ 여기 와서 조금 내 목욕하는데 등이나 좀 밀어라.~’ 등 밀면서
‘하! 법당은 좋은데 영험이 없네.’
‘이 무슨 소리야. 자식’ 뒤로 한 번 힐끗 보니까 눈을 째려보니까
‘하이고! 그래도 방광은 하네!’ ㅎㅎㅎ
(好好法堂 佛無靈驗호호법당 불무영험 佛無靈驗 時時放光불무영험 시시방광)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당신 가지고 있는 그대로, 글자 하나 배우지 않아도 넉넉한 보고 듣고 하잖느냐.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가 있느냐. 그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는 은사스님이 답답했던 거죠. 우리가 이 화엄경 이게 책이 아니죠. 이거는 방편으로 자동차 키를 꽂아가지고 턱 돌렸다 하더라도 그 키가 자동차는 아니거든. 하나의 방편일 뿐이지.
지금 여기 경전을 이렇게 같이 공부하고 우리하고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셔놓고도 이 경전에 대해서 이해가 안 가시는 분들은 저하고 맨 날 차를 같이 타고 다니기는 다니는데 면허증이 없어요. 설사 면허증이 있다 해도 장롱 면허증이야. 그리고 운전하라고 제가 핸들대를 맡겨보면 십지품이 운전이 안 되는 거야. 어렵다 그러고. 반야심경 한 번 해봐라 그러면 어렵다고 그래. 어떤 글이든지 경전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이치대로 마음껏 운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잘못하면 사고도 더러 나겠지만 사고 없이 운전 실력 안 늘잖아요? 초보 때는 막 이치도 모르고 이제 남한테 가서 두드려 맞고 깨지기도 하고 막 이렇게 하면서 공부를 하나하나 챙겨 가야 되는데 위험을 감수하고 각자 자기 운전을 합시다! 예! ( 네~)
이 세상 사람들은 속되게 사는 사람들은 이치를 알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잠잠하고 말하지 않는다, 저 사람들한테 실컷 얘기해봤자 바둑도 둘 줄 모르는 할매 노보살들 모셔놓고 거기에 뭐 바둑 얘기 조 훈현이가 와서 실컷 하고 이창호 와서 하더라도 소득이 있겠습니까?
알아들을만한 사람한테 가서 하겠다, 알아듣지도 못 하는데 가서 막 거품을 물고 해봤자 그걸 갖다가 게거품이라 그러지. 영덕게 알죠? 거품 뽀끔뽀끔 이렇게 올라오는 거 영덕게. 제가 영덕 아닙니까. 출신이. 영~ 덕이 되는 스님이다, 해가지고, 왜 웃습니까?
나옹스님께서도 영덕이시고 우리 어른 스님도 무자 비자 스님께서도 영덕이시고 영덕에서 큰스님들 많아요. 저는 큰스님들이 하도 많기 때문에 법명을 아예 덕헌(더큰)스님이라고 지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서푼어치 가지고 자꾸 우리처럼 잘난 척 하는 것은 아주 좁쌀만한 겨자씨만한 횃불 하나 가지고 온 대천세계를 다 밝히는 것처럼 자기 혼자 잘 난 것처럼 생각하지만 일반 중생들도 다 그렇다는 거라.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이 십지 법문을 얘기해봤자 귀에 들어가지를 않아요. 의심이 많아가지고. 그 다음에
③ 歎德再請
爾時에 解脫月菩薩이 聞是說已하고 白金剛藏菩薩言하사대 佛子야 今此衆會가 皆悉已集하야 善淨深心하며 善潔思念하며 善修諸行하며 善集助道하며 善能親近百千億佛하며 成就無量功德善根하며 捨離癡惑하며 無有垢染하며 深心信解하며 於佛法中에 不隨他敎하나니 善哉佛子야 當承佛神力하야 而爲演說하소서 此諸菩薩이 於如是等甚深之處에 皆能證知리이다 爾時에 解脫月菩薩이 欲重宣其義하사 而說頌曰
願說最安隱한
菩薩無上行하소서
分別於諸地하면
智淨成正覺하리이다
此衆無諸垢하고
志解悉明潔하며
承事無量佛하니
能知此地義리이다
③ 회중(會衆)의 덕(德)을 찬탄하고 다시 청하다
이때 해탈월보살이 이 말을 듣고 금강장보살에게 사뢰었다.
"불자시여, 지금 회중이 모두 모였사온데, 깊은 마음이 깨끗하였고, 생각함이 잘 조촐하여졌고, 제행(諸行)(33)을 잘 닦았고, 도(道)를 돕는 법을 잘 모았고, 백 천 억 부처님께 친근하여 한량없는 공덕과 선근을 성취하였으며, 어리석은 의혹을 버리어서 때에 물들지 아니하고,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며, 불법(佛法) 가운데서는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오니, 불자시여,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연설하여 주소서. 이 보살들이 그러한 깊은 곳까지라도 능히 증득하여 아오리다." (34)
그때 해탈월보살이 다시 그 뜻을 펴려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바라건대 첫째로 편안하오신
보살의 위없는 행(行) 말씀하소서
여러 지(地)의 이치를 분별하옵고
지혜가 청정하여 정각 이루리
이 대중 여러 가지 때가 없으며
뜻과 이해가 밝고도 깨끗하오며
한량없는 부처님을 섬겼사올새
이 지(地)의 바른 이치 능히 알리라
③ 회중(會衆)의 덕(德)을 찬탄하고 다시 청하다
해탈월보살, 그러니까 여기서 금강장보살이 내가 그래서 黙然而不說묵연이불설이다, 말하지 않는다, 알아들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제 누가 속 타기 시작합니까? 해탈월보살이 이제 속이 탄다, 이제 애가 타가지고 애간장이 녹아집니다.
그러니까 이런데 대목에서 서로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면서 '빨리 법문해라' 이러면 한 번 하고 말 것이지. 부처님도 일어나서 부처님한테 법문 한 번 들으려면 右膝着地우슬착지 合掌恭敬합장공경 偏袒右肩편단우견.
옷도 딱 정비하고 부처님 딱 하고 합장도 하고 눈을 반듯이 부처님 쳐다보면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일심으로 공경하면서, '부처님요~ 한마디만 해주세요~' 이렇게 해야 부처님이 겨우 한 말씀 하십니다. 그것은 서로 간에 그러는 거는 이 법의 소중함을 서로 존숭하기 위한 그런 뜻이 있습니다.
지금도 여기 밀거니 당기거니 하잖습니까? 해탈월보살이 '말씀해주시오!' 하면 금강장보살이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건데, 어때요?
‘할려고 했더니 사람들이 다 시원찮다’ 이러면서 한 발짝 싹 빼고
' 내가 얘기해도 알아듣겠나. 안 할란다.' 싹 뺍니다.
그러니까 해탈월보살이 성질나면 뭘로 하죠? 나중에 가서 게송으로 또 한 마디 하겠죠? 이 말을 듣고 금강장보살에게 사뢰었다. 어떻습니까?
불자시여, 지금 회중이 모두 모였사온데, 우리가 법을 들을만한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그러니까 당신도 법을 설하실 분이 허물이 없는 분이지만 우리도 법을 듣기에 아무 허물이 없는 사람들이다. 생각도 조복되고, 호흡도 조복되고, 음식도 조절되는 사람들이고, 잠도 다 조복 받은 그런 사람들이다. 저기 해강 거사는 오늘 안 오셨나? 법경 거사님처럼 노래방에나 가서 요란하게 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ㅎㅎㅎ
깊은 마음이 깨끗하였고, 생각이 잘 조촐해졌고, 아주 맑아져버렸고 모든 일체 행을 바라밀행을 잘 닦고, 조도법, 도(道)를 돕는 법을 잘 수습했고, 백천억 부처님께 친근하여 한량없는 공덕과 선근을 성취했다, 우리가 보통 착한 사람들이 아니다, 부처님만 보면 껌뻑 죽는 사람들이다.
한량없는 공덕과 선근을 성취했으니 어리석은 의혹을 버리어서 때에 물들지 않고, 이 때라고 하는 게 자기 마음을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항복받지 못해서, 때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몸에 때가 아니라 꼬질꼬질한 때가 아니라, 마음의 번뇌의 때, 양심의 때, 이런 데 물들지 아니했다는 일체 중생을 잘 공경하고 일체 중생을 무시하지 않고 그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거죠.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며, 불법(佛法) 가운데서는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며,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불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믿음에 완전히 금강석처럼 굳어졌다, 이런 말이죠.
그러니까 금강장보살 당신이 좀 설해보라. 불자시여,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연설하여 주소서. 이 보살이 그러한 깊은 곳까지라도 능히 증득하여 아는 것입니다.
당신 하실 일이 뭐라고? 법이나 좀 설법하시오.~ 그때 해탈월보살이 다시 그 뜻을 펴려고 뭐를 했습니까? 찬송을 했다 이거야. 게송으로 찬탄했다, 게송으로 찬탄하는 것은 노래하는 것은 마음에 아주 간절할 때 그때 나온다는 소리겠죠.
바라건대 첫째로 편안하오신 보살의 위없는 행(行) 말씀하십시오. 여러 지(地)의 이치를 분별하고, 여러 地지, 諸地제지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십지의 열 단계죠?
첫째, 자~ 이제 고개를 드시고 이리로 한 번 봅시다! 첫째는 뭡니까?
환희지(歡喜地) 이구지(離垢地) 발광지(發光地) 염혜지(焰慧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地) 원행지(遠行地), 부동지(不動地), 선혜지(善慧地), 법운지(法雲地) , 법경 거사님 한 번 해보세요!
자~ 다 같이 해 봅시다! 시간만 가는 게 아닙니다. 지금 몇 년을 해도 못 외우는 것은 牛耳讀經 우이독경이라고, 소 귀에 경 읽기가 아니고 소 두 마리가 경 읽는다, 이게 牛二讀經 우이독경이다.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더 빨리 합니다!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자!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환희지 이구지 하세요! 빨리!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한 번 더 하겠습니다!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자! 하루만 하면 단 몇 분만 하면 충분히 외울 수 있는 거 신심이 없어가지고 신심이 있나 없나는 여기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낱말 하나하나 만들 때 부처님으로부터 이 번역하시는 분들이나 역대전등 제대조사가 이걸 어떻게 중생들에게 이 말 뜻을 잘 전달할까 싶어서 해놓은 건데 잘 차려준 밥상을 안 받는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 십지품을 보면서 느끼는 소감이 오늘 이렇습니다. 이것은 밭에서 곡식을 캐서 감자 같은 것 캤다든지, 옥수수를 땄다든지, 벼를 이렇게 거두었다든지, 콩을 했다든지, 다 타작해가지고 흙 다 빼내고 껍데기 다 빼내고 먼지 다 털고 미 다 골라내고, 어때요? 아주 요리를 잘 해서 냄비에 딱 해서 나중에 밥솥에 앉혀서 '너 잘 먹어라!' 할 정도로 군더더기는 하나도 없는 법문이라는 거예요.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이것이 그렇게 깨끗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느낌들을 가져야 돼. 간도 너무나 잘 맞다. 짜거나 싱겁지도 안 하고 그냥 먹으면 되는데 그걸 안 한다.
화니화니화니... 화니지 화니지 나중에는 잘못돼가지고 아니지. ㅎㅎㅎ 왜 발광할까? ㅎㅎㅎ 염혜지 가가지고 그 사람 염가인가? 염 혜지. 그래서 되는 게 아니고 낱낱이 꼭~꼭 씹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지의 이치를 분별하옵고, 제대로 이제 왜 환희지라 했느냐. 왜 때가 묻지 않는 이구지라 했느냐. 왜 빛을 발하는 발광지라 했느냐. 그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염혜지라 했느냐. 지혜의 불꽃처럼.
왜 다른 소견으로써는 이길 수 없는 난승지라고 했느냐. 외도 소견으로써는 이길 수 없다, 현전지라 하는 것은 눈앞에서 반야바라밀 확실히 인연법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눈앞에 현전한다. 그 모든 것에 미혹하지 않는 현전지라 했느냐. 왜 원행지라 했느냐. 멀리 벗어났다고 하느냐. 거기서부터는 왜 오매일여가 되느냐.
그 원행지를 넘어가고 나면 왜 무생법인에 들어가느냐. 낱낱이 무생법인에 들어가니까 불생불멸이니까 거기서부터는 부동지다. 그러니까 너무나 조목조목에 대해서 이치에 너무 밝게 잘 아니까, 잘 알 선자, 선혜지다. 구름같이 법운이 확~ 마지막 십지를 왜 법운지라 했느냐. 법의 구름이라 했느냐. 법의 구름을 드리워서 목마른 중생, 목마른 그 온갖 산천초목들, 동식물들까지 온 논바닥까지 강물들까지 다 적셔주고 키워주고 하기 위해서는 뭐가 내려야 됩니까? 법의 구름이 덮여서 비를 내려야 돼.
지금 이맘 때쯤이면 저 먼 하늘에는 우레가 한 번 우르릉 운다고 그러지요. 우레가. 그러나 저는 들리지만 여러분들은 들리지 않아. 그런데 그 우레가 자라고자라고 와서 이 매화꽃 필 무렵쯤 되면 꽁꽁 얼었던 저 먼 하늘에서 우릉! 하고 이제 우레가 울었습니다.
그것이 눈덩이 불어나듯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점점점점 우레가 커지고 자라고 하면서 구름 한 점이 되었다가, 뭉게구름이 되었다가, 먹구름이 되었다가, 여름 장마철에 매실이 익어갈 무렵 되면 비가 쏟아져서 내려서 오곡백과를 다 풍성하게 적시며 익게 합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이 십지 법문 4 번째 할 정도로 이정도 되면 먼 하늘에서 우리의 가슴을 한 번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싹 점멸할 수 있는 우레가 우리에게도 한 번 울렸다. 그리고 이것은 그 우레는 자라고 자라서 종래는 법운이 돼서 큰~ 온 삼천대천세계를 덮는 비구름이 돼서 오곡백과를 잘 자라게 하듯이 만 중생을 이득되게 하고자 하는 내 지혜와 자비가 오늘도 자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언제? 이 매화 피는 시절에.
이 점검은 앞으로 스무날 뒤에, 3월 보름날이 제가 생일날인데 중 된 날, 관음재일 날은 이 세상에 육신이 태어난 날이고, 중이 태어난 날은 3 월 보름날이 해인사에서 수계를 한 날입니다.
3 월 보름날 되면 너무나 아름다운 시, 그년이 썼던 시, 이 조년이 썼던 시, 뭐죠?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배꽃에 달빛 쏟아지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제, 은하수 지나가는 저 보름달이
삼경에 그냥 月倒天心월도천심하거든. 보름달이 하늘 중심에 지나거든요. 잠 못 들었다는 거지. 그냥. 밤새도록.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제,
이러면 그 꽃이 아름답고 달빛이 아름다워서 잠 못 들었다는 거야.
꽃은 이 중생이요, 달빛은 부처님 같은 마음이다,
그렇게 십지 법문이라든지 이런 걸 보면서 서로 교감이 있어야 돼요.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제,
술이나 한 잔 할까. 이거 안된다. ㅎㅎ 술 한 잔 하면 뭐 좀 술술 풀릴까.
그것도 좋기는 하지만.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제,
이 참 꽃처럼 향기롭게 맑게 사는 내 가는 이 바라밀의 길에
부처님의 달빛 그림자, 달빛이 환하게도 쏟아지는구나.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규야 알랴만은
多情다정도 病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 봄이 오기는 왔는데 왜 아직도 저는 추운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분명코 봄이로구나. 그런데 왜 이래 춥냐 이거야. 분명히 이치는 밝아진 것 같은데 왜 내 아주 事非頓除사비돈제라, 하는 일마다 장애가 이렇게 많으냐. 내 업장 탓이로다. 절을 해야 되겠다. 기도를 해야 되겠다. 걸음걸음마다 어쩌든지 밀고 들어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요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 지난 시간에 이번 시간에 좀 뭐 하지만 꿈속까지도 실제 상황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꿈도 헛꿈 꾸지 마십시오. 아무 꿈이나 꾸지 마십시오. 그것도 실제 상황입니다. 없는 와중에서 그 사람 꿈만 들어보면 무슨 짓 하는지 다 압니다.
그러니까 꿈도 이제는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함부로 꿔서는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엊그제 일기에 문득 써놓은 거죠. 꿈도 정말 헛것인 줄 알았더니, 헛것 가운데 그 헛것이 사람 잡기 때문에 조금 조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갑자기 작두 날 위에 서 있는 듯 눈앞에 송곳이 마주 닿인 듯 섬칫하게 느낄 때가 있죠. 여하튼 지금 만만하게 들어서 될 문제는 아니고 이거 조금 심각한 그런 문제들입니다.
전부 다 조금 지루하니까 조금 편하게 가겠습니다. 여러분들 왜 남을 조금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이런 마음들을 은연중에 이제 늘 많이 가지게 됩니다. 그때마다 이제 툭툭툭 털어버리고 생각을 접기를 많이 가져야 되는데 저~기 어디죠? LG 마트 요새 이름 바뀌었나요?
LG 마트 옆에서 누가 티코를 타고 왔습니다. 미소 거사인가 누군가 티코를 타고 쫙 갑니다. 그 옆에 청암 거사인가 누가 그랜져를 타고 제네시슨가 그랜져를 타고 티코 옆에 따라 붙었습니다. “야! 성준아 니 그거 얼마 줬노? ” 옆에서 싱긋이 웃고 대답을 안 합니다.
그러다가 여기 구서동 여기 문화회관 앞에까지 와서 “야 티코 차 예쁘네. 니 얼마 줬노?” 싱긋이 웃고 또 대답 안 하고 가버립니다. 구서 인터체인지로 갑니다. 인터체인지까지 따라 붙어 “내 지금 바쁘다 말이다. 얼마 줬노?” 대답도 안 하고 또 쌩 하고 갔습니다.
통도사 산문에서 잡았습니다. “야! 니 그거 얼마 줬노?” “벤츠 사니까 끼워주더라” ㅎㅎㅎ 그랜져 탄다고 조금 이제 남한테 뻐기다가 티코 타는 사람한테 그랜져가 자빠지는 꼴이 있습니다.
전부 다 이제 웃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썰렁 개그가 됐는데 ㅎㅎㅎ 그 티코를 몰고 통도사 비로암으로 올라가다가 티코가 갑자기 섰습니다. 왜 섰겠습니까? 거미줄에 걸렸습니다. ㅎㅎㅎ 자~ 이 정도만 하고, 웃으신 분들은 다 티코 무시하신 분들이요.ㅎㅎㅎ 특이하시네요. ㅎㅎㅎ
자~ 조금만 더 나갑시다.
지혜가 청정하여 정각을 이룰 것이다, 지혜가 청정한다는 말은 금가루가 눈에 들어가도 눈병이 되고, 흙가루가 들어가도 눈병이 되고, 먼지가루가 들어가든지 돌가루가 들어가도 눈병이 된다, 어떤 것도 마음에 두지 말아라, 이런 말이죠.
이 대중 여러 가지 때가 없으며, 번뇌라고는 하나도 없고 뜻과 이해가 의지도 굳고 그러면 불교를 이해하는 폭도 굉장히 밝고 깨끗하오며 한량없는 부처님을 섬겼다,
보통 마음으로는 십지 법문에 들어가지 않고 일체중생을 한량없는 부처님을 한 부처님도 아니고 두 부처님도 아니고 一佛二佛三四五佛 而種善根일불이불삼사오불 이종선근 已於千萬佛所이어천만불소 種諸善根종제선근, 千萬佛所천만불소에서 種諸善根종제선근해야만이 八萬四千那由他諸佛팔만사천나유타제불을 承事供養승사공양해야만이, 감히 십지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처님을 공양했기에 여기에 앉아 있느냐.
야!~ 진짜 우리 복 많은 사람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양을 올리기는 올렸는가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조금 위로가 되지요. 사실은 그렇지요. 이런 법문이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만만찮은 세월과 여러 가지 역경을 거치면서 왔습니다.
그냥 일반 평상심은 보통 마음으로는 들리지 않고 한량없는 누구를? 부처님을 섬겼사올새, 그러면 줄 쭉 그어야 되겠죠? 한량없는 부처님을 섬겼다, 한량없는 중생을 섬겨야 되는데 한량없는 부처님은 커녕 중생도 한 번도 섬겨본 적도 없고 늘 무시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지의 바른 이치 능히 알리라. 證智所知 非餘境증지소지 비여경이라. 부처님을 섬기는 사람이 누군들 못 섬기겠냐고요.
④ 不說의 第二理由
爾時에 金剛藏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雖此衆集이 善淨思念하며 捨離愚癡 와 及以疑惑하고 於甚深法에 不隨他敎나 然有其餘劣解衆生이 聞此甚深難思議事하면 多生疑惑하야 於長夜中에 受諸衰惱하리니 我愍此等일새 是故黙然이로라 爾時에 金剛藏菩薩이 欲重宣其義하사 而說頌曰
④ 감당할 수 없는 이를 염려하여 설하지 아니하다
그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비록 이 대중들은 생각이 깨끗하고 어리석음과 의혹을 여의어서 매우 깊은 법에 들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밖에 이해가 부족한 중생들이 매우 깊고 부사의한 일을 들으면 흔히 의혹을 내어 긴긴밤에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을 것이오. 그런 이를 딱하게 생각하여 잠자코 있느니라."(35)
그때 금강장보살이 이 뜻을 다시 펴려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④ 감당할 수 없는 이를 염려하여 설하지 아니하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그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비록 이 대중들은 생각이 깨끗하고 어리석음과 의혹을 여의어서 매우 깊은 법을 듣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밖에 이해가 부족한 중생들이 매우 깊고 부사의한 일을 들으면, 매우 깊고 불가사의한 말을 들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쉽게 흔히 의심을 딱 내어서 긴긴밤에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캄캄해서 어두운 밤이라고 하는 것은 눈을 꼭 감고 있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이 어두운 밤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번뇌의 근본을 밝음이 없다 해서 무명 번뇌라 합니다.
그러면 근본 번뇌에 들어가서 탐진치가 돋아서 의심이 돋고 여러 가지 온갖 잡번뇌들이 들끓어서 공부는 되지 않는다, 긴긴밤 이런 거 나오니까 독수공방 했나, 이렇게 해석하면 안된다, 캄캄한 무명번뇌에 들어갔다 이런 말씀이죠.
그래서 긴긴밤에 여러 가지 괴로움 받을 것이오 그런 사람을 딱하게 생각하여 잠자코 있노라. " 차라리 말 안 하는 게 득이다.
아주 그거 제가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들 제가 굉장히 겁냅니다. 제가 수암선원이라고 하는 수암란야라고 하는 아주 자그마한 절이 하나 있습니다. 토굴. 거기에 어느 날 이제 조금 벽을 바르고 시멘트 공사를 좀 한 적 있습니다. 콘크리트를 좀 시멘트를 비비고 놔두는 거 "이거 좀 다른 데 잘 치워라. 내가 바빠서 큰 절에 올라가야 된다." 이렇게 일임해 놨습니다.
뭐 장독대 밑에 바르든지, 뭐 수곽에 뭐를 정리를 하든지, 시멘트를 발라야 되는데 그 시멘트를 정말 잘 모셔놓은 거예요. 머리 좋은 사람이. 고무 대야에 시멘트를 담아서, 이튿날 올라가 보니까 고무대야도 못 쓰고 시멘트도 못 쓰고 ㅎㅎㅎ 너무너무 잘 모셔놓은, 제가 그 뒤로부터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 상당히 조심합니다.
얼마나 무명번뇌에 찌달렸는지,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나날이 살아가는 게 그리 살지는 않는지 여기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염려해서 법을 설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감당할 수 없는 사람한테 제가 그걸 맡겨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ㅎㅎㅎ
그런데 그걸 맡긴 제가 잘못이다, 금강장보살은 이제 아는 거야. 그냥 말했다, 잘 간수해라, 이러니까 십지 법문을 어떻게 써먹지는 못하고 고무 대야에 시멘트 모셔놓듯이 둘 다 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건 이런 겁니다.
비유하자면 지푸라기도 이제 불을 붙이면 짚불 있죠? 짚불. 기장 가면 짚불구이라고 있어요. 짚불. 곰장어까지 가면 안되고. ㅎㅎㅎ 짚불 이래가지고 후~ 붙이면 숯도 하나도 남지 않고 히저거리해가지고 쓰러져버리는 짚불.
그 사람들은 이제 하근기 중에 하근기고, 이 우리가 지금 십지 법문 정도 볼 수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면 숯불처럼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숯은 백탄을 만들든지 흑탄을 만들든지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바짝 가마 안에 넣고 밀폐시켜 버려야 됩니다. 그죠?
껐다가, 그런데 그 숯을 끄집어내서 다시 쓸 때는 제가 도반 다비식 하면서 그 앞에서 한 번 느낀 게 있습니다. 가~만히 작년에 통도사에서 쳐다보니까 재작년인가 늦가을에 춥기는 추운데, 도반은 다비장 안에서 타고 있고 도반 둘은 지켜보고 있는데, 한날 한시에 중 됐다가 스무 명이 같은 날 중 돼가지고 7 명이 죽고 이제 13명이 살아 남았으니까 많이 죽었죠?
가만~히 쳐다보니까 이 살점들은 이 고기들은 타오르는 불꽃에 녹아지고 그 뼈는 숯불에 이글거리는 숯불에 뼈가 이제 녹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생각해볼 때는 그렇습니다. 대장간에서 숯불이라든지 불을 이렇게 지필 때 이글거리는 거, 쇠도 달굴 수 있고 뼈도 녹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근기가 돼야 십지품을 감당할 수 있지 않겠느냐.
어설프게 뭐 짚불처럼 돼서 히비적~해가지고 꺼지는 거 그런 것은 우리가 하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문득 지금 비유도 맞지 않으면서 한 번 짚고 넘어갑니다. 뭐처럼 되자고요? 숯불처럼 됩시다! 숯은 애초에 만들어질 때 다시 탈 수 있도록 완벽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다시 숯을 타다가 묻어놨다가 다시 끄집어내서 숯 태워도 어때요? 또 붙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수행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 그런 것들도 상당히 마음속에 새겨 놓을만 하죠. 그런 것을 우리는 원력이라고 이렇게 얘기하죠. 세세생생 어쩌고저쩌고 하는 거 그렇게 얘기하죠.
숯처럼 살자! 뭐처럼 사그러들지말고, 짚불 곰장어처럼, 아! 참 죄송합니다! ㅎㅎㅎ 어쩌든지 살아가면서 인생의 그런 한 방울도 흘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각 주
(26)
此初偈中。欲令大眾悅是總正詶答相。詶答有二種。一堪詶答。二不怯弱詶答。偈言大智故。無所畏故。離不堪答。離不正答。此二示現自他無過故。何者是正答相。此法難說復難聞故。云何難說。
(27)
難者難得故。難有二種。一最難。二未曾有難。偈言。第一故希有故。此二示現所說難。何者是難。偈言菩薩所行示地事分別上。菩薩行者。是出世間智。示者。顯示故。地事者。謂諸地菩薩行事。分別上者。說勝故。何者菩薩行。偈言。諸佛之根本。佛者覺佛智故。已說難說復說所以難。何者是難。彼菩薩行事義住不可如是說。
(28)
云何彼義住。此偈中。難得者是總。餘者是別。難得者難證故。是難得有四種。一微難得。二難見難得。三離念難得。四非心地難得。微難得者。非聞慧境界故。麤事不須思惟。難見難得者。非思慧境界故。離念難得者。非世間修慧境界故。示現三界心心數法分別。世間修道智非境界故。非心地難得者。示現報生善得修道智非境界故。此示現心境界者是心地此誰境界。偈言智境界。何者是智見實義故。何故非餘境界。無漏故。無漏者。出世間義。是義非世間智境界。如是甚深義。如是可解。如是不可說。若聞則迷悶者。云何迷悶。隨聞取著故。聞者即聞非是不聞。已辯難說。
(29)
제법무아(諸法無我) : 謂一切有爲 無爲法中, 竝無「我」之實體. 卽一切法皆依因緣而生, 相互依存, 無實體性. 有爲法雖有作用, 然不常住;無爲法雖常住, 然無作用. 又諸法無我爲三法印之一, 稱爲諸法無我印, 略稱無我印. 所謂三法印乃佛法之重要敎義, 判斷佛法之是否究竟卽以此三者來印證之.
※(一)人無我, 了知人身乃五蘊假和合, 實無自主自在之我體. 是爲小乘之觀道, 以斷煩惱障而得涅槃. (二)法無我, 了知諸法因緣所生, 實無自性實體. 乃大乘菩薩之觀道, 以斷所知障而得菩薩.[勝天王般若經卷三 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卷二 大智度論卷二十二]
(30)
復顯難聞。如金剛者。堅如金剛。堅有二種。一決定信堅。二證得堅。此三句示現堅者是總。餘者是別。云何深信佛智慧。唯佛所知。非我境界。佛菩提無邊。佛化眾生所說法門種種信故。何者是心地。云何無我智。心地者。隨心所受三界中報。又隨心所行一切境界亦名心地。無我智者有二種。我空法空。如實知故。能聞智微細者。難知。如是微細如前所說。
(31)
復以譬喻顯微細義。此偈示現如空中畫色如壁。是中不住故不可見。如空中風如樹葉。是中不住故不可見。此動作者。非不空中有是二事。如是虛空處事不可說處。是畫風如說。以非自性不可得見。是不住故。以其客故。非不於中有此言說。如是佛智言說顯示地校量勝分別難見。畫者。喻名字句身。何以故。依相說故。風者以喻音聲。說者以此二事說。聽者以此二事聞。若如是可說。如是可聞。如是難見。
(32)
何故不說。難知者難證故。難信者難生決定心故。此偈示現有證有信可說可聞。世間難得證信故。我不說。
(33)
제행(諸行) : <一>指一切有爲法. 所謂行(梵 saskāra, 巴 sakhāra), 卽表示由因緣和合而造作者. 根本佛敎中, 諸行與「一切」「諸法」同義. 然於部派佛敎, 則認爲諸行僅指有爲法, 而「一切」「諸法」不僅指有爲法, 亦包含無爲法. 依存因緣形成之有爲法, 竝非永久不變, 而爲時常變化流動者(卽無常), 故謂諸行無常. 北本涅槃經卷十四所揭之無常偈, 卽以「諸行無常」爲句首. 諸行無常係三法印之一, 爲佛敎之根本思想. [俱舍論卷二十二 中論觀行品 法華玄義卷十] <二>指爲達到菩提而於身 口 意所作之善行爲. 又作萬行. 行(梵 caryā, 巴 cariyā)乃動作 行爲之意. 在淨土敎, 將念佛以外之善行稱爲諸行, 亦稱定散諸行 餘行. 而以諸行得往生極樂者, 稱爲諸行往生. 日本淨土宗派中, 又有主張阿彌陀佛本願之眞意卽在諸行往生之說, 稱爲諸行本願義;僅依諸行, 則無法往生之說, 卽稱諸行不生義. [釋淨土群疑論卷四 安樂集卷下]
※제행무상(諸行無常) 梵語 anityā sarva-saskārā. 謂世間一切現象與萬物經常轉變不息. 此係佛法之根本大綱. 與諸法無我 涅槃寂靜, 同爲三法印之一, 稱爲諸行無常印, 或一切行無常印 一切有爲法無常印. 所謂三法印, 卽得藉以判斷佛法的是否究竟之三種法門. 涅槃經卷下之無常偈(大一 二○四下):「諸行無常, 是生滅法;生滅滅已, 寂滅爲樂.」
(34)
是聖者金剛藏領彼解脫月菩薩所歎眾清淨功德已。於所說法中不見法器聞增疑惑。是故不說。於一法中有二種過。疑者正行相違猶豫義故。惑者心迷義故。能壞善法遠離善法故。如是顯示不受行因受行退因。
(35)
是聖者金剛藏領彼解脫月菩薩所歎眾清淨功德已。於所說法中不見法器聞增疑惑。是故不說。於一法中有二種過。疑者正行相違猶豫義故。惑者心迷義故。能壞善法遠離善法故。如是顯示不受行因受行退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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