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발심수행

눈앞을 저버리지 말라

娘生寶藏 2011. 9. 18. 11:08

독선(讀禪) - 신심명 읽기 8.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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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을 저버리지 말라

 

세속의 공부란 이름과 뜻과 모양을 따라 이루어진다. 부처라는 이름을 들으면,

궁극적 진리를 깨달은 위대한 성자(聖者)로서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고 32상

(相)과 불가사의한 육신통(六神通)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들 범부(凡夫)는

두꺼운 업장(業障)에 가로막히고 번뇌에 구속된 불쌍한 존재로서,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공부하고 수행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번뇌에서 해탈하여야

한다고 여긴다.

 이렇게 이해하는 이들은 모두 안목이 없는 세속인들로서 이들에게는, 중생은

영원히 부처되기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가련한 중생이고, 부처는 영원히 저

멀리 있는 신비한 부처일 뿐이다. 참으로 출세속의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부처를 따르지도 말고 중생을 버리지도 말아야 하며, 부처를 버리지도

말고 중생에 머물러 있지도 말아야 한다.

그럼 어떤가? 바로 지금 이 순간 눈앞을 저버리지 말라.


歸根得旨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근본이 어디인가? 지금 ‘근본이 어디인가?’ 하는 이것이 바로 근본이다.

‘근본’이라고 말할 때 ‘근본’이라는 말에 속지 않으면 ‘근본’이라는 말이 바로

근본이고 그 밖에 따로 근본은 없다. 그러므로 근본은 달리 돌아갈 곳이 없다.

그런데 왜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하는가? 늘 한결같이 끊어짐 없이 근본에

있으면서도, ‘근본’이라는 말을 따라 떠나가고 ‘근본’이라는 의미를 따라

떠나가고 ‘근본’이라는 소리를 따라 떠나가고 ‘근본’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따라 떠나가기 때문에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떠남 없이 떠나가니 떠나도 떠남이 없으며, 돌아감 없이 돌아가니 돌아가도

돌아감이 없다. 그러므로 근본에서는 따로 얻을 뜻이 없다. 따로 얻을 뜻이

없는 이것이 바로 근본으로 돌아가서 얻는 뜻이다.

 

隨照失宗 비춤을 따라가면 근본을 잃는다.

 

눈을 가지고 볼 때에는 색과 모양을 따라가고, 귀를 가지고 들을 때에는 소리를

따라가고, 코를 가지고 냄새 맡을 때에는 냄새를 따라가고, 혀를 가지고 맛볼

때에는 맛을 따라가고, 몸을 가지고 감촉할 때에는 촉감을 따라가고, 의식을

가지고 생각할 때에는 생각을 따라가고, 욕망할 때에는 욕망을 따라가고,

헤아릴 때에는 관념을 따라가고, 도(道)를 닦을 때에는 도를 따라가고,

염불(念佛)할 때에는 부처를 따라가고, 참선(參禪)할 때에는 선(禪)을 따라가고,

도리(道理)를 따라가고, 삼매(三昧)를 따라가고, 신통(神通)을 따라가고,

수행(修行)을 따라가고, 깨달음을 따라가고, 범부(凡夫)를 따라가고,

성자(聖者)를 따라가고, 윤회를 따라가고, 해탈을 따라가고, 중도(中道)를

따라가고, 연기(緣起)를 따라가고, 공(空)을 따라가고, 과거를 따라가고,

 미래를 따라가고, 현재를 따라가고, 여기를 따라가고, 저기를 따라가고,

경전(經典)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근본은 잊어버린다. 근본을 잃는 것이 아니다.

근본에 발 딛고 있으면서도 이름과 모습을 따라가느라 근본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須臾返照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추면,

 

앞에 놓인 난초화분을 보는 순간에 머물고, 손으로 연필을 잡는 순간에 머물고,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머물고, 향 타는 냄새를 맡는 순간에 머물고,

 커피를 맛보는 순간에 머물고, 음악에 빠져서 감동에 젖는 순간에 머물고,

생각하는 순간에 머물고, 밥을 입 속에 넣어 씹고 있는 순간에 머물고,

손가락을 퉁기는 순간에 머물고, 팔을 구부리고 펴는 순간에 머물고,

발을 올리는 순간에 머물고, 발을 내딛는 순간에 머물고, 순간에 머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머물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여기에 머물러라.

이렇게 머무는 것이 한결같이 머무는 것이요, 진실로 머무는 것이요,

머뭄 없이 머무는 것이요,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추는 것이다.

 

이렇게 머물면 난초화분이 따로 없고, 연필이 따로 없고, 매미 우는 소리가

따로 없고, 향 타는 냄새가 따로 없고, 커피의 맛이 따로 없고, 음악의 감동이

따로 없고, 생각이 따로 없고, 입 속의 밥이 따로 없고, 손가락이 따로 없고,

팔이 따로 없고, 발이 따로 없고, 순간이 따로 없다.

 

勝脚前空 눈앞의 공을 감당할 수 있다.

 

눈앞에는 오직 공(空)이 있다. 공(空)은 텅 비었다. 텅 비었으니 보이지 않는다.

텅 비었으니 잡히지 않는다. 텅 비었으니 밟히지 않는다. 텅 비었으니 막힘이

없다. 막힘이 없으니 부담스럽지 않다. 막힘이 없으니 자유롭게 움직인다.

막힘이 없으니 걸림 없이 활용한다. 걸림 없이 활용하니 불만족이 없다.

걸림 없이 활용하니 모자람이 없다. 걸림 없이 활용하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공(空)이다. 걸림 없이 활용하니 손에 잡히는 것마다 공이다. 걸림 없이

활용하니 발에 밟히는 것마다 공이다. 걸림 없이 활용하니 부딪히는 것마다

공이다. 순간 순간이 공이고, 생각되는 것마다 공이고, 느껴지는 것마다 공이고,

들리는 소리 소리가 공이고, 보이는 색깔 색깔이 공이고, 앞도 공이고,

뒤도 공이고, 옆도 공이고, 아래도 공이고, 위도 공이다.

오직 공의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