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설 145 /3, 제자품 42 /4, 수보리와 취식(取食) 8
若須菩提여 不見佛하고 不聞法하며 彼外道六師인 富蘭那迦葉과 末伽梨拘賖梨子와 刪奢夜毘羅胝子와 阿耆多翅舍欽婆羅와 迦羅鳩駄迦旃延과 尼犍陀若提子等이 是汝之師어든 因其出家하여 彼師所墮에 汝亦隨墮라사 乃可取食이니다
수보리여, 부처님을 보지 말고 법을 듣지도 말며 저 외도들의 육사인 부란나가섭과 말가리구사이자와 산자야비나지자와 아기다시사흠파나와 가나구태가전연과 니건타야제자 등이 그대의 스승이니 그들로 인하여 출가하여 그들 스승이 떨어진 곳에 그대도 또한 떨어져야 이에 가히 음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강설 ; 외도들이 떨어진 곳에 그대도 따라서 떨어지라[彼師所墮 汝亦隨墮]라는 말은 유마경의 명구다. 일반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외도나 사도를 배척한다. 그래서 혹 다른 소견을 가진 자를 마군이라고까지 비난한다. 그러나 대승적 가르침을 표방하는 유마거사의 주장은 “굳이 부처님에게도 집착할 것이 아니며 부처님의 법에도 집착할 것이 아니다. 외도육사(外道六師)라고 해서 스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들에게 귀의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들으라. 실로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목건련과 사리불과 같은 이들도 한 때 그들에게 귀의하여 공부하지 않았는가. 일찍이 그들에게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이 훌륭한 제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님의 법에도 치우치지 말 것이며 외도육사에도 치우치지 말라.”라는 것이다. 그래야 신도가 베푸는 음식을 얻어먹을 자격이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외도육사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소개한다.
외도육사, 또는 육사외도라고 하는데 BC 5-3 세기 인도 우파니샤드 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사상이 62견(見) 또는 360여 종의 이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세력이 컸던 부란나가섭, 말가리구사이자, 산자야비나지자, 아기다시사흠파나, 가나구태가전연, 니건타야제자 등이다. 이들은 힌두교의 기본 경전인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배치되는 점이 많았고, 불교에 수용되어 외도(外道)라는 말이 붙여졌다. 하나하나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 Purana Kassapa]은 인과응보를 부정하고 윤리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여 도덕이 필요없다고 주장하였다.
2, 말가리구사이자[末伽梨拘賖梨子, Makkhali Gosala]는 숙명론을 내세웠다. 흔히 사명외도(邪命外道)라 불리는 이 파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운명이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하여 인간의 삶에는 인연이 작용하지 않고 모든 자연현상에는 고유의 생명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3, 산자야비라지자[刪闍耶毘羅胝子, Sanjaya Belattiputta]는 회의론을 주장하여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을 폈다. 진리에 대한 인식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여 기분파라고도 불렸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목건련과 사리불이 부처님께 귀의하기 전에 이 파에 속했으나 윤리적 또는 실천적 태도를 표명하지 않아 외도로 일컬어졌다.
4, 아기다시사흠파나[阿耆多翅舍欽婆羅, Ajita Kesakambalin]는 유물론의 입장을 취하였다. 도덕을 부정하고 현실의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주장하여, 순세파(順世派) 또는 사탕발림파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파에서 내세우는 우주의 구성원소인 흙 · 물 · 불 · 바람의 사대(四大)는 인도의 모든 사상체계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5, 가라구타가전연[迦羅鳩馱迦旃延, Pakudha Kaccayana]은 불멸론(不滅論)을 폈다. 인간의 생명이나 특질은 영원하다는 점에서 유물론과 반대이나 선악의 인과를 부정하는 면에서 도덕부정론에 가깝다. 생명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불생불멸을 주장하여 죽이는 자도 없고 죽는 자도 없으며, 가르치는 자도 없고 가르침을 받는 자도 없다고 하였다.
6, 니건타야제자[尼犍陀若提子, Nigantha Nataputta]는 자이나교를 창시하였다.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고, 인내를 강조하는 극단적인 고행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강조하였다. 특히 불살생(不殺生)을 강조하여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는 농업보다 상업에 종사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이들 육사(六師)는 한결같이 베다의 권위를 부인하고 브라만교에 반항하였다. 그들은 신흥도시의 왕후 · 귀족 · 부호들의 정치적 · 경제적 원조 밑에 활약하였다. 이들 각 유파의 형성은 그 기원과 성립연대가 다른데, BC 5세기에서 BC 3세기 사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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