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강설무비큰스님·대새선사의 행장

[스크랩] 유통판 언충(劉通判 彦冲)에게 보낸 답장 1-6

娘生寶藏 2013. 8. 5. 20:48

유통판 언충(通判 彦冲)에게 보낸 답장 1-6

 

杜撰長老輩 敎左右 靜坐하야 等作佛하나니 豈非虛妄之本乎 又言靜處 無失하고 鬧處 有失이라하니 豈非壞世間相하고 而求實相乎 若如此修行인댄 如何契得懶融 所謂今說無心處 不與有心殊리요 請公 於此 諦當思量看하라 婆修 初亦將謂호대 長坐不臥하면 可以成佛이라하더니 纔被闍夜多 點破코사 便於言下 知歸하야 發無漏智하니 眞是良馬 見鞭影而行也니라

 

다른 사람의 주장은 막아버리고 자기주장만 찬탄하는 장로[杜撰長老]들이 그대에게 조용히 앉아 있으면서 부처가 되기를 기다리게 하는데 그것이 어찌 허망의 근본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말하기를, “고요한 곳에서는 잃어버림이 없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잃어버림이 있다.”라고 하니 그것이 어찌 세간의 모습을 부정하고 실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어떻게 라융(懶融) 선사가 말씀하신 지금 말하는 무심이 유심과 다르지 않다.”함에 계합하겠습니까? 부탁하노니, 그대는 여기에서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여보라. 바수반두도 처음에는 또한 이르기를,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면 성불할 수 있다.”라고 여겼는데 사야다 존자에게 깨어지고 나서 곧 언하에 돌아갈 줄을 알고 무루 지혜를 발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말이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강설 : 조용히 앉아 있으면서 부처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나무나 돌로 조각한 부처의 길이다. 또한 조용한 곳에서는 잃어버림이 없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잃어버림이 있는 것은 곧 물결을 떠나서 물을 찾는 일이며, 금으로 된 불상을 떠나서 금을 찾는 일이다. 유심(有心)이 곧 무심(無心)이며, 무심이 곧 유심인데 유심과 무심을 나누어 놓고 본다면 불법과는 거리가 멀다. 앞에서 말한 바수반두와 사야다의 예화를 깊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할 일이다. 바수반두는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라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천리를 달리는 훌륭한 명마와 같았다. 참선공부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 일을 하는 것이며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는 길이다. 가장 우수한 일로 가장 뛰어난 사람의 길을 가려면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하여야 할 것인가를 또한 깊이 사유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無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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