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백무비스님강의·무불스님엮음금

[스크랩] 지혜로운 보시

娘生寶藏 2011. 6. 5. 17:42

지혜로운 보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가..?

또한 지혜로운 삶은 어떤 소득이 있고,

그 반대로 어리석은 삶은 어떤 손해가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러한 가르침을 이 단락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불교는 자비의  실천을 중요시 한다.

자비의 실천 이전에 필요한 것이, 스스로의 안목이 있어야 자비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지혜로운 안목을 갖추고 나서 자비를 베푸는 것이

바람직한자비행(慈悲行)된다.

그렇게 보는 것이다.

만약에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자비를 베푼다고 했을때,

과연 그 자비가 온전한자비이겠는가.,?

베푸는 사람 그 나름대로 한껏 마음을 내서 자비행을 하노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이 결과적으로 전혀 자비행이 될 수가 없는 ;;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지혜를 강조한다.

그래서 지혜(智慧)의 종교다.

자비와 지혜의 종교라 하지 않고,지혜와 자비(慈悲)의 종교라 한다.

지혜롭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은 세상에 빛이 없고 캄캄한 것에 비유하고,

지혜로운 삶은 광명천지(光明天地)에 눈이 아주 밟고 태양의 광명도 밝게

 비추는 것에 비유한다.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삶을,캄캄한 곳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런 경우와 같다고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과 빛이 관계,또 어리석음과 지혜로운 관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가 불교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므로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심주어법(心住於法)하야 이행보시(而行布施)하면

여인(如人)이 입암(入暗) 즉무소견(卽無所見)이요.....어리석은 마음으로

자비행을 하고 보시행을 했을 때 그 사람은 마치 캄캄한 곳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과 같고, 만약에 지혜로운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고

자비행을 했을때그 사람의 눈도 밝고 태양 빛도 밝게 비추어 갖가지

 사물들을 ;;환히 보는 것과같다.

여기서 보시라는 말을 인간이 행하는 모든 삶의 행위라고 의미를

바꾸어도 좋다.아주 단순한 말 같지만 이 속에는 무궁무진한 뜻이 담겨 있다.

이 빛과 어둠의 관계에서 빛의 삶은 어떤 것이고 어둠의 삶은 어떤 것인가..?

 

만약 어둠의 삶을 살았을 때 우리에게 끼치는 불 이익과 고통은 어떤 것이고,

맑은 지혜로운 삶을 살았을때 거기에 따르는 소득과 행복은 어떤 것인가..?

 

빛이 있는 곳에서 우리가 행동하는 것과 빛이 없는 캄캄한 곳에서 행동하는것.

이렇게 나누어서 단순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의 마음이 어떤 것에 머물러서(心住於法)....

.'머문다고하는것은 집착한다.

거기에 얽매인다는 뜻이고,내가 만든 기준,내가 설정한 틀,나의 어떤 가치관,

이러한 형식을 여기서 법(法)이라 했다.

 

거기에 마음을 묶어서 자비법(慈悲法)을 했다.

보시행(布施行)을 한 것이다.

보시라고 하는것은 다 아는 대로 보살의 모든 것이라 해도 좋다.

 

보살이란 자기 발전을 부단히 꾀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줄 아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의 삶이라고 하는 것을 결국은 자비행이다.

자비행으로 대표되는 것은 보시행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보시라는 것에도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칠보시가 있다.

예를 들어 몸으로 보시한다고 하자.

절을 할때 인사를 할때 상대를 향해서 고개를 푹 숙여  공손히 여법하게

인사답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그냥 무심코 해야지,거기에 대해서 '나는 공손히 했는데

인사 받은 상대편에서 제대로 인사를 받지 않았다.

고개만 까딱 했다'등등의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치로 받아들이면

이것은 다 '법'이 된다.

심주어법(心住於法)이라고 할 때의 어떤 자기 기준이다.

자기 마음이 거기에 머물러서, 매어 가지고 인사를 했다고  할 경우

어떻게 될까..?

내가 한 인사보다 더 잘 하거나 최소한 상대가 내가 한 만큼 해야  내 마음이

흡족하고 별 불평불만이 없지.그렇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불만을 갖게 된다.

나는 이렇게 인사를 했는데 저 사람은 왜 내인사를 이렇게 대충 받고 마는가.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큰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 되어서,

어떤 사람이 캄캄한 곳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인사하는 것 한 가지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뭐하지만,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내가 쓰는 마음의 이치, 내가 베푸는 것 ,말씨 등 나의 모든 표현에 내 나름의 법도와 기준과 어떤 생색을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는데.

그런 걸 갖는 것이 크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그 마음을 덜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 상을 떨어내지 않고는 그 순간 즉시 상처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둠속을 헤매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이 캄캄한 데 들어가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우리가 길을 가더라도 어두우면 바로 잘 갈 수가 없다.

집을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다 부득이 간다손 치더라도 가면서 이리 부딛치고 저리 부딛치고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도 있고 벽에 부딛칠 수도 있고 전봇대에

부딛칠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팔이 부러질 수도 있고 다리가 부러지고 심하면 절명까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두우면 그런 형상은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달빛을 받으며 걷는다면 설사 밤이라도 온전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불빛이 있고 눈이 밝으면, 충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안심하고 가고 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밟고 불빛이 있으니까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

 

산에 오르면 소나무가 뿜어내는 솔  냄새가 좋다.

봄 같으면 꽃이 피고 잎이 나고 나무가 자라는 모습,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가는 모습, 가을이 들면 해질 무렵산이 성큼 멀어지는 느낌이 들고,

여름에는 가까이 다가온 듯한 느낌이 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눈이 있기 때문에 아주 미미한 차이들을 잘 분별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그렇게 한다.

만약에 눈이 없다면 서 있는 소나무의 운치는 고사하고,걸어가는데

 큰 장애가 생기고 오르막길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무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무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두우면 그 순간 전부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그와 같다.

내가 어리석으면 나에게 그렇게 좋던 인간관계와 좋은 사물들,돈이나 명예도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나마 우리가 성현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어느 정도 사람 노릇을

하고 사는 것이지, 그런 성인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발견했으니 그렇지.그렇지 아니하고는 우리 마음 그대로 살면 어떻게 살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이 어둠 속에서 우리가 상처를 입는 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설정해놓은 기준, 나의틀, 내 나름의 규칙,살아가는 도덕이나

일체 모든 기준들,거기에 우리는 마음이 매여 있다.

거기서 꼼짝달싹 못하고 벗어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아니하면,;;

거기에 매이지 아니하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어둠이 걷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비행도 자유로운 자비행이 되고 ;;

보시행도 자유로운 보시행이 된다.그런 말이다.

내가 아무리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손 치더라도 ,

상대가 어떻게 받느냐 하는 데 아무런 걸림이 없게 되는 것이다.

 

 

출처 : 무불스님
글쓴이 : 길상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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