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금강경에다가 걸식이란 것을 부각시키는 것인가? 다른 경전도 걸식을 하시면서 경전을 쓰셨어도 걸식이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금강경을 쓰시면서 걸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무상이라는 것을 좀 더 행동으로 표현할 길이 없을까 하는 깊은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걸식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걸식이라는 것, 그것은 정말로 하기가 어렵다. 왜냐? 각자의 그 상(相) 때문에, 자아 의식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체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량한 체면 때문에, 배가 고파도 걸식하지도 못하고 밥을 빌어먹지도 못한다.
차라리 남이 보지 않을 때 슬쩍 음식을 훔쳐먹는 것은 가능해도 걸식은 정말 어렵다. 아마 그것은 상(想)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체험한 이야기를 한 마디 하자. 옛날 불교정화가 마무리 되고 난 후 돈을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때 승려들에게 의무금이라는 것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명목으로 학인들까지 이삼천 원을 모아 내야 했다. 그때 모두가 의무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나가서 탁발을 해야 했다.
부산 범어사에 있을 때다. 모두 삼십여 명이 함께 탁발을 나갔다. 부산 국제시장 가기 전에 대각사라는 큰절에서 가사 장삼을 입고 바루대를 가지고서 앞서 나가는 사람은 목탁을 치고 우리는 뒤에서 바루대만 들고 따라갔는데, 수 시간 동안 국제시장을 돌아 다시 대각사에 돌아오는데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원래 부끄럼이 많기는 했지만 여러 스님들과 함께 했는데 무엇이 그리 부끄럽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워서 옆의 사람을 볼 수도 없었고, 누가 내 바루대에 돈을 넣었는지 아니면 가지고 갔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였다. 오로지 부끄럽다는 생각, 그 생각 하나 때문에 한 바퀴를 올아 와 보니 한겨울인데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상(相)이 있어서, 그 무슨 아상(我相)이 있고 자존심이 있고 체면이 있어서 그렇게 온 몸을 땀으로 적시고, 옆 사람이 돈을 가져가는지 전혀 의식도 못할 정도로 굳어져서 옆으로 눈 한번 못 돌리고 장삼 자락만 보고 돌아올 정도로 그렇게 내가 정신이 없었던 것인가. 어찌 그렇게 몸이 굳고 얼어붙어 버렸던가. 지금도 두고 두고 생각을 하게 되고, 금강경을 강의할 때마다 이 걸식 대목이 나오면 그 경험이 떠오른다.
정말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어리거나 나이가 들거나 또 출신 성분이 어떻든 태자 출신이든 거지출신이든 어떻든 간에 자기의 아상(我相)이라는 것, 자기 나름의 자아의식, 체면이라는 것이 너무나 강하구나, 아상(我相)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문제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떠올리게 된 것이다.
어린 마음에 여러 사람이 같이 가면서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있으면 마음이 놓였을 텐데도 부끄러운 생각에 땀으로 온 몸을 적셨던 그런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상(相)이 떨어지지 아니하니 진정한 걸식(乞食)은 정말 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부끄러워 가지고서야 무슨 걸식이며 탁발이 되겠는가. 정말 탁발(托鉢)이나 걸식이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해야 한다. 정말 편한 마음으로 걸식을 해야 밥을 주는 사람도 복(福)이 되고 받는 사람도 복이 되고, 서로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주고 받아야 여복(與福)한 걸식이 될 것이다.
그래서 무상(無相)을 으뜸으로 삼는 금강경에서 걸식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등장시킴으로써 금강경의 주(主)된 정신(精神) 나타내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병은 암병(癌病)이 아니고 상병(相病)이라는 사실을 부처님께서 여기서 밝혀 보여주시려 한 것이다.
또한 진정한 걸식, 여복한 걸식은 상(相)이 떨어져 상이 없어야 하고 무상이 되어야만 걸식을 진정으로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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