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강설무비큰스님·대새선사의 행장

[스크랩] 부추밀(富樞密)에게 보낸 대혜선사의 답장 1-1

娘生寶藏 2012. 11. 21. 10:25

 

부추밀(樞密)에게 보낸 대혜선사의 답장 1-1

 

答 富樞密 季

示諭호대 知信向此道러니 爲知解所障하야 未有求悟入處일새 欲知日 體道方便이라하니 旣荷至이라 不敢自일새 據款結하야 藤少許호리라 只遮求悟入底 便是障道知解了也니라 更別有甚麽知解爲公作障이리오

 

본문 ; 보낸 편지에 말하기를, “어린 나이에 선도(禪道)를 믿고 공부할 줄을 알았으나 만년에 알음아리에 장애가 되어서 아직 깨달아 들어가는 곳을 구하지 못하고 밤낮으로 도를 깨달을 방편을 알고자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미 지극한 정성을 보였습니다. 감히 스스로 외면하지 못하겠습니다. 조목조목에 의거하여 안건을 만들어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서 잔소리[]를 조금 하겠습니다. 다만 이 깨달아 들어갈 곳을 구하는 것이 곧 도를 장애하는 알음아리입니다. 달리 무슨 알음아리가 따로 있어서 그대에게 장애가 되겠습니까?

 

강설 ; 이 답장을 받는 주인[狀主]이 보낸 편지의 내용은 알음아리가 문제가 되어 공부에 장애가 되며, 또한 깨닫기를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혜 선사에게 알음아리의 문제와 깨닫는 길을 해결하여 주기를 바라는데 그 말 한마디에 선불교적 견해로 볼 때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여 하나하나 조목을 들어가며 분석하여 주겠다는 내용이다. 먼저 깨달아 들어가기를 구하는 것이 곧 도를 장애하는 알음아리라고 하였다. 이 지적에는 선불교에서 참선납자들이 갖고 있는 불가피한 모순을 거론한 것인데,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최상의 목표로 생각한다. 이오위칙(以悟爲則)이라는 말이 있다. 즉 선불교는 깨달음으로서 법칙을 삼는다는 뜻이다. 깨달음을 목표로 하지 않고는 참선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깨달음을 생각하고 기대하고 목표로 여기는 이 점이 곧 깨달음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깨달음에 대한 관념 때문에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점 외에 달리 무슨 알음아리가 있어서 그대의 개달음을 장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궁극적 불교는 사변으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無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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