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밀(富樞密)에게 보낸 대혜선사의 답장 1-8
又淨名이 云衆魔者는 樂生死어든 菩薩은 於生死에 而不捨하고 外道者는 樂諸見이어든 菩薩은 於諸見에 而不動이라하니 此乃是以知解로 爲儔侶하고 以知解로 爲方便하야 於知解上에 行平等慈하고 於知解上에 作諸佛事底樣子也니라 只爲他了達三祗劫空하야 生死涅槃이 俱寂靜故니라
본문 ; 또 정명 거사가 말하였습니다. “모든 마군들은 생사를 즐기지만 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아니하며, 외도들은 여러 가지 견해를 즐기지만 보살은 여러 가지 견해에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알음아리로써 도반을 삼으며 알음아리로써 방편을 삼아서 알음아리 위에서 평등한 자비를 행하고 알음아리 위에서 여러 가지 불사를 짓는 본보기입니다. 그것은 다만 3아승지 겁이 텅 비어 없음을 깨달아서 생사와 열반이 함께 적멸하기 때문입니다.
강설 ; 정명 거사는 유마거사를 말하며 유마경에 있는 내용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생사에 빠져 생사를 즐기고, 소승들은 생사를 벗어나서 고요한 열반을 얻으려고 하며, 대승적 보살은 생사 속에 살면서 적극적으로 중생을 위한 보살행을 실천한다. 또 외도들은 온갖 여러 가지 주의주장과 사상과 소견들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주장과 사상이 옳다고 하면서 즐기고 있다. 그러나 바른 견해를 가진 보살은 온갖 주장과 사상들이 본래로 텅 비어 없는 줄을 꿰뚫어 보기에 그 어떤 주의주장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편지의 주인인 부추밀은 알음아리에 장애가 되어 참선을 여법하게 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안목이라면 장애라고 여기던 알음아리가 오히려 도반이 되며, 중생제도의 방편이 되며, 알음아리에서 평등한 자비를 실천하고, 알음아리에서 모든 불사를 짓는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아승지 겁 동안 수행서 비로소 열반을 증득한다는 견해는 설 곳이 없다. 왜냐하면 3아승지 겁이라는 시간성이 공함을 알고, 초월해야 하는 생사도 증득해야하는 열반도 모두가 텅 비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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