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복(無爲福)
무위복(無爲福)은 유위복(有爲福)의 반대말이다.
무(無)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공기와 같아서 우리가 수용하되 수용하는 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차원을 무(無)라고 할 수 있다.
또 무루(無漏)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건 샌다는 '루(漏)'자를 쓴다.
우리가 번뇌(煩惱)를 다른 표현으로 할때, 새는 것이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왜 번뇌를 새는 것이다라고 표현하느냐..?
번뇌는 우리의 마음속에 본래 갖추고 있는 지혜(智慧)와 복(福)을 새어나가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번뇌가 있음으로 해서 지혜와 복이 드러나지가 못하니까. 그래서 번뇌는 지혜와 복을 새어나가게 하는 것. 그런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샐루(漏)자를 쓰기도 한다.
유루복(有漏福),무루복(無漏福)할때 유루복은 새는 것이 있는 복이 되고, 무루복은 새는것이 없는 말하자면 영원히 내가 수용하고 다 수용하지 못하는 것 까지 항상 수용해도 그 상태로
그냥 남아있는 것을 말한다.
옛 전설에, 어떤 암자에 쌀이 한 사람 먹을 만큼 매일 나오는 바위굴이 있었는데. 어떤 욕심이 많은 스님이 구멍을 파서 보니 그 다음부터 물이 나오더라는 그런 이야기가 있듯이.
한 사람 분의 쌀의 양이 아무리 천년 만년 받아 먹어도 끊임없이 늘 한결같은 양으로 계속 나온다 하는 것은 무루(無漏)이다.
예를 들어,우리가 복을 수용해도 그 상태의 복은 아무리 천년만년 수용해도 다함이 없고 변동이 없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그런 것은 무루복(無漏福),무복(無福)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이 누리는 복은. 또 우리가 기대하는 복은 사실은 불교적인 복이 아니라 다시 말해 무루복이 아니다.
세속적인 복, 유루복(有漏福)또는 유위복(有爲福)을 우리는 기대하고 그것을 또 구했다고
한다.
세속적인 유위복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돌면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쏘아 올리면 그 올라가는 힘이 있는 동안은 화살이 하늘을 향해서 올라가지만, 언젠가 그 올라가는 힘이 떨어지면 다시 밑으로 곤두박질쳐서 밑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유루복,유위복 이라고 하는것은 조작이 있는 복(福)어떤 인위적인 것이 있는 복,그러니가 그것은 결국은 다할때가 있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돈이 없는 사람이 부자가 되기도 하고,또 부자였던 사람이 가난하기도 하고, 벼슬이 없던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가 떨어지기도 하고,심지어는 보통 평민으로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형무소까지 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모두 유위복 이다.
부처님 가르침인 복은 무위복이다.
무위복이 훌륭하다 그런 말이다.
보통 우리이 상식이 짧기때문에 유위복만 착게 된다.
예를 들어 보시를 하면 얻는 복(福),무엇을 하면 거기서 돌아오는 복, 그런 일을 하면 인과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 있기는 한데, 그러나 그것은 내가 베푼 만큼 내가 받으면 끝나고, 또 내가 베풀어 놓고도 금강경의 이치대로라면 상을 내든지 생색을 내든지 자랑을 하든지 하면 그 순간 다 까먹어 버린다.
어떤 순간에 공덕(空德)을 지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워서 복 짓는 법을 익히고 성현의 가르침을 자주 가까이 접해서, 복을 지었다 하더라고 당장에 까먹어 버리고 마는 그런 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 좀 철이 들고 소견이 나고 심지가 깊은 그런 사람의 행위
또 그런 작복(作福)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무위복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 금강경의 도리,금강경의 현상을 금강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금강경 전체거나 사구게만 이라도 배워서 남을 위해 인연을 지어주는 것이 무위복이 되는 것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凡所油相,皆是虛忘),이 구절과 같은 금강경의 안목으로 인생과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면,그러면 최소한 그런 안목으로 보는 그 차원의 복을 무위복(無爲福)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형상이 있는것,조작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 하는 그런 이치를 꿰뚫어서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의 마음,그 사람이 알고 있는 세계, 그 사람의 마음이 누리는 행복, 평화감, 이런 것들이 무위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여기서 무위복은 유위복보다 수승하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은 사람의 수행과 또 공부이 깊이에 따라서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렇게 규정지을 것이 아니고, 부처님 지혜의 척도라는 정도, 그런정도의 차윈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자주 가까이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부처님 곁에 다가설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무위복이 수승하다는 것은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는 말씀이다.
부처님께서는 한계에서 벗어난 무(無)의 세계,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 세계를 개척하신 분이다...그렇게 볼 수가 있다.
금강경에서 가르쳐주는 진리의 세계와 금은 보화로서 우리가 지을 수 있는 공덕의 세계를 비교해 가지고 무위복의 수승함을 말씀하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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